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새해다. 덩달아 따라오는 질문들은 달갑지 않다. “새해에는 연애해야지?”, “새해에는 제대로 취직해야지, 프리랜서가 좋니?”, “채식하기로 했다고? 힘들지 않을까?” 등등. 사랑을 찾아 나선 <녹색광선>(1986)의 주인공 ‘델핀’을 내내 따라다니는 것도 이런 질문들이다. 누벨바그의 거장 에릭 로메르 감독의 <녹색광선>을 이야기할 때 아름다운 여름의 분위기와 색감, 운명적 사랑을 빼놓기란 어렵다. 그러나 새해를 맞아 수많은 무례한 질문들과 싸워내야 할 당신에게, 더 이상은 ‘설명노동’ 하지 말자는 응원으로 이 사랑스러운 영화를 소개한다.

 

설명노동은 소수자의 몫

한여름의 프랑스. 기나긴 여름휴가 기간이지만 델핀은 연인과 소원해져 함께 여행을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여행 약속마저 취소된다. 갈 곳 잃은 델핀은 친구 가족들의 휴양지를 전전한다. 델핀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향적이고, 고기를 먹으며, 북적이는 여행을 즐긴다. 그 속에서 그들과 다른 델핀은 자연스레 신기하고 걱정스러운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혼자는 외롭지만 지나친 북적임은 싫고, 연애를 하고는 있지만 남자친구와 소원하며, 채식을 즐기는’ 델핀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단체 여행을 통해 남자를 만나는 건 어때요?”

“왜 채식을 하세요? 영양실조의 걱정은 없을까요?”

“남자친구 있어요? 왜 그와 함께 오지 않았어요?”

“산책만으로도 충분하다고요? 다른 걸 좀 더 하지 그래요?”

구구절절 자신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 델핀은 자주 소외감에 휩싸인다. 질문받지 않았더라면 델핀 자신으로 잘 지냈을 텐데, 질문을 받음으로써 ‘유별난,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 그런 마음 탓인지 정성껏 답변을 해주고 혼자 떠난 산책길에서 그녀는 무너져내려 울기도 한다.

 

사람들이 델핀을 대하는 태도에 그녀가 더 행복했으면 하는 좋은 의도가 깃들어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일일이 답하며 사생활을 드러내야 하는 불편함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온전히 답변자의 몫이다. 델핀을 둘러싼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에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들의 걱정이나 배려를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 적 있을까? 그들의 질문 앞에서 ‘적극적으로 연애 생활을 하지 않음’, ‘고기를 먹지 않음’,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 등 한 개인의 특성은 그저 ‘걱정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만약 델핀이 거꾸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면 그들은 질문을 ‘무례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왜 고기를 드세요?”

“왜 연애를 하고 계세요?”

“왜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리지 못하세요?”

<녹색광선>은 일종의 소수자성을 지닌 델핀과는 달리 그를 둘러싼 다수에게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이라는 권리가 자동으로 주어지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로써 영화는 집단 안에서 조금 다른 사람은 언제나 질문에 놓이고, 설명노동에 힘쓰게 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질문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전 요트를 타면 멀미를 해요. 조용하게 산책하는 게 더 좋아요.”(델핀)

"당신을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부정적인 면이 보이네요."

“난 까다로운 게 아니에요. 남들에게 까다롭게 굴지 않아요. 시장도 보고 산책도 하고 모두 잘해요.”(델핀)

“고기는 안 먹고요?”

“비난하지 말아요.” (델핀)

우리에게는 다름을 애써 설명하지 않을 자유, 불편한 개인의 사정을 숨길 자유가 있다. 이 자유는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지도 모를 질문’을 던질 자유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녹색광선>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로맨스를 즐김과 동시에 델핀에게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온정의 탈을 쓴 간섭들에 우리가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은 그만 설명하자. 델핀처럼 “비난하지 말아요.”라고 당당히 말하고, 무례한 질문들에 “우리는 다를 뿐이에요.”라는 한마디로 답하자.

<녹색광선> 트레일러

 

Writer

"불쌍한 것을 알아본다고 해서 좋은 사람은 아냐, 나는 그냥 보는 사람이에요." (요조, 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