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에서부터 그림책, 동화,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숀 탠의 작품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기묘한가 하면 사랑스럽고, 우울한가 하면 따뜻하며 비현실적이면서도 어딘가에서 한 번쯤 일어날 것만 같다. ‘국제 미래의 출판미술가 상’ 수상, ‘세계 판타지 어워드’ 최고의 아티스트 2회 선정,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그랑프리 수상… 그림책 네 권을 통해, 수식어마저 화려한 숀 탠의 작품세계를 살짝 들여다보자.

<Desert Storyteller> pastel on paper
<Never be late for a parade>


숀 탠(Shaun Tan)은 이민자로 가득한 호주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난 중국계 말레이시아 이민 2세다. 그의 유년시절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여기’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부모님은?” 하는 질문이 이어지던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는 두 세계의 경계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해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사유한다.

  

1. <도착>

<도착(The Arrival)>(2006)
<도착>은 2006년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 수상작이다
<도착> 모션 그래픽


그의 대표작인 <도착>은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익숙한 곳을 떠난 주인공이 막 도착한 도시는 암호 같은 글자와 거대한 괴물들로 가득한 괴상한 곳이다. 오래된 필름영화를 연상시키는 흑백 일러스트에서 말 통하는 이 하나 없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물씬 묻어나온다.

 

2. <잃어버린 것>

<잃어버린 것(The Lost Thing)>(2002)
<잃어버린 것>은 볼로냐 라가치 명예상 수상작이다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한 <잃어버린 것>


차가운 배관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배경인 <잃어버린 것>에도 기묘한 생명체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로 바빠 도시 한복판에 버려진 이 생명체를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유일하게 갈 곳을 찾아주려는 소년이 나타나지만, 이 생명체가 어떤 존재인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버려진 것’이 갈 곳은 분실물 처리 센터뿐이다.

 

3. <에릭>

<에릭(Eric)>
<에릭>은 단편집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에 수록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에릭은 ‘이곳’의 사람들과 언어도 생각도 통하지 않는다


짧은 동화 <에릭>에는 외국인 교환학생 에릭이 등장한다. 외국인 교환학생 에릭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 에릭에게 사람들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한다. 문화적 차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은 지울 수 없다.

<Dinner Table> Pencil on paper
<Feeding Time> Acrylic, oils, collage
<Eric>


숀 탠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은 여기서 돋보인다. 외로운 이민자에게는 겉모습은 조금 생소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존재가 나타나고, 분실물 처리 센터를 찾아간 소년에게는 진짜 가야 할 곳을 귀띔해주는 청소부가 등장한다. 언어도, 생각도 통하지 않던 에릭은 떠나기 전 감사 인사를 남길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낸다.

 

4. <빨간 나무>

<빨간 나무(The Red Tree)>(2002)
<Darkness overcomes you> Oil and acrylic on paper
<The Red Tree>, giclee print 30x33cm
유튜브 사용자 'ellsiekay'가 <빨간 나무>로 만든 영상


불안과 우울로 얼룩진 하루의 끝, 방 한가운데에 빨간 나무가 소담스럽게 피어나 있는 <빨간 나무> 역시 삶에 지친 이들을 어루만지는 작품이다. 반짝이는 빛을 한 움큼 쏟아부은 듯 환상적인 일러스트가 은은한 풍경 소리처럼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독특한 상상력과 은유로 이루어진 숀 탠의 세계에선 정확한 답이 제시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종종 난해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위로를 얻는 건, 곳곳에 녹아 있는 따뜻한 시각에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 아닐까. 앞으로 그가 또 어떤 보석 같은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되는 이유다.

 

숀 탠 공식 홈페이지
숀 탠 블로그 

이미지 출처 '숀 탠' 홈페이지와 블로그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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