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굳이 한 가지만 꼽으라면 이것이다.
“Why Not?” 맞다. 힙합은 기성의 모든 것에 “왜 안 돼?”라고 물으며 생겨났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랩이 대표적이다. “멜로디와 화성이 있어야 음악이라구요? 리듬에만 의지해 뱉으면 음악이 아니라구요? 아닌데요.” 샘플링 작법 역시 마찬가지다. “악기를 직접 연주해야 음악이라구요? 싫은데요. 전 있던 것에서 따와서 재창조할 건데요.” 패션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게 안 입을 건데요. 이게 멋있는 건데요.

기성의 모든 것을 ‘무시’했다기보다는 ‘구애받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이렇게 해서 안 될 게 뭐야? 이렇게 해서 더 멋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힙합은 ‘새로운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랩과 샘플링을 아직도 음악으로 인정하지 않는 거기 당신, 이 사실은 알고 있나? 음악을 들으려면 무조건 연주자를 직접 찾아가야 했던 시대에는 음악을 저장매체에 담는 것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금기시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더 관용적으로, 더 미래지향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잠시 샛길로 샜다. 다시 돌아오자. 힙합의 정말 놀라운 점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빈지노의 가사를 샘플링하자면, 힙합은 잠시 떠들썩한 ‘유행’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의미 있는 ‘유형’으로 안착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내어서, 세월의 시험을 이겨내고, 힙합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음악이자 문화가 되어 있다. 힙합은 좇아가지 않았다. 대신에 따라오게 만들었다. 멋 폭발.

힙합 디제이의 ‘스크래치’도 좋은 예다. 턴테이블에서 돌아가는 엘피에 (실수든 호기심이든) 손을 올리는 일은 기본적으로 음악감상에 방해가 되는 행위다. 엘피에 손이 닿는 순간 사운드는 ‘삑사리’가 났고 우리는 그걸 ‘소음’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힙합 디제이들이 그 소음을 하나의 예술기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에 의해 ‘판을 긁는’ 무수한 방법론이 창조되었고, 그것은 곧 음악의 일부가 되었다. 소음이 예술이 되고 턴테이블이 악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DJ Premier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는 스크래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물론 힙합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스크래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래퍼들의 랩 구절을 활용한 스크래치를 꾸준히 선보여 왔다는 점이다. 각각 다른 노래에 있던, 각각 다른 래퍼의 랩 구절을, 자기가 활용하고 싶은 부분만 따와서, 스크래치 속에서 서로 섞고 잇는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다음의 예를 참조하자.

모스 데프(Mos Def)의 ‘Mathematics’는 디제이 프리미어가 직접 프로듀싱하고 스크래치까지 해낸 노래다. 이 노래에서 그는 제목처럼 ‘수학’과 관련한 여러 래퍼의 랩 구절을 발췌해와 스크래치를 통해 한데 엮는다. 다음은 디제이 프리미어가 이 노래에 활용한 랩 구절과 그 주인들이다.

Mos Def ‘Mathematics’

1) "The mighty Mos Def" (Mos Def ‘Body Rock’)
2) "It's simple mathematics" (Fat Joe ‘John Blaze’)
3) "Check it out" (Big C ‘Look Alive’)
4) "I revolve around science" (Raekwon ‘Criminology’)
5) "What are we talking about here?" (Angela Davis Interviewed by Art Seigner)
6) "Do your math" (Erykah Badu ‘On & On’)
7) "One, two, three, four" (James Brown ‘Funky Drummer’)

디제이 프리미어의 이 같은 기법은 동시에 여러 맥락을 낳았다. 먼저, 이것은 동떨어져 있던 여러 조각을 한데 엮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콜라주’다. 또 노래의 후렴을 창조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스토리텔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시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바로, 래퍼처럼 입을 사용하지 않아도 디제이 역시 언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U Looz’는 상징적이다.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로이스(Royce Da 5'9")는 프리미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너의 손으로 말해봐(So, I need you to speak with your hands).” 물론 이어지는 것은 여러 래퍼의 랩 구절을 활용한 프리미어의 스크래치다. 즉, 힙합 디제이는 손으로 말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PRhyme (DJ Premier & Royce Da 5'9) ‘U Looz’

다음은 더 많은 예시다. 제법 신경 써서 골랐다. 부디 읽는 이들도 나처럼 경외심을 가지게 되기를.

주석 ‘개전(開戰)’
AZ ‘The Come Up (Prod. By DJ Premier)’
Torae ‘For The Record’

 

Writer

힙합 저널리스트. 래퍼는 아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힙합을 하고/살고 있다.
김봉현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