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삶에 색을 더할 때가 있다. 삶을 담아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칵테일을 모았다. 만약 이 목록에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 속 칵테일을 마셔보는 것도 좋겠다. 주인공의 레시피로.

 

<007>시리즈의 보드카 마티니와 <킹스맨> 마티니

<007> 마티니

<007 어나더데이>(2002)의 한 장면. 제임스 본드 역은 피어스 브로스넌
보드카 마티니 via ‘Liquor.com’ 


영화 속 칵테일 하면 떠오르는 건 단연 007시리즈의 마티니일 것이다. 제임스 본드는 007 시리즈의 첫 영화 <007 살인번호>에서부터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라는 말로 마티니를 주문한다. 정통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로 만들지만, 제임스 본드는 늘 진 대신 보드카로 만든 마티니를 주문한다.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는 정통 마티니와 만드는 방법도 다르다. 정통 마티니는 음료를 저어주면서 섞는 ‘스터(stir)’ 방식으로 만드는데, 이 방법을 쓰면 기포가 생기지 않아 매우 깔끔한 질감과 날카로운 맛을 가진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는 스터 대신 ‘셰이크(Shake)’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한다. 셰이킹해서 만든 마티니는 좀 더 부드럽고 둥그런 맛을 낸다.

제임스 본드가 보드카 마티니를 주문하는 장면을 모은 영상

 

<킹스맨> 마티니

<킹스맨>에서 마티니를 들고 있는 에그시(태런 에저튼)

<킹스맨>에서는 007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젠틀맨이 다 된 에그시가 마티니를 주문하는 방법이 재미있다. “마티니. 당연히 보드카 말고 진으로. 오픈하지 않은 베르무트 병을 바라보면서 10초 동안 저어줘요(Martini. Gin, not Vodka, Obviously. Stirred for 10 seconds while glancing at an unopened bottle of vermouth).” 제임스 본드와 정반대로 주문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신사의 탄생을 목격한다.

해리와 에그시가 마티니를 마시는 장면

 

<7년 만의 외출> 위스키 사워

<7년 만의 외출> 포스터
위스키 사워 via ‘Serious seat’ 

하얀 홀터넥 드레스를 입고 환풍기 위에 선 마릴린 먼로는 반세기가 지나도 회자되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이 모습이 등장한 영화가 바로 <7년 만의 외출>이다.
이 영화엔 주인공 리처드가 아침 식사로 “피넛버터 샌드위치와 두 잔의 위스키 사워를 먹는다(I'm perfectly capable of fixing my own breakfast. As a matter of fact, I had a peanut butter sandwich and two whiskey sours).”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신이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한 대사 같지만, 정말 아침 식사로 위스키 사워를 마신다면 든든은 할 거다. (물론 아침에 술을 마셔도 끄떡없는 사람이어야겠지만!) 왜냐하면 위스키 사워는 가볍지 않게 속을 채워주는 칵테일이기 때문이다. 버번위스키와 레몬, 달걀흰자가 들어간 위스키 사워는 위스키 본연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큼한 향과 폭신하고 살짝 걸쭉한 질감마저 가졌다. 위스키를 무턱대고 마시기 두렵다면 이 칵테일을 먼저 마셔보아도 좋겠다. 위스키 사워는 위스키 입문용으로 알맞다.

리처드가 자신의 아침 식사를 설명하는 장면

 

<위대한 개츠비> 민트줄렙

<위대한 개츠비> 파티 신
민트줄렙 via ‘Creative Culinary’ 

2013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고전을 각색한 스토리와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물론이고 패션과 음악, 작은 소품 하나하나 정성 들인, ‘볼 맛 나는’ 영화였다. 파티 장면이 끊이지 않는 이 영화에 샴페인, 하이볼, 맥주, 위스키 등 오만가지 술이 다 나오는 건 당연한 일. 그중에서도 데이지와 개츠비, 톰 세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를 때 등장하는 술은 민트줄렙(Mint julep)이라는 칵테일이다. 민트 줄렙은 버번위스키와 민트, 설탕, 탄산수로 만든다. 민트가 주는 청량함 때문에 가벼울 것 같지만 꽤 독하다. 버번위스키 특유의 달콤함과 스파이시함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칵테일이기도 하다.
만들기 쉽고 쓴맛이 없으면서도 빨리 취할 수 있는 민트줄렙, 개츠비의 파티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술이 있을까.

민트줄렙이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사제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스틸컷
사제락과 아니스 비터 via ‘Andrew Zimmern’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시간이 갈수록 어려지는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삶을 그린 영화다. 벤자민과 그를 버린 생부 토마스가 만나 함께 마시는 술이 바로 사제락(Sazerac). 사제락은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51% 이상의 호밀(rye)을 원료로 만든 라이위스키나 브랜디를 베이스로 하며, 더 깊은 풍미를 위해 ‘고흐의 술’이라 불리는 압생트로 향을 더한다. 처음 사제락은 브랜디를 이용해 만든 것이었는데, 19세기 말 퍼진 포도나무 병충해로 브랜디 생산량이 줄자 미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라이위스키로 대체해 만들게 된다. 사제락은 뉴올리언스 주의 대표 칵테일로 지정될 정도로 미국에서는 보편적이고 흔한 칵테일이기도 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속 토마스의 술 취향은 지극히 평범한 위스키 사제락. 어쩌면 아주 보통 사람이었던 토마스에게 남들과 다른 아들 벤자민의 존재는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벤자민과 토마스가 사제락을 주문하는 장면

 

칵테일 자문 bar 로빈스스퀘어 전대현 바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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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