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의 음악은 깊고 고요하다. 담담하게 읊조리는 불안, 상실감, 실패와 수치심 같은 여러 위태한 감정들은 단출한 악기 구성과 편곡이 무색할 만큼 그 속에서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듣는 이들을 한순간에 빨아들이고는 만다. 때로 단순하고 때로 추상적인 표현으로 둘러싸인 노랫말은 멜로디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따로 언급이 필요할 만큼 인상적이다.

2011년부터 자신이 만들고 불러온 노래들을 모아 작업한 첫 솔로 앨범 <수잔>(2015)을 발표하며 국내 음악계를 흔들어 놓았던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이 얼마 전 라이브 앨범 <7102>를 들고 왔다. 라이브 앨범이긴 하지만, 총 12곡 중 10곡의 신곡으로 채워진 이 앨범은, 스튜디오 앨범에 가까울 정도로 빈틈없이 잘 정제된 매력적인 앨범이다. 고요한 듯 특별한 세계를 구축한 뮤지션, 김사월을 만나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일반적으로 라이브 앨범이라고 하면 기존 곡들을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앨범에는 신곡이 10곡이나 들었어요. 특별히 신곡들을 부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지금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편하게 풀어보고 싶었던 게 첫 번째 이유고요. 두 번째는 제가 2집도 머지않아 내고 싶은데요. 그래서 이 앨범에는 2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곡들이 담겼어요. 어정쩡하게 다른 곳에 수록되는 것보다는 지금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Q 2집 앨범에 담기에는 안 어울리는 곡들이라는 의미인가요?

아시다시피, 이번 앨범은 곡을 쓴 순서의 역순으로 트랙이 수록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달아’를 마지막으로 쓰고나서 너무 우울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물론 앞으로도 우울한 이야기를 쓰겠지만, 그래서 정말 우울한 곡들을 담은 게 이번 라이브 앨범이거든요. 이걸 계기로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Q 말씀처럼 사월 씨의 ‘현재’에 가장 가까운 노래로 시작해 시간의 역순으로 트랙을 배치했는데, 특별히 이렇게 콘셉트를 잡은 이유가 있나요?

‘라이브 앨범의 컨셉을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김(김사월X김해원) EP나, 저의 1집 앨범 같은 방식을 써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셋 리스트도 스토리 기준으로도 해보고, 여러 가지로 해봤는데 다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제가 지킬 수밖에 없는 법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곡을 만든 순서였고, 만든 순서는 또 너무 우울해서 거꾸로 뒤집으니까 오히려 밝아지더라고요.

 

Q 이번 앨범 절반가량의 곡을 박희진 연주자와 공동으로 편곡했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처음 함께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수잔> 앨범을 내고 라이브를 크게 해야 할 일들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그때마다 최선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세션 분들 섭외하고, 밴드를 만들기도 하면서 지냈는데 한편으로는 그분들한테 잘해드리고 싶은데, 잘 못 해드려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돈이 너무 없어서(웃음).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라이브도 마냥 즐기면서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일들이 몇 있었어요. 제가 라이브를 즐기는 타입도 아니었고, 솔로를 할 때도 라이브가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고요. 제가 하던 밴드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앞으로 라이브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매년 4월에 하는 ‘사월쇼’에 박희진 연주자랑 단둘이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물론 희진 씨가 다른 밴드에 있었을 때부터 눈여겨 보기도 했고, 김김 프로젝트처럼 작은 규모에서 사운드를 꾸리고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매번 희진 씨랑 합주할 때마다 너무 기대되고 좋아요.

 

Q 함께 해보니 어떤 점이 잘 맞았나요?

우선 성격이 잘 맞아요. 그리고 둘 다 음악적으로 멋있는 걸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요. 그걸 저희 안에서 해낼 수 있다는 믿음도 점점 생기고요.

김사월 ‘마이 러브’(with 박희진). 영상 출처- 신촌전자 라이브

 

Q 라이브 앨범이다 보니 스튜디오 앨범과 작업방식이 달라서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라이브 앨범을 만들려고 생각한 게 올해 7, 8월쯤이었어요. 8, 9월쯤 시작해서 10월 1일의 마지막 공연까지 대여섯 번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공연들이 있었어요. 공연장들의 스펙은 다 달랐고요. 그중 한 군데인 벨로주에서 믹싱할 수 있는 파일을 줄 수 있다고 했고, 그 외에는 그런 여건이 안돼서 제가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녹음을 했어요. 그렇게 녹음을 하면 믹싱할 수 있는 파일이 안 나오고, 모노로 나오거든요. 각자 공간 특성이 달라서 뒤죽박죽일 것 같았는데 요즘 기술이 좋아서 믹싱할 수 있는 파일이나, 모노로 되어있는 파일이나 다 비슷한 거예요(웃음). 그 부분이 저로서는 의외였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또 한 번 하고 나면 못 고치니까 그게 어려운 부분인데, 베스트 앨범 격으로 라이브 앨범을 낸 게 아니기 때문에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그중에 최선의 결과물을 수록하자는 마음가짐으로 했던 것 같아요.

 

Q 서로 모순되는 단어들이 사월 씨 가사에는 많이 등장해요. 가령 ‘사랑하는 미움’이라던가, ‘부서질 것같이 완전한 빛깔’ 같은 단어의 조합들이요. 이런 조합이 신선하고 독특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가사를 쓸 때 어떤 점에 주로 공을 들이는지 궁금합니다.

쓰는 순간에는 ‘안될 게 없다’라는 생각으로 가사를 써요. 또 있는 감정을 최대한 싱싱하게 쓰려고 노력해요. 그 후에 다듬으면서 운율이나 라임을 맞추고 너무 과한 표현은 수정하는 식으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착상이 자주 떠오르지는 않는데 한번 생각이 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써버려요. 대화를 나눌 때도 공들여서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하는 말들이 더 재미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 많이 기대는 편입니다.

Q 1번 트랙 ‘달아’에서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달아’라는 노랫말이 인상적입니다. 가사를 곱씹다 보니 “우리가 불행한 것은 우리의 내면이 행복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심리 서적의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사월 씨는 어떤 마음으로 이 가사를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스스로 미워하면서 지내거나,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저 자신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no’라고 생각하는 편이 많아요. 동시에 ‘no’이지만 ‘yes’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도 해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데 대한 변호를 저 나름대로 지질하게 한 거죠(웃음). 이제는 그렇게 안 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 기분을 잊지 않으려고 이 곡을 썼습니다.

 

Q 데모 상태의 곡들을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 종종 올리는데, 미발매곡들을 그렇게 공개해도 괜찮은가요?

2012년부터 올렸으니까 엄청 오래됐죠. 지나고 보면 지금까지 꾸준히 해온 건 그거 정도예요. 연습을 하는 것만큼, 사운드클라우드도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발매곡을 공개해도 괜찮을지에 대한 고민도 분명 있었는데, 꾸준히 사운드클라우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수잔> 앨범을 만들면서예요. 올려두었던 데모곡들이 정말 귀중한 자료가 되더라고요. 첫 데모가 어땠는지를 확인하고 편곡을 하는 게 좋은 근거가 됐어요. 데모곡을 꾸준히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도 큰 힘이 되기 때문에 멈추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Q 그러고 보니 이번 앨범은 전작보다 한결 편안하고 산뜻해진 느낌이 들어요. 느끼는 감정들을 그때그때 본능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변화에 영향을 준 요소가 있을까요?

제가 정말 편하고 싶었어요(웃음). <수잔> 앨범을 발매하고 너무 행복하고 또 불안하게 지냈어요. 저는 되게 작은 풀 안에서 작업을 해 나가는 사람인데, 앨범을 내고 나서 바쁘게 활동하고 지내니까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제가 굉장히 일희일비하는 성격이라 피드백 하나에도 신경 많이 쓰고. 2집을 이런 상태에서 또 내는 것보다는 그사이에 편안한 마음으로 앨범을 하나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그렇다면 2집은 어떤 분위기로 채워질지 살짝 말해주면 좋겠어요.

산뜻하고 발랄하고 싶어요. 사운드적으로나 메시지적으로 산뜻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달아’가 저의 가장 최근곡인 거잖아요.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 들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물론 저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는 계속할 수 있지만, ‘여태껏 우울했으니 다 같이 우울하자’라기 보다는, 음악을 통해서 덜 우울해지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싶어요.

 

Q ‘어떤 호텔’과 ‘설원’은 결국 사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호텔과 설원 속에 등장하는 집은 사실 내가 거주하는 공간이 아닌데도,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표현되고 있어요. 이 또한 사월 씨가 끊임없이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그렇듯이, 저 또한 붙박이가 많이 없다는 생각을 해요. 집이 있어야만 행복한 게 아니고, 내면이 불안정한 것도 꼭 거기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고 보지만, 어쨌든 마음이 편안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가 사는 공간과 도시는 끊임없이 바뀌고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호텔’에서나, ‘설원’ 속 가사 같이, 내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편안함을 찾고 있는 거예요.

 

Q 기다리는 팬들이 많을 것 같은데, 김사월X김해원의 듀오 앨범은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김사월X김해원 다음 앨범은 김김 역시 바라고 있고, 기다려 주시고 들어주는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늦지 않게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김해원 솔로 앨범을 먼저 발매하려는 계획도 있어요. 곧 발매될 김해원 솔로 앨범도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사월X김해원 온스테이지 라이브 영상

 

Q 얼마 전에 김해원 씨와의 함께 유럽 공연을 한 거로 알고 있어요. 공연은 어땠어요?

벨기에의 브뤼셀이랑 앤트워프에서 했는데요. 브뤼셀 공연은 한국 팀들을 모은 페스티벌 같은 공연이었고, 앤트워프는 카페 공연이었어요. 페스티벌은 신나고 붕붕 뜨는 느낌이었고, 카페 공연은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둘 다 재밌었어요.

 

Q “드러낼수록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인터뷰 내용을 본 적이 있어요. 실제로 사월 씨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그게 저예요, 저(웃음). 수잔도 그런 사람이었고, 저 역시도 드러낼수록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마 제가 저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 그런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구는 면이 있어요. 근데 ‘드러낼수록 좋지 않으니까 드러내지 말자’가 아니고, ‘그러니까 조심하면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거죠.

Q 9번째 트랙에 수록한 ‘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가사에 집중하다 보니 문득 사월 씨는 활력 속에서 고요함을 갈망하고, 또 죽어 있는 생명들 틈에서 온기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이런 섬세함이 사월 씨의 음악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는데, 본인 생각은 어때요?

뭔가 상황이 잘 풀릴 때 오히려 차분해진다거나, 반대로 상황이 안 좋을 때 더 긍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역시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게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원래는 신곡으로만 이번 앨범을 채우고 싶었거든요. ‘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는 기존곡이다 보니 넣을 계획이 없었는데, 마지막 공연 때 한 번 해본 거예요. <수잔>에 수록한 버전이 편곡에 힘을 실었다면 이번에는 가사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 쥐어짜듯 불렀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서 넣게 된 거예요.

 

너는 지금 잠들어있겠지만
너와 함께 닿는 모래를 생각해

너는 지금 깨어있겠지만
너와 함께 엉킨 꿈을 생각해

- ‘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가사 중

 

Q 얼마 전 독립영화제 ‘인디포럼 2017’ 개막공연에 참여했어요. 실제로 평소에 독립영화를 즐겨보시기도 하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챙겨봐요.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독립영화인 경우가 많아서 종로 3가 쪽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를 가거나, 상상마당을 가는 편이에요. 깊게 아는 건 아니지만, 특별전 같은 거 하면 즐겁게 관람하고, 돌아와서는 또 금방 잊어버리고 그런 거예요(웃음).

Q 최근 작업에 영향을 준 영화나, 음악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조금 됐는데요, 4월 즈음에 짐 자무쉬 특별전을 갔는데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연달아 3편을 봤어요. 특히 <지상의 밤>이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봤는데, 각각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택시 기사와 손님들의 대화를 다룬 구성이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어요. 음악은 최근에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신보를 많이 듣고 있어요. 워낙 팬이기도 한데 이번 앨범은 특히 최고예요. 아. 그리고 엔젤 올슨(Angel Olsen)도 좋아해요. 이번에 <Phases>라는 b-side 앨범을 냈는데 마침 저도 그런 격의 앨범을 낸 차라 궁금한 마음으로 찾아 듣고 있어요. 평소에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즐겨 들어요. 영화 <에이미>를 보고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거든요.

 

Q 평소 <인디포스트> 기사를 읽어보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인디포스트>와 인터뷰한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요.

가끔 트위터에 재미있는 기사들이 올라와서 읽어보곤 했습니다. 작품 꼼꼼히 들어 주시고 다양하게 질문 주셔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감사드립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관해 물을게요.

연말공연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계획이고요. 2018년에도 공연하면서 2집 준비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 늘 긴장한 상태였다면,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공연 재미있게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싶어요.

 

인터뷰 최은제
사진 이강혁
장소협찬 커피폴리 coffeepa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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