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다양한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씨네허브(CINEHUB)와 인디포스트가 손을 잡았다. 씨네허브X인디포스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신진 감독들의 단편영화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감독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전하려 한다. 단편영화가 생소한 관객들에게 친절하고 쉬운 창구가 되어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삶이 황폐해져 도서관에 구비된 모든 책을 읽고 자살하기로 결심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영화 <독서충>이다. 특히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배우 권해성과 YG케이플러스의 신인 모델 정의성의 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자칫 잔인하고 어둡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를 치밀한 플롯과 탄탄한 연출을 통해 완성도 있게 풀어낸 단편영화 <독서충>과 그 제작기를 담은 인터뷰를 지금 들여다보자.

<독서충>

BookWorm ㅣ2016ㅣ감독 도영찬ㅣ출연 권해성, 정의성, 송지아ㅣ19min 

경제적 파탄과 이혼으로 삶이 황폐해져 버린 윤식은 죽음을 생각한다. 그의 유일한 낙은 독서다. 그는 자신이 10년 넘게 다니던 도서관에 있던 모든 책을 다 읽고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리뷰

‘윤식’(권해성)은 죽음을 목적으로 독서를 한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으면 죽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의 삶에는 생기가 없다. 사채업자의 빚 독촉, 무기력한 삶의 태도, 라면으로 때우는 끼니처럼 윤식은 공허하다. 모순적이게도 그는 스스로가 ‘죽을 만큼 힘들기’ 때문에, 죽기를 망설인다. 그는 죽음을 위해 여러 가지 장치와 단계를 만들고 수행한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으면 죽는 것, 자살을 위해 칼을 사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도서관에는 매일마다 새로운 책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도서관은 끝없이 펼쳐진 또 하나의 세계 같은 곳이다. 윤식에게는 책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는 책을 죽음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 책이 그를 구원한다. 죽지 않고 살아갈 모종의 이유가 된다. 사실 처음부터 주어진 것은 목적과 수단이 아니라 책 그 자체일 뿐이다. 그것을 죽음의 수단으로 삼을지, 삶의 양식으로 삼을지를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리뷰 최준하 369cjh@gmail.com

 

감독 인터뷰

Q <독서충>의 시작은 무엇이었나요?

YG케이플러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어요.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고요. 사르트르의 저서 <구토>에 주인공 ‘로캉탱’이 도서관에서 독서광을 만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독서광이 자살을 해요.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어요. 거기서 <독서충>의 이야기를 생각했고요.

 

Q 연출의도에서 ‘책은 인생의 메타포’라고 말했어요. 영화의 주요 소재로 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책이나 영화 같은 모든 예술은 삶에 대한 재인식이라 생각해요. 하나의 이야기에 하나의 인생이 담겨있는 거죠. <독서충>의 주인공이 책을 읽는 것도 타인의 삶을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모든 책을 읽고 죽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모든 삶을 살아보고 죽겠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Q 편집을 직접 맡아서 했는데, 그 과정에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었나요?

단편 영화는 러닝타임이 짧은 만큼, 관객에게 지루함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평범하게 만들기도 싫었고요. 다소 거칠더라도 호흡이 빠르고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여러 장면을 짧게 편집해 빠른 몽타주를 보여주고, 전체적인 편집의 속도도 높였죠.

Q 영화의 도입부를 지하철에서 시작하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지하철을 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다른 사람들이 출근을 하듯 주인공도 도서관에 드나든다고 생각하길 바랐어요. 또, 지하철에서 마주칠 수 있는 여러 평범한 사람들처럼 주인공도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Q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장면을 통해 어떤 의미를 전하고 싶었나요?

죽음을 앞둔 주인공에게는 지갑 속의 돈도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주인공이 책을 상권만 빌리거나, 손목을 긋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서는 죽을 용기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요. 마침 찾으러 갔던 책과 손목을 그었던 칼이 그를 살리는 것처럼요.

그런 장면들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주인공은 죽음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해 다시 살게 되죠. 죽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어쩌면 열심히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Q 주인공의 목숨을 살린 책은 어떤 내용의 책인가요?

‘제목이 없는 책’이에요. 미술팀에서 제목이 없는 책을 만들었어요. 마침 주인공의 상황과 비슷해서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Q 감정을 삼키며 대사를 뱉던 주인공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마지막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에요.

주인공은 친구도 없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내레이션이 그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화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이 죽음에 근접한 경험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깨닫고 혼란을 겪죠. 그리고나서 그를 압박하던 사채업자에게 그동안 억눌렸던 모든 걸 쏟아 붓고 헛웃음을 지어요. 허탈하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하는, 주인공의 복합적인 심리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Q 현재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백두산을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준하 369cjh@gmail.com

 

자료제공 씨네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