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토모 카츠히로의 <아키라(Akira)>

고도로 발달한 근미래. 알 수 없는 폭발과 함께 3차 대전이 발발하고 그 후 30년 뒤 네오도쿄를 중심으로 폭주족 ‘카네다’ 일당이 도시의 밤을 누비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카네다 일당 중 한 명인 ‘테츠오’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정부의 실험체가 되면서 알 수 없는 힘을 얻게 된다.

<아키라> 예고편

1982년 주간 영 매거진에서 만화 <아키라>의 연재를 시작으로 1988년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등장했다. 20억 원의 제작비, 16만 장의 셀과 2000장의 컷. 극도로 사실적이고 정교한 화면들. 원작 만화가 오오토모 카츠히로(Katsuhiro Otomo)가 연출까지 맡으면서 오오토모 카츠히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2017년 8월 정식으로 개봉했다.

 

츠카모토 신야의 <철남(鐵男: Tetsuo, The Ironman)>

인간을 초월하는 스피드를 얻고 싶었던 남자는 자신의 몸에 쇠를 집어넣으면서 신체의 한계를 넘으려고 한다. 그러던 중 사고로 자동차에 치이고 만다. 차에 타고 있던 커플은 남자를 유기한다. 그 후 커플의 몸은 점점 기이하게 변형하기 시작한다.

<철남> 예고편

츠카모토 신야(Tsukamoto Shinya)는 <아키라>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고, 영화의 주인공인 ‘테츠오’의 이름을 가져와 1989년 영화 <철남>을 만들었다. 폭주하는 힘, 인간을 초월한 육체, 사이버펑크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철남>은 <아키라>에 대한 오마주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변형하는 신체

<아키라>와 <철남>의 주인공은 약하다. <아키라>의 테츠오는 폭주족 일당인 카네다에게 항상 보호를 받는 입장이고 <철남>의 주인공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둘 다 ‘강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에 의해 강력한 힘을 얻는다. 그리고 육체의 변형을 일으킨다. 그것도 끔찍한 방식으로. 살이 찢어지고 기계가 몸속에서 튀어나온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은 불안정하며 제어할 수 없는 힘을 통해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하기도 한다. 나약한 자신이 우연에 의해 육체의 변형을 얻었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둘은 다르다. <아키라>의 변형은 고도로 발달한 미래에 인간이 더 이상 컨트롤 할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의 은유처럼 보인다. 그것은 핵무기처럼 거대한 살상 무기이기도, 극단적으로 발전한 사회의 부패이기도 하다. 반면 <철남>의 변형은 훨씬 개인적이다. 어쩌면 변형의 이유도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우연찮은 사건으로 변형하는 육체를 얻게 되고, 자신을 공격해오는 또 다른 몸에 저항하기 위해 힘을 사용한다. ‘나는 화가 난다. 그리고 저항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필요하다.’라는 것으로 함축한다. 이런 방식은 어쩌면 사이버펑크보다 오히려 소년만화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츠카모토 신야는 만화를 듬뿍 보고 자란 세대이고 만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아키라>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키라> 국내 포스터

“나는 만화 제네레이션이다. 나의 삶의 너무나 가까운 곳에 만화가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본 것을 분량으로 친다면 만화가 제일 많을 것이다. 만화는 리얼하지 못하지만,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나 자신 속에서는 가장 리얼하다. 기성세대들은 내 영화를 보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피가 쏟아져 나올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얼굴이 한꺼번에 퉁퉁 부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난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만화적인 발상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츠카모토 신야 월간 <KINO> 인터뷰 중

그 외에도 츠카모토 신야는 많은 것들에 영향을 받았다. 어떤 부분은 로망 포르노를 연상시키고 어떤 부분에서는 특촬물을 보는 것 같다. 오오토모 카츠히로에게 사이버펑크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담기 위한 중요한 도구라면, 츠카모토 신야에게 사이버펑크란 하나의 영향 받은 요소에 불과하다. <철남>은 그런 요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사이버펑크의 시선으로만 <철남>을 바라보는 것은 부족하다. 그의 전작 <전봇대 소년의 모험>(1987)에도 사이버펑크적인 혹은 SF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그 외에는 다분히 만화적이다. 극 중 소년은 등장부터 등에 전봇대를 달고 나오는데 어째서 몸에 전봇대가 존재하는지 영영 알 수 없다. 츠카모토 신야의 초기 작품은 오히려 ‘펑크(Punk)’적이다. ‘저항하고 분노한다.’ 실제로 츠카모토 신야는 펑크와 인연이 있어 보인다. <철남>의 주인공을 맡은 타구치 토모로오는 실제로 펑크밴드를 했었고 <전봇대 소년의 모험> 엔딩 크레딧에서는 귀여운 애니메이션과 함께 펑크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쩌면 츠카모토 신야에게는 깊은 의미보다는 ‘어떻게든 자신의 영화를 만든다’는 언더그라운드적인 정신이 더욱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촬영과 연출 미술을 모두 담당하고 스톱모션 기법을 가져오고 흑백필름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방식들은 ‘자신의 약점을 비틀어 장점으로 바꾸는’ 기폭제가 되었다. <아키라>가 사실적이고 섬세한 연출로 영화 같은 표현을 추구했다면, <철남>은 부자연스럽고 과격한 연출로 오히려 더욱 만화처럼 보이게 했다. 둘의 지향점이 서로의 매체를 향해 엇갈려 있는 지점이 무척 흥미롭다.

 

두 거장의 현재

왼쪽부터 오오토모 카츠히로, 츠카모토 신야

<철남> 시리즈를 제외하면 현재의 츠카모토 신야의 작품에서 SF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기괴한 것들을 만들어 내고 펑크적인(혹은 도시적인) 사운드와 빠르고 과격한 화면을 사용하지만 조금 더 내밀하고 복잡해졌다. 최근작 중 하나인 <코토코>(2011)에서는 주인공 ‘코토코’가 사람의 선과 악적인 측면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아이를 돌볼 수 없을 정도로 미쳐간다. 영화는 코토코가 춤을 추는 것을 흔들리는 핸드헬드로 담으면서 시작한다.

<코토코> 예고편

반면 오오토모 카츠히로는 <아키라> 이후에도 계속 SF적인 상상력을 사용하여 <노인Z>(1991), <메모리즈>(1995)를 연출하고 <메트로폴리스>(2001)의 각본을 맡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 오다 2013년, <쇼트피스>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은 내놓지 않고 있다.

 

Writer

만화를 그리고 소설을 쓴다. 때때로 움직임 작업을 한다. 그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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