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케이블 방송사 AMC는 BAFTA(영국 아카데미상)를 수상한 덴마크의 인기 형사물 <Forbrydelsen>(The Crime)을 개작한 신작 <킬링(The Killing)>의 첫 에피소드를 야심 차게 방송했다. 평론가와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음산한 배경과 실종된 10대 여성을 찾아 나서는 스토리 전개는 마치 10여 년 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미드 <트윈 픽스>를 연상케 했다.
언론에서는 <킬링>의 제작자인 비에나 수드를 <트윈 픽스>의 명감독 데이비드 린치와 비교하며 찬사를 보냈고, AMC는 홍보 차원에서 이를 은근히 부추겼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수사물과는 차별화한 형사 캐릭터와 이를 연기한 배우들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미레유 에노스(Mireille Enos)가 연기한 ‘사라 린든’, 조엘 킨나만(Joel Kinnaman)이 연기한 ‘스테판 홀더’, 두 형사 모두 개인적인 문제와 복잡한 가정사를 가진 채 살아가는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하지만 포기와 타협을 모르고 작은 실마리에 끈질기게 집착하며, 자칫 단순 가출이나 실종으로 지나칠 수 있는 사건에 매달린다. 형사 역을 맡은 두 배우 모두 유명하지 않아 웬만한 영화광이라 해도 기억할 만한 필모그래피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미레유 에노스는 <월드워Z>(2013)에서 브래드 피트의 부인 역으로 잠깐 나왔고, 조엘 킨나만은 스웨덴 출신의 배우로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에서 악당 중 한 명으로 잠깐 얼굴을 비쳤다.
시즌 1의 첫 에피소드는 시청자 270만 명, 두 번의 재방송까지 무려 46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AMC 드라마 중 <워킹데드>(2010~) 다음으로 높은 수치였다. AMC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시청자들의 흥미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 형사는 실마리를 쫓다가 허탕 치기 일쑤였고 또 다른 실마리를 쫓는 지루한 전개가 반복되자 팬들의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범인의 정체가 오리무중인 채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자 평론가들의 반응은 부정적으로 변했고 팬들의 분노도 커져갔다. 한번 떨어진 시청률은 시즌 2에서도 회복되지 않았고 갈수록 하락했다. 시즌 2 종료 후 AMC는 시리즈를 더 이상 제작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가, 넷플릭스와 제작비를 분담하는 조건으로 다시 시즌 3를 재개했다. 하지만 시즌 3 또한 이전 시즌의 재현이었고, 넷플릭스는 단독으로 시즌 4 에피소드 8편으로 시리즈를 마감했다.
결국 <킬링>은 미국 TV 역사상 가장 우여곡절 많은 드라마로 남았다. AMC는 두 번이나 시리즈를 종결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고, 구원투수로 나섰던 넷플릭스조차 떠나간 팬심을 돌릴 수 없었다. 뛰어난 캐릭터 설정과 음산한 배경의 비주얼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스토리 전개에 실패했다. 시즌마다 관심 있게 지켜보던 열혈 팬들조차 시즌이 끝날 무렵이 되면, “이러려고 시작했나?” 하는 허탈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두 형사 캐릭터에 대한 팬들의 사랑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