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대표하는 앨범을 고르기란 언제나 매우 어려운 일이면서도, 꽤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올해 나왔던 앨범 중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앨범들은 뭐가 있을까요. 지난주 ‘인디계의 이슈’라는 키워드로 짚어본 인상적인 앨범에 이어, 이번 주에는 공간의 흐름과 변화를 중심으로 바라본 앨범들을 골라 보았습니다. 인디신이 생긴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공간도, 뮤지션도, 팬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도 있습니다. 2017년을 빛냈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앨범들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한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 <제비다방 컴필레이션 2017+2018>

싱글이나 EP 단위로 음원과 음반이 발매되는 요즘 같은 추세에, 여러 팀의 곡들이 합쳐진 컴필레이션 앨범은 사실상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컴필레이션 앨범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해피로봇, 루비살롱, 파스텔 뮤직, 붕가붕가 레코드 등 레이블 중심의 앨범과 드럭이나 클럽 빵처럼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제작된 앨범들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컴필레이션 앨범을 위해 많은 뮤지션들이 뭉쳤는데, 그만큼 레이블이나 클럽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7년 컴필레이션 앨범의 현실은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모던록과 포크 음악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클럽 빵 역시 2007년 이후, 8년만에 <빵 컴필레이션4>를 발표했지만, 현재로선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3년 연속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제비다방 입니다.

2012년 상수역 인근에 터를 잡은 제비다방은 낮에는 제비다방, 밤에는 취한제비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무료입장, 유료퇴장’이란 모토로 주 4회 공연이 이어지는 제비다방은, 크라잉넛의 한경록, 모노톤즈의 차승우 등 뮤지션들의 아지트로도 유명합니다. 김일두, 위댄스 부터 오존이나 아이유, 혁오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하며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했습니다. 그렇게 입소문을 탄 제비다방은 인디신에 생소한 일반 대중에게도 접근하기 쉬운 곳으로 인식되며, 홍대의 랜드 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비다방은 그렇게 인디음악과 관객을 좀 더 쉽게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지난 몇 년 동안 충실히 해왔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제비다방 컴필레이션2017+2018>을 제작하며, 복합 문화공간이라는 그 나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앨범의 상업적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이런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건 박수 받아야 할 일입니다. 캡틴락(한경록), 전기성, 권나무, 씽씽, 손지연, 지니어스, 도마, 곽푸른하늘, 이은철, 수상한 커튼, 안홍근, 최고은, 위댄스, 나비, 신나는 섬, 더 모노톤즈, 보은(클라라홍), 플라잉독, 여유와 설빈, 에스테반 등 제비다방을 사랑하는 인디 뮤지션 20팀이 함께한 <제비다방 컴필레이션 2017+2018>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앨범입니다.

 

인디 그 너머의 경계에서

왼쪽부터 DPR live <Her>, 서사무엘 <Elbow>, 글렌체크 <The Glen Check Experience EP>, 카더가든 <APARTMENT>

홍대 인디신에는 전통적인 팬층과 그들 모두를 수용하는 공연장이 있습니다. 상상마당과 무브홀, 브이홀, 롤링홀과 같은 규모(400~500석)와 클럽 FF처럼 그보다는 조금 작은 규모(100~200석)의 공연장에서 거의 모든 팀들의 공연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 신현희와 김루트, 볼빨간 사춘기, 국카스텐, 십센치 처럼 인디신에서 활동하다 메이저급 스타가 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밴드는 여전히 그곳에서 자신들의 벨류를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혀 다른 바운더리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팀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들은 홍대라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기존의 활동 방식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감각적인 콘텐츠를 여러 채널을 통해 효과적으로 선보입니다.

DPR live는 올해 3월 <Coming To You Live>와 12월 <Her> 두 장의 EP 앨범을, 서사무엘은 6월 EP <Elbow> 와 싱글 <Off you>를 발표했습니다. 카더가든은 12월 정규 1집 <APARTMENT>를 발표했습니다. 글렌체크는 4년 만에 <The Glen Check Experience EP>로 돌아왔습니다. 알앤비, 소울, 일렉트로닉에 기반을 둔 이들은 모두 대중 음악상을 받았거나 노미네이트 된 적 있는, 실력을 이미 검증받은 아티스트입니다. 이들은 크루와 함께 활동하며, 피쳐링 또한 적극적입니다. 메이저와 인디를 가리지 않는 이들의 음악은 어쩌면 인디 그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낡고, 오래된 방식의 콘텐츠들은 결국 외면받기 마련입니다. 홍대에서 공연으로 유입되는 인구에 비해, 다른 콘텐츠를 통한 음원 소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지금, 그들은 인디의 경계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이 머지않아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봅니다.

 

강태구의 <bleu>

제주도의 이름 없는 숲과 해변에서 쓴 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한동안 그 여운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나무, 바람, 흙, 바다, 숲 등이 연상되는 앨범 <bleu>는 제주도와 강태구 자신을 고스란히 닮아 있습니다. 노래들은 심오한 단어들을 나열하지 않고도 듣는 이를 집중시키고, 천천히 납득시킵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은 침잠하는 무거운 것들을 한층 더 세련되게 엮어내고 있습니다. 앨범이 발매된 후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올해의 앨범으로 <bleu>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담담함 목소리로 쓸쓸함을 노래할 뿐입니다. 김사월의 <7102>나, 소설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독특한 컨셉의 김목인 정규 3집 <콜라보 씨의 일일> 역시 훌륭한 앨범이지만, 올해 나온 단 하나의 포크 앨범을 고르라면 저는 주저 없이 <BLEU>를 뽑겠습니다.

 

ㅣ필자소개ㅣ
오주환(Oh Juhwan)
지큐, 아레나, 더블유, 블링, 맵스 등 패션 매거진 모델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개러지 록밴드 이스턴 사이드킥(Eastern Sidekick)과 포크밴드 스몰오(Small O)를 거쳐 2016년 초 밴드 아도이(ADOY)를 결성, 팀 내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있다. 최근 자유로운 젊음을 노래하는 첫 EP <CATNIP>을 발표하며 인디 음악신에 앨범 커버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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