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가 발달하지 않았던 재즈 전성기 시절, 기타는 소리가 작아 별로 인기가 없었다. 색소폰이나 트럼펫 주자들이 솔로이스트로 인기를 누릴 때 기타리스트는 밴드의 뒤편에서 리듬 섹션을 담당했다. 하지만 기타에는 코드(Chord)라는 무기가 있었다. 다양한 코드 주법을 개척한 찰리 크리스찬(Charlie Christian),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등 걸출한 스타를 보면서 꿈을 키운 젊은 기타리스트들은, 일렉트릭 기타라는 진일보한 악기의 발전과 함께 1970년대 퓨전 재즈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들 중 자신만의 독보적인 연주 스타일을 개척한 세 명의 재즈기타 명인이 공교롭게 2017년 한 해에 연이어 세상을 떠나며 팬들을 아쉽게 했다.

 

래리 코리엘(Larry Coryell, 1943~2017)

재즈에 일렉트릭 기타의 날카로운 음을 도입하여 ‘퓨전 재즈의 대부’라 불린 그는, 2017년 2월 뉴욕의 이리듐 재즈클럽에서 금요일, 토요일 2회 공연을 마치고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자연사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밴드 Eleventh House의 새로운 앨범 발표를 앞둔 터라 더욱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는 1970년대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알디 메올라(Al Di Meola)와 함께 재즈 록(Jazz Rock)을 개척한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었다.

두 번째 앨범 <Coryell>(1969)에 수록한 ‘The Jam with Albert’는 재즈 록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곡이다

그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직업적인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치코 해밀튼(Chico Hamilton)의 밴드에서 연주하다가 그의 도움으로 데뷔했고, 비브라폰의 명인 게리 버튼(Gary Burton)과의 듀오 연주로 두각을 나타냈다. 1973년에 결성한 밴드 Eleventh House는 존 맥러플린의 ‘Mahavishnu Orchesra’와 함께 재즈 록의 대표 밴드로 손꼽힌다. 70년대 중반부터 한동안 어쿠스틱 기타로 전향하였으나 수년 전 Eleventh House를 재결성하면서 전성기의 연주 스타일로 돌아오던 차였다.

1971년 몽트뢰에서 게리 버튼과 함께 연주하는 래리 코리엘. 화질은 흐리나 전성기 시절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척 로브(Chuck Loeb, 1955~2017)

오랜 암 투병 끝에 2017년 7월에 사망한 척 로브는, 버클리 음대를 나와 스탄 게츠(Stan Getz)의 밴드에 합류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스페인 출신 가수인 부인과의 결혼식에서 스탄 게츠가 들러리를 설 정도로 두 사람은 각별했다. 스텝스 어헤드(Steps Ahead)의 멤버로 활동하며 마이클 브레커의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2010년부터는 래리 칼튼의 후임으로 퓨전 재즈그룹 포플레이(Fourplay)의 멤버로 활동했다.

최고의 솔로 히트곡 ‘The Music Inside’(1996)

그의 연주는 전형적인 퓨전 스타일로 스무드 재즈(Smooth Jazz)나 팝 차트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20여 장의 솔로 앨범 중 <The Music Inside>(1996)의 타이틀 송은 6주 연속 재즈차트 1위를 기록하였고, ‘Uppercut’은 기타를 배우는 학생들이 연습하거나 시험을 치르는 스탠더드 곡으로 널리 알려졌다. CNN 헤드라인 뉴스의 엔딩 음악이나 자신이 열혈 팬이었던 뉴욕 양키스의 홍보 음악을 만들기도 했고, 영화음악 분야에서도 자주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였다.

앨범 <When I’m With You>(2005)에 수록한 ‘Uppercut’

 

 

존 애버크롬비(John Abercrombie, 1944~2017)

곧 이어 8월에는 ECM 레이블의 간판 기타리스트 존 애버크롬비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독일의 신생 재즈 레이블 ECM의 창업자 맨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와 인연을 맺으며, 앨범 <Timeless>(1974)를 시작으로 40여 년 간 ECM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젊은 시절에는 버클리 음대에 다니면서 브레커 브라더스와 연주하며 보스턴 재즈 신에서 이름을 날렸다. ECM 군단에 합류하며 잭 드조네트(Jack De Johnette), 랄프 타우너(Ralph Towner), 데이브 홀랜드(Dave Holland),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 등 재즈 뮤지션들과 실험적인 재즈 음반들을 발표했다.

<Timeless>의 타이틀 곡. 실험적인 앰비언트 음악으로 호평이 이어졌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끊임없이 변하고 진화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40여 장의 앨범을 출반했지만 콜라보 앨범은 80여 장에 이를 정도였다. 화려한 주법보다 엄지손가락만을 이용하여 필요한 음을 퉁기며 인터벌을 중시했다. 2003년에는 뉴욕주에 있던 자택이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면서 그가 평생 애용한 기타, 오디오 장비와 녹음한 파일들이 불에 타 한동안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 무엇보다 안타까워했던 것은 오랫동안 정든 야마하 피아노와 그의 반려묘를 잃은 것이었다.

존 애버크롬비의 솔로 연주 ‘Alice in Wonder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