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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말 넷플릭스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한 영화 <치욕의 대지>(원제: Mudbound)는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선댄스영화제에서 기립박수와 찬사를 받으며 오스카 수상 재목으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막상 배급 시장에서 영화가 팔리지 않아 관계자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제목이 의미하듯 진흙과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는 미시시피 농장의 백인 가족과 흑인 가족의 힘겨운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런 스토리 라인이 ‘인종차별’이라는 미국의 예민한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일까? 고작 제작비 1천 2백만 달러(약 144억 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기대 이하의 제안 몇 건만 들어왔을 뿐이었다.

<치욕의 대지> 예고편

하지만 영화제 막판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최근 독립영화계의 큰 손으로 부상한 넷플릭스가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제작비를 상회하는 금액을 쾌척한 것이다. 가까스로 반전을 이뤄낸 이 영화는 20여 건의 수상 실적을 거두었지만,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일곱 건의 후보에 오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이 특별한지 알아보았다.

 

독립영화계의 신성 디 리스

극작가 겸 영화감독 디 리스(Dee Rees)가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다면, 오스카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감독으로 기록될 뻔 했다. 2010년 <허트로커>의 캐서린 하드윅 감독이 최초로 젠더의 벽을 깬 이래 인종의 벽마저 깰 수 있었다. 미국 생활용품업체 프록터앤갬블에서 팬티라이너 마케팅 일을 하다가 영혼을 갉아먹는다며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뉴욕대 영화과로 도망치듯 입학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쓴 자전적 소설 <파리아>(Pariah, 2011)를 영화로 제작하여 고섬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받았고, 재즈 레전드 베씨 스미스(Bessie Smith)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HBO의 <베씨>(Bessie, 2015)로 에미 어워즈 TV 영화상을 타며 일약 독립영화계의 신성으로 부상하였다. 그는 <파리아>의 주인공처럼 그 자신도 레즈비언임을 밝힌 바 있다.

디 리스 감독의 인터뷰 영상

 

R&B 싱어 메리 J. 블라이지의 연기

<치욕의 대지>는 미시시피의 영세 농장주 맥켈란 가족과 소작을 하는 잭슨스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삶의 이야기다. 흑인인 잭슨스 가족의 안주인 ‘플로렌스’ 역을 맡은 메리 J. 블라이지(Mary Jane Blige)는, 9회의 그래미 수상과 4천 8백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보유한 인기 R&B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출연 제의를 받고 나서 <Mudbound>의 시나리오를 읽고 “이 영화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누구든지 그에게는 마이노리티(불평등하게 차별대우를 받는 소수집단)”라며 수락했는데, 여기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한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감독이 제시한 원칙대로 가발, 화장, 매니큐어를 일체 하지 않고 모기가 들끓는 한여름 남부 지방의 열악한 제작 환경을 견디며 스타 가수의 화려한 과거를 완전히 내려놓고 촬영에 임했다고 토로했다.

메리 J. 블라이지의 최대 히트곡 ‘Family Affair’

 

여성 제작진으로 만들어진 영화

영화의 원작자는 힐러리 조던(Hillary Jordan)이라는 여성 작가이고, 디 리스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까지 맡았다. 뿐만 아니라 촬영감독, 편집감독, 영화음악 작곡가, 음향감독 모두 여성으로 구성하였다. 통상 여성 감독들이 맡는 멜로나 페미니즘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의 아픈 단면을 피하지 않고 맞닥트리는 문제작에 도전한 것이다. 이 영화의 성공은 성적 불평등 사건으로 뒤숭숭한 보수적 할리우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고 평가된다.

고섬영화제에서 특별 심사위원상을 받는 장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미국의 해묵은 사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등장하고 있다. 인종 간의 갈등, 이민 정책의 강경 방침, 성적인 불평등 이슈 등으로 더욱 예민해진 시기에, <치욕의 대지>가 선전을 하면서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가 되었다. 비록 오스카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넷플릭스 영화의 오스카 입성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메리 J. 블라이지가 부른 영화 타이틀 송 'Mighty R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