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에 대해 평소 자주 고민하는 편이다. 힙합이 단지 음악만이 아님을 알게 된 후부터 고민은 더 넓고 깊어졌다. 무하마드 알리가 힙합의 뿌리에 미친 영향을 조사하거나 오바마의 당선에 ‘힙합 제너레이션’이 기여한 면모를 살폈던 건 이 때문이다. 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랩 구조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힙합을 통해 청년을 이해하는 작업을 사회학자와 함께 진행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힙합에 대한 수많은 고민을 거쳐 왔지만 그중 MVP(?)를 하나만 뽑으라면 역시 진짜힙합과 가짜힙합에 대한 고민이다. 무엇이 진짜힙합이고 무엇이 가짜힙합인가. 무엇이 리얼이고 무엇이 페이크인가. 최근 논란을 일으킨 론조 볼(Lonzo Ball)의 발언은 나를 다시 이 고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올해 NBA에 전체 2순위로 입단한 신인 농구선수 론조 볼은 얼마 전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시대에 뒤처진 거 아냐? 누가 요즘 나스(Nas) 음악을 들어? 진짜힙합은 미고스(Migos)랑 퓨쳐(Future)야.”

97년생의 이 한마디에 힙합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발끈한 힙합 팬들이 일제히 론조 볼을 공격했다. “나스가 데뷔앨범 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녀석이 헛소리하고 있네. 니가 좋아하는 요즘 래퍼들이야말로 다 쓰레기야.” 래퍼들도 론조 볼에게 한마디씩 늘어놨다. 힙합의 제너레이션 갭이 다시 불거지는 순간이었다.

론조 볼의 나스 관련 발언 영상

물론 나 역시 론조 볼의 발언이 불쾌하다. 나스는 너에게 그따위 말이나 들을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론조 볼의 나이와 자라온 환경(이를테면 ‘인터넷 세대’라든가)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가 미고스와 퓨쳐를 가짜로 취급하며 나스를 추켜세우는 편이 모양새는 더 이상하다. 나의 영웅이 나스와 제이지이듯 그의 영웅이 미고스와 퓨쳐인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확실히 해두자. 나는 론조 볼이 ‘리스펙트’에 대해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힙합 역사 수업도 더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요즘 래퍼는 다 쓰레기야.”라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불만이 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아래 영상을 보게 됐다. 래퍼 멀스(Murs)가 ‘HIPHOPDX’를 통해 진행하는 영상 시리즈 중 하나로, 그는 이 영상에서 진짜힙합과 가짜힙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장이 나의 평소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멀스 ‘Real Hip Hop Vs. Fake Hip Hop'

멀스는 데뷔 때부터 내가 좋아하던 래퍼였다. 벌써 십수 년이 지났으니 그도 이제 고참 중의 고참이다. 하지만 멀스는 얼핏 예상되는 말, 그러니까 “요즘 젊은 래퍼들은 멍청하고 힙합은 이제 죽었다.”는 말 대신 꽤나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을 늘어놓고 있었다. 비록 그와 관련한 내용을 여기에 모두 옮길 수는 없다. 맘먹으면 책 한 권도 쓸 수 있는 주제다. 대신에 인상 깊었던 몇 가지만 말해보자. 그의 칼끝은 오히려 힙합의 오랜 팬을 자처하는 순수주의자들을 향한다.

먼저 “힙합은 원래 사회에 용기 있게 저항하고 삶을 진하게 노래하는 깊고 멋진 것이었는데, 지금은 돈 자랑이나 하고 의미 없는 가사나 쓰는 나쁜 것으로 변해버렸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멀스는 힙합의 전통적인 구호 하나를 대뜸 되돌려준다. “Make money money, make money money money / Take money money, take money money money" 그 후 그는 1980년대부터 힙합음악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이 유명하고 존재감 확실한 구호가 오늘날 젊은 래퍼들의 가사와 무엇이 그리 다른지 되묻는다.

“예전 래퍼들은 자기 스타일이 확실하고 저마다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는데 요즘 래퍼들은 다 비슷비슷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멀스는 반문한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황금기 래퍼들의 이름을 봅시다. 스쿨리 디(Schoolly D), 비지 비(Busy Bee), 스테디 비(Steady B)……. 이름뿐 아니라 랩 억양, 비트 등 모든 것이 엇비슷했어요. 그런데 퓨쳐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생각해봐요. 그가 내는 소리는 당시의 누구와도 닮지 않았었죠.”

퓨처 ‘Sh!t’ MV

멀스는 이밖에도 미고스와 다스에프엑스(Das EFX)를 비교하며 미고스를 옹호하기도 하고, 예전 래퍼들이 광고를 찍고 주제가를 불렀던 건 다 잊어버리고 요즘 래퍼들의 상업적 행보만 비난하는 이중 잣대를 꼬집기도 한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멀스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짜힙합과 가짜힙합에 대해 논하려면 최소한 멀스 정도의 합리와 균형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힙합의 오랜 팬을 자처하는 많은 이들은 여전히 이분법으로 힙합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나의 (옛) 시대는 진짜고 너의 (새) 시대는 가짜다. 그러나 그런 게으르고 느슨한 이분법은 단정의 쾌감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줄지는 몰라도 실체적 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힙합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멀어졌다고, 혹은 요즘 래퍼들이 나를 불쾌하게 한다고 그것이 꼭 잘못이나 틀림을 의미하진 않는다. 또 과거를 실제보다 아름답게 기억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그것을 현재를 공격하는 발판으로 삼는 건 그리 성숙한 태도는 아니다.

모든 변하는 것 중에는 나빠진 것도 있지만 그저 변하기만 한 것도 있고, 오히려 더 좋아진 것도 있기 마련이다. 이 차이의 디테일을 합리와 균형으로 마주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다.

 

Writer

힙합 저널리스트. 래퍼는 아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힙합을 하고/살고 있다.
김봉현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