소노 시온의 <러브 익스포져>(2008)

주인공 ‘유’의 어머니는 죽기 전에 유에게 마리아 같은 여자를 찾을 것을 당부한다. 유는 그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 새기고 마리아를 찾는 데 삶을 바친다. 유의 아버지 ‘테츠’는 부인을 잃고 ‘카오리’라는 여성에게도 버림받은 후 유에게 죄의 고백을 강요한다. 아버지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유는 도촬범이 되어 더욱더 많은 죄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러브 익스포져> 트레일러

<차가운 열대어>(2012), <길티 오브 로맨스>(2011)와 더불어 ‘증오 3부작’ 중 하나인 이 영화는 4시간의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종교, 에로, 컬트, 변태, 가족, 사랑 등의 요소를 그의 방식으로 버무려 괴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빛나는 작품이 탄생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수학교사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덴고’는 어느 날 ‘후카에리’의 소설 <공기 번데기>의 고스트라이터(대필작가)를 맡게 된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기억과 아버지에 대한 불신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다. 한편 ‘아오마메’는 호신술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그의 진짜 직업은 살인청부업자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남자를 죽인다. 우연에 의해 둘은 1Q84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고 선구 교단과 연관을 갖게 되며,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완전한 3인칭 시점으로 쓰인 하루키 작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 중 하나. 옴진리교 사건을 다룬 전작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의 소설 버전으로도 불리며 <상실의 시대>에서처럼 100%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일본을 흔든 사건, 옴진리교

1995년 3월 도쿄의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가 무차별 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공식 통계로 약 3,800명이 피해를 본 이 사건은 아사하라 쇼코(麻原 彰晃)가 만든 일본의 종교단체인 옴진리교에 의해 일어난 테러리즘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옴진리교가 일본 사회에 크게 알려졌다. 이 사건 외에도 옴진리교는 크고 작은 살해미수 및 살인사건을 벌인 바 있다.

‘연합뉴스TV’에서 보도한 1995년 옴진리교 사건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지 2개월 뒤 발생한 이 사건으로 일본 사람들은 더이상 일본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지하철을 타는 자신의 이웃이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쉽게 떨칠 수 없는 공포다.

옴진리교는 <러브 익스포져>에 나오는 ‘제로 교회’와 <1Q84>의 교단 ‘선구’의 모델이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두 작품을 탄생시킨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하지만 하루키는 1Q84가 옴 진리교라는 포인트로만 읽히는 것을 우려한 바 있다).

“’선구’라는 신흥 종교단체가 설정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에, 옴진리교를 염두에 두고 썼을 거라는 저널리스틱하고 표상적인 시각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건 소설적인 요소로서는 그렇게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죠. 내가 문제 삼은 것은 더욱 내적인, 정신적인 상황입니다. 옴진리교 사건이 야기한, 혹은 그 사건이 초래한 심적 상황, 아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숨어 있을 어둠 같은 것, 내가 문제로 삼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입니다.”

- 하루키 인터뷰 중

 

종교라는 이름의 폭력

인간을 이롭게 하는 종교가 본래의 기능에서 왜곡되는 순간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는 사람들부터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가정이 파탄 나는 이야기까지.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종교라 할지라도 한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행복이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종교가 절대적인 가치로 작용했던 과거로부터 과학적 사고가 더욱 중요해진 현대에 와서도 종교는 거대한 힘이며 막강한 권력이다.

두 작품에서도 종교는 개인을 억압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즉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행동윤리를 강요하고 억압하는 사회 권력이다. 시스템은 개인을 시스템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길 원한다. 시스템이 국가라면 국가에 맞는 국민으로, 회사라면 회사에 맞는 사원으로, 종교라면 교리에 맞는 신자로.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개인은 어떻게든 피를 흘린다.

<러브 익스포져> 스틸컷

<러브 익스포져>에서 유의 아버지 테츠는 부인을 잃고 신부가 되어 인간 이상의 윤리와 도덕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유에게 죄의 고백을 강요하고 덕분에 유는 ‘없는’ 죄를 만들기 위해 도촬을 시작하고 ‘최고의’ 변태가 된다. 그 과정에서 테츠는 카오리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결국 신부가 되기를 포기한다. 그러나 한번 선택한 신부를 그만두는 것은 바티칸의 승인이 필요하고 결혼은 쉽지 않다.

공통으로 성장 과정에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3명의 고교생 유코와 코이케, 유는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다. 여자 주인공인 ‘유코’는 여자를 수시로 갈아치우는 친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유코는 이로 인해 남자혐오증에 걸리고 커트 코베인과 예수를 제외한 모든 남자를 증오한다. ‘코이케’는 카톨릭 신부인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결국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버린다. 그리고 제로 교회의 간부가 되어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1Q84>에서 아오마메는 증인회 신자의 딸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언제나 기도문을 외워야만 했다. 주변 친구들은 그런 그녀를 따돌리고 배척한다. 하지만 그녀는 기도문을 외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이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작은 소녀에 불과하고 신의 의무는 무겁다. 덴고는 어렸을 때 NHK 수금원인 아버지와 함께 수금료를 받으러 동네를 돌아다녀야 했다. 덕분에 일요일에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교우생활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엄격했고 덴고는 거스를 수 없었다. 덴고의 아버지는 만주에서 일본으로 돌아와 NHK 수금원이 된다. 그는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NHK라는 시스템을 신봉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우수사원 표창장과 NHK 직원용 유니폼, 그리고 어느 정도의 돈뿐이다.

 

소외받는 개인

또한 두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소수자다. 모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변태’(유)이거나 ‘실패자’(테츠)다.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했다 할지라도 청부살인자(아오마메)가 되거나 트라우마(덴고)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공통으로 마음속 어딘가 사회로부터 따듯한 시선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 사회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은 시스템에 쉽게 순종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보면 시스템에 대항할 수 있는 ‘훌륭한 무기’이기도 하다. 시스템의 모순이나 공백을 파악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욕망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개인은 집단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은 하루키가 벽이 아닌 계란의 편에 선다고 선언했다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은 동료가 필요하다. 함께 시스템에 맞서 싸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힘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2009년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coolcider 블로그

 

탈출구, 절대적인 사랑

러브익스포져와 1Q84의 주인공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서로를 사랑한다. 유와 유코도 결국 서로를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절대적인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시스템에서 벗어나거나 대항하려고 한다. 종교는 시스템이고 시스템은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이라면 개인은 사랑을 통해 해피엔딩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고속도로 한복판을 누비고(1Q84)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러브익스포져).

사랑은 강력한 힘이다. 사랑은 착각하게 만든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는 것, 이 사람과 함께라면 반드시 행복할 거라는 것’. 이성을 마비시키고 강력한 착각을 하게 한다. 이것은 어쩌면 종교의 세뇌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인 것은 아닐까? 다행히 사랑은 타인을 전도할 의무도, 구원할 필요도 없다.

“1984년도 1Q84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어. 자네가 그 세계를 믿지 않는다면, 또한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건 가짜에 지나지 않아.”

- <1Q84> 2권 13p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사랑은 언제까지든 떨어지지 아니하나 (중략)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전서 13장 중 일부

고린도전서를 읊는 유코

 

Writer

만화를 그리고 소설을 쓴다. 때때로 움직임 작업을 한다. 그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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