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는 두 편의 트랜스젠더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두 작품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 뉴욕의 성소수자들이 맞닥뜨린 고통과 이를 넘어서려는 에너지를 담았다. 그 소란한 현장은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다. 한편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라며 페미니즘 담론에서 성소수자를 배제하려는 발언이 버젓이 나돌지만, 퀴어 퍼레이드는 역대 최다 인파를 갱신한 2017년이다. 무엇보다 두 편의 생생한 다큐 속에도 '사람'이 산다. 이름 지어짐을 거부하는 사람들.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 드래그 퀸이란 이름 이전에 ‘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했던 이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쉰다.

 

1. <파리 이즈 버닝>

Paris Is Burning|1990|감독 제니 리빙스턴|출연 카멘 앤 브룩, 앙드레 크리스티앙

“나는 나예요. 나만의 특별한 창조물이죠.” 두 트랜스젠더가 해변을 거닐며 부르는 노래의 가사다. 바라던 모습이 되었다며 즐거워하는 이들은 사회적, 종교적 통념에서 벗어나 내가 나의 창조주로서 원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수많은 뉴욕의 게이 하우스에서 운영하는 '볼'. 1987년 당시 드래그 퀸,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이 모여 자신을 드러내던 경연대회다.

 

드래그 퀸들의 무대, ‘볼’을 보여주다

‘볼’에서 트로피를 수여하는 워킹 분야는 수십 가지. 보깅댄스 같은 장기자랑을 해도 되고, 무엇이든 되고 싶은 모습으로 자신을 꾸며도 좋다. 누구 하나 손가락질하지 않는 공간에 모인 흑인, 빈곤층, 성소수자들은 그 누구도 ‘소수자’가 아니다. 볼 중에서도 최고의 경연 분야는 바로 ‘닮기’(Realness)로, 그 종목 자체로 이들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닮기’에서 참가자들은 학교 가는 학생, 도시 사람, 기업체 임원, 야외복 하이 패션을 입은 사람들을 연기한다. 그 순간만큼은 진짜 학생, 직장인, 또는 부자가 되어본다. '닮기'의 평가 기준은 당연히 닮은 정도다. ‘얼마나 더 스트레이트 같은가’, ‘얼마나 볼 바깥의 사람들과 닮아있는가’로 점수가 나뉜다. 익살스러운 표정에 당당한 태도로 워킹을 하지만 그 걸음 아래에는 차별당하지 않고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 깔려있다.

 

꿈 이전에 생존, 퀴어들의 일상

카메라는 '볼' 이외에도 커밍아웃 이후 내쳐진 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준 게이 하우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이런 내용은 1990년대 당시 매우 급진적으로 보였고 그래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전까지의 퀴어 영화들이 단지 동성애를 호기심 어린 태도로 묘사하는 일에 그쳤다면, 이 다큐는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퀴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생존을 위해선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현실은 1990년 촬영 중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 모델로 성공하는 것이 꿈이라던 비너스가 살해당하는 급작스러운 사건으로 증명된다. 이로써 영화는 감히 이들에게 차별을 깨고 어떤 행위를 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첫 번째 꿈이 되어버린 현실을 뒤로하고, 한때 볼에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차지했던 나이든 드래그 퀸의 자조로 영화는 맺어진다.

"버텨내기만 하면, 몇몇 사람이 이름을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세상에 흔적이 남는 거죠. 세상을 뒤바꾸려 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즐기는 게 더 낫죠."

<파리 이즈 버닝> 트레일러

 

2.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

The Death and Life of Marsha P. Johnson|2017|감독 데이비드 프랑스|출연 마샤 P 존슨, 실비아 리베라, 빅토리아 크루즈

"여자처럼 입고 싶은 날엔 여자처럼, 남자처럼 입고 싶은 날엔 남자처럼,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날엔 롤러스케이트를. 그게 마샤죠." 친구의 말에 활짝 웃던 마샤는 1992년 죽었다. 최고의 드래그 퀸, 용감한 트랜스젠더, 노숙자들의 어머니, LGBT 운동의 선구자로 불렸던 사람, 마샤. 포비아들의 트랜스젠더 살인이 들끓던 시절, 많은 이들이 마샤의 타살 의혹을 제기했지만 당시 사건은 자살로 마무리됐다. 카메라는 현재의 시점에서 뉴욕시 반폭력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는 빅토리아와 함께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선다.

다큐의 주 화자인 빅토리아 자신이 트랜스젠더이며, 마샤를 사랑했던 사람 중 한 명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그가 탐정 노릇을 자처하는 이유는 아니다. 빅토리아에게 자료와 증언자들을 다시 들춰내는 일은, 과거의 진실을 바로 세워 현재의 정의를 찾기 위함이다. 마샤가 살해된 것으로 추측되는 1992년 당시 반LGBT 범죄는 천3백여 건이 넘게 신고 됐다. 20여 년이 지나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슬란 네틀스(Isalan Nettles)라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혐오에 의해 살해당했다.

 

LGBT 인권 운동의 또 다른 이름, 마샤

마샤의 시대, 1970년대까지도 미국에서 드래그 퀸 복장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불법이었다. 단속을 견디다 못한 성소수자들이 시위를 일으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게 된 이 결정적 사건 이후로 마샤는 단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는 "드래그 퀸인 제 모습 그대로 사는 것만으로도 여럿을 해방했다고 생각해요." 하고 말하는 동료 실비아와 함께 ‘STAR(거리 복장 도착자 행동 혁명가)’라는 단체를 만든다. 이후 성소수자, 노숙자, 매춘하는 사람들, 가난한 아이들을 돕다 사라졌다. 이 다큐는 마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진 못하지만, 현실의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것으로 충분한 역할을 해낸다.

"꽃이 시들면 잊혀지나요? 씨앗이 땅에 떨어지죠. 그렇게 마샤가 운동으로 영원히 피어나길 바라요."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 트레일러

 

Writer

"불쌍한 것을 알아본다고 해서 좋은 사람은 아냐, 나는 그냥 보는 사람이에요." (요조, 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