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기대보다 알찬 도시다. 인구 규모로 따지자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Amsterdam)이나 일본의 오사카(Osaka)와 얼추 비슷하고, 미국의 보스턴(Boston) 또는 캐나다의 밴쿠버(Vancouver)를 두 배 이상의 차이로 압도한다.
그렇다면 2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대 도시 대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외지인의 입장에서 대구에 대해 잘난 척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김광석 거리나 매운 갈비에 대해 떠들어도 고작 비웃음만 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구가 맥주 애호가에게 사랑받는 도시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서 고속열차를 타면 2시간 이내, 대전과 부산이라면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대구에서 마셔보자!

 

옥토퍼베스트는 가을에, 대구 치맥 페스티벌은 여름에!

'2017 대구 치맥 페스티벌' 홍보 영상

대구가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다. 분지 지형은 대기의 이동과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더워진 공기가 한 곳에 머물게 되어 무더운 여름을 자아낸다고 한다. 대구의 별칭이 ‘대프리카’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독일의 옥토퍼페스트(Oktoberfest)가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이벤트라면, 대구의 치맥 축제는 대구의 무더위와 전국적인 ‘치맥’ 열풍이 만나 탄생한 진정 뜨거운 행사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범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의 상당수가 대구에서 첫 점포를 열었다는 점 또한 우리의 관심을 끈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행사를 즐기기 위해서는 내년 여름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가을의 끝자락에서 뜨거운 여름을 상상해보는 것도 고즈넉한 설렘이 될지 모른다.

 

어쩌면 한강 이남에서 가장 화려한 맥주 - 대봉동 퍼센트(Percent)

퍼센트 외관

대구 시내 대봉동 일대는 근사한 커피하우스와 레스토랑 등이 정겹게 모여 있는 사랑스러운 동네다.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 혹은 망원동의 이른바 ‘망리단길’에 빗대 ‘봉리단길’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지역만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와 묘한 매력을 굳이 비교를 통해 희석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봉도서관 앞쪽으로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퍼센트는 '크래프트 맥주, 오직 그뿐!(Craft beer, nothing else!)'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이곳에서는 국내외에서 엄선한 크래프트 맥주를 제공하고 있는데, 10종류 안팎으로 구성된 라인업은 수시로 변경되고 국내 업체의 맥주와 해외 브루어리의 제품이 사이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애초에 요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가게가 아니기에 음식 메뉴에서 특별한 개성을 찾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부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바비큐 파티에는 한 번쯤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데, 주인장이 직접 그릴에 구워 제공하는 각종 육류는 맥주와는 물론 나른한 주말 오후와도 환상적인 페어링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가게와 마주한 골목 담벼락에는 기억 저편 어디쯤에서 봤음직한 뮤직비디오가 프로젝터를 통해 상영된다. 맥주 또는 분위기, 혹은 이들 둘 모두에 취한 사람들이라면 들리지 않는 음악 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듯하다. 단체보다는 두세 사람이 오붓하게 방문하기에 좋을 듯!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로 206
전화 053-252-6224
영업시간 17:00~02:00 (일요일 17:00~01:00)

 

대구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 동문동 릴렉스053(Relax053)

릴렉스053 외관

지난 몇 년 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 영향력을 키우는 동시에 우리 삶의 한켠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다. 더불어 이러한 매체에 특화된 문화적 양상들이 이전에 비해 더욱 주목받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표피적인 특징만이 부각되는 것에 대해 비판과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생겨났다. 하지만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을 통해 우선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이후 자신이 진정 보여주고 싶은 것을 드러낼 기회를 모색한다면 이러한 비판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자판기 모양의 출입문으로 한때 화제의 중심에 섰던 릴렉스053은 호기심을 인정으로 바꿔놓은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아직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대구 지역에서 편안하게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주인장의 의도를 상호를 통해 읽을 수 있다. 참고로 053은 대구 지역의 전화번호 앞자리에서 가져왔다.

20여 개에 달하는 생맥주 라인업은 다양한 종류의 맥주로 채워 훌륭한 구색을 보여주고 있는데, 부산을 대표하는 양조장 가운데 하나인 와일드 웨이브 브루잉(Wild Wave Brewing)과의 협업을 통해 자체 생산 맥주를 선보이고 있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2000년 초중반 홍대 등지의 클럽을 연상시키는 실내 분위기와 그루브있는 음악은 친구들과의 유쾌한 수다를 부추긴다. 소위 가성비 높은 피자와 더불어 다채로운 맥주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딱!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210
전화 053-423-0411
영업시간 12:00~01:00 (주말 12:00~02:00, 목요일 17:30~01:00)

 

사진 안호균

Writer

번역과 잡다한 글쓰기를 취미이자 밥벌이로 삼고 있다. 맥주 입문서 <맥주 맛도 모르면서> 출간 후, 맥주판 언저리를 맴돌며 강연과 원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안호균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