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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디트로이트의 식당에서 10대 소녀 한 명이 10센트짜리 동전을 주크박스에 넣고 음악을 들었다.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당대 최고의 재즈 스타 찰리 파커의 인기곡 ‘Now’s the Time’이었다. 그 곡을 듣는 순간 주정꾼 가족으로 둘러싸여 빈곤하고 암울했던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 재즈 아티스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찰리 파커의 연주를 듣기 위해 14세부터 화장을 하고, 모자를 눌러 쓰고 나이 제한이 있던 클럽에 몰래 드나들었다. 그녀를 알게 된 파커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고, 그녀는 그와 가까이 지내기 위해 무작정 뉴욕으로 떠난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2012년, 그녀는 재즈 아티스트에게 최고 영광인 NEA(National Endowments for Arts) 재즈 마스터즈 평생공로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고향 디트로이트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담은 곡 ‘Sheila’s Blues’를 부르는 쉴라 조던(2012)

하지만 70여 년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찰리 파커의 오리지널 ‘Chasin’ the Bird’는 그녀를 염두에 둔 곡이라 소문날 정도로 그와 가깝게 지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파커는 사망했고, 파커의 피아니스트 듀크 조던(Duke Jordan)과의 결혼 생활은 딸 하나를 남긴 채 끝났다. 파커 만큼이나 마약 중독자였던 남편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외도를 하기 일쑤였고 어느 날 집을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싱글맘이 된 그녀는 딸을 키우기 위해 직장을 얻어 타이핑과 비서 일을 시작하였고, 가까스로 클럽에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두 가지 일을 병행했다. 어릴 적 가난했던 생활로 돌아갈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녀의 투잡 생활은 58세가 될 때까지 30여 년 간 계속되었다.

스캣 싱잉(Scat Singing)과 베이스와의 듀오 편성은 쉴라 조던 음악의 특징이다

당시 흑인 재즈 스타를 쫓아다니는 백인 여성에게 쏟아진 편견도 그녀를 괴롭혔다. 흑인 남성들과 함께 뉴욕 거리를 걷다가 백인들에게 구타당하기 일쑤였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한 경찰이 그녀에게 총을 보여주며, “집에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애가 당신처럼 흑인들과 놀아난다면, 총으로 머리를 쏘아 버렸을 거다.”라며 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특유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이를 개의치 않았다. 당시 최고의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에서 먼저 음반 발매를 제안할 때까지 그녀는 재즈 클럽에서 노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을 정도였다.

호평을 받은 데뷔앨범 <Portrait of Sheila>(1963)의 'Falling in Love with Love'

블루노트에서 데뷔 앨범 <Portrait of Sheila>(1963)를 낼 때 그녀의 나이는 이미 35세였다. “노래가사로 비밥을 한다”는 호평이 이어졌지만, 어린 딸 트레이시를 돌보느라 가수 생활을 중단하면서 두 번째 음반은 그로부터 12년 후에나 낼 수 있었다. 나이 40대 중반에 트레이시를 다 키우고 나서야 본격적인 음반 발매를 시작하였고, 뉴욕 시립대에서 30여 년 간 재즈 강의를 하면서 재즈 교육자의 명성도 함께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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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산업 컨설턴트로 일하는 딸 트레이시와 함께

이제 나이 90을 바라보는 지금도 뉴욕의 원룸 아파트에 혼자 살며 재즈 가수와 교육가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수년 전에는 한적한 시골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여전히 바쁘고 행복한 노년 생활을 즐기고 있다.

재즈 워크샵에서 파커의 음악에 대해 강의하는 조던(2016)

2014년에 출간된 그녀의 회고록 <Jazz Child: Portrait of Sheila Jordan>은 암울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소녀가 찰리 파커와 막역한 사이가 되고, 결혼 생활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재즈 레전드가 되기까지의 해피 엔딩 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싱글 맘의 삶이 가수 경력에 저해가 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나는 한 번도 경력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음악을 했기 때문에 계속한 것 뿐이죠. 나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해서 이를 바꿀 수 있는 길은 노래밖에 없었어요.”라고 답한다.

쉴라 조던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