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맞이한 12월. 아무리 봄과 가을이 사라져가는 요즘이라지만 11월 중반 대입수학능력시험과 함께 여지 없이 추워지는 자연의 이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다행히 겨울의 초입은 연말이나 다음 해 연초 시상식을 겨냥한 좋은 음악들이 쏟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린 한겨울 몸의 추위만이 아닌 마음의 추위까지 목전에 두고 발매된 국내 신보들을 통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자.

 

1. 예방 접종 - 줄리하 하트 <서교>(2017.10.24)


추위에 맞서 먼저 신경 쓰면 좋을 것은 예방 접종을 맞는 일이다. 지난 슬픔에 대한 소박한 반추를 통해 다가올지 모르는 격한 슬픔을 대비하는 것이다. 모던록 밴드 줄리아 하트의 6집 <서교>는 슬프고 시린 감정을 언제나처럼 마냥 슬프지만은 않게 예방해주는 백신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을방학과 줄리아 하트를 병행하고 있는 리더 정바비는, 가을방학에서의 담담하고 선명한 감정선과 달리 줄리아 하트에서는 같은 듯 다르게 애틋하고 무던한 슬픔을 노래한다.

줄리아 하트 '세러네이드' MV 
공식 뮤직비디오가 없는 이번 앨범을 대신해 줄리아 하트 5집 <인디 달링을 찾아서>(2014)을 덧붙인다


밴드 파라솔에서도 기타를 맡고 있는 김나은이 앨범의 첫 트랙과 두 번째 트랙의 보컬을 담당하며 이미 지나가버린 서정에 어울릴 법한 앨범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행복했단 말 따윈", "행복하란 말 역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며 이별을 준비하는 첫 곡 '미래(未來)'나, "잠 못 든다며" "내게 또 전화"한 그대에게 "살뜸한 교감은 꿈의 안테나" 같은 거라며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콤한 멜로디로 냉소를 답하는 '꿈의 안테나' 모두가 왠지 나를 더 괜찮게 하는 미리 맞는 예방주사처럼 느껴진다.

 

 

2. 비타민 섭취 - 김나형 <How's It Going>(2017.11.09)


겨울에는 추운 날씨 탓에 활동량이 줄고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되면서 다양한 비타민을 의식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는 우리 감성에도 마찬가지. 밴드 '나형이네 ', '레몬 스퀴즈', '시크릿 코드' 등 그룹활동을 거쳐 11월 9일 솔로 첫 정규앨범을 발표한 김나형의 산뜻한 출발이 겨울철 뻔한 발라드와 캐롤에만 익숙해져 가는 느릿한 우리 혈류에 신선한 활력이 될 수 있다.

김나형 '걸으멍 보멍 들으멍'
2015년 밴드 나형이네 시절의 영상이다


차분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와 반주 위에 질박하게 녹아 드는 보컬과 영롱한 비브라폰의 꾸밈음이 자꾸 귀에 맴도는 타이틀 곡 'How's It Going'이나 보다 깔끄러운 목소리로 김나형의 고향인 제주의 풍경과 방언을 전하는 보사노바 곡 '걸으멍 보멍 들으멍', 경쾌한 피아노 반주와 예쁜 가사로 사랑을 전하는 'Love' 등 다채로운 재즈의 매력이 녹아있는 앨범이다.

 

 

3. 운동과 수분 보충 - 디어클라우드 <MY DEAR, MY LOVER>(2017.11.20)


예방 주사를 맞고 비타민을 보충했음에도 별 수 없이 감기에 걸렸을 때는 적절히 땀을 빼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마음은 몸과 다르니 진짜 땀을 빼고 물을 마시는 것 대신 눈물을 잔뜩 빼는 것으로 대신하자. <서교>처럼 적당히 처연하게 아름답도록 여지를 주거나 쿨한 것으론 안 된다. 디어클라우드의 신보처럼 처절하게 슬퍼하고 매달리는 것이 그 방법이다.

디어클라우드 '네 곁에 있어' MV


이번 4집에는 지난 4년 네 번의 겨울이 찾아오는 동안 디어클라우드가 느낀 괴로움과 내적 고통,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견뎌내며 지어낸 열두 가지의 슬픔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첫 곡 'Closer'의 우는 듯한 첼로 인트로가 이후 앨범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별의 상처를 여러 시점과 관점에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서부터 물질에 볼모 잡힌 현실의 고단함('21세기의 히어로는 어디에')이나 '엄마의 편지'도 전하는 등 다양한 슬픔을 꿋꿋함과 울분이 공존하는 목소리로 토해내는 나인의 보컬을 들으며 그 아픔 속에 함께 젖어들 수 있다. 눈물의 여운은 장엄하게 고조되다 아스라히 스러지는 아웃트로 연주곡 'my lover'로 즐기면 된다.

 

 

4. 소박하지만 단단한 일상의 관리 - 정밀아 <은하수>(2017.11.28)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마음의 추위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대원칙은 어떤 방식이든 결코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11월의 끝자락 발표된 정밀아의 2집 <은하수>는 그와 같은 원칙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앨범이다. 타이틀 곡 '별'과 싱글로 발표되어 먼저 주목 받았던 포크 트랙 '꽃'이 마음으로 단단한 뿌리를 내려 중심을 잡는다.

정밀아 '꽃'
나태주 시인의 시로 만들어 2016년 발표된 싱글 버전으로
이번 앨범에는 편곡을 가미한 앨범 버전이 새로 수록되었다


물론 그 가운데에도 오해가 있고('말의 이해'), 별것 없이 스스로 한없이 부끄러울 때도 있으며('그런 날'), 괜스레 "애잔했던" 마음이 다시 "분주해"지기도 한다.('미안하오') 그러나 결국 차분하게 걸음걸음을 지켜주는 기타의 따스한 스트로크와 정밀아의 조곤조곤한 가사처럼, "누구도 내게 수고했다 그런 말들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나는", 우리는 "오늘을" 산다. "지친 어깨를 싣고서 버스에 몸을" 싣지만 "귀엔 노래가 흐른다".('노래가 흐른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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