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도 후반부터 힙합 프로듀서들은 과격한 힙합 본류에서 벗어나 재즈 멜로디를 샘플링한 곡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재즈 랩(Jazz Rap)이라는 서브 장르를 만들어냈다. 힙합을 베이스로 관악기 연주를 삽입하기도 하고 정치적 자유와 아프리카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가사에 담기도 했다. 재즈의 즉흥연주 방식을 응용한 프리스타일 랩이 시도된 것도 이 무렵이다. 재즈 뮤지션들도 <Doo-Bop>(1992)(마일스 데이비스)이나, <Dis Is da Drum>(1994)(허비 행콕) 같은 힙합적인 요소를 가미한 앨범을 발표하며 새로운 트렌드에 화답했다. 1990년대 초반 유행처럼 번지던 재즈 랩의 필수 곡들을 뽑아 보았다.

 

드림 워리어즈 ‘My Definition of a Boombastic Jazz Style’(1990)

‘능란하고 지적인 단짝’이라 불리던 캐나다 토론토 출신 힙합 듀오 드림 워리어즈(Dream Warriors)의 데뷔 앨범 <And Now the Legacy Begins>(1990)에 수록되어 인기를 끈 곡이다. 이 곡은 퀸시 존스가 1962년에 발표하여 빅밴드 보사 노바의 클래식이 된 ‘Soul Bossa Nova’를 과하게(?) 샘플링하였는데, 최초로 재즈 랩을 시도한 곡으로 평가된다.

 

갱 스타 ‘Jazz Thing’(1990)

갱 스타(Gang Starr)는 개별적으로도 유명한 엠씨 구루(MC Guru),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로 구성된 힙합 듀오로, 한 시대를 풍미한 힙합 레전드다. 당시 <모베터 블루스(Mo’ Better Blues)>(1990)라는 재즈 영화를 제작하던 스파이크 리 감독은 이들의 ‘Jazz Music’이란 곡을 인상깊게 들었고, 이 듀오에게 영화에 수록할 곡을 만들어줄 것을 의뢰했다. 이들은 쿨 앤 더 갱(Kool and the Gang)의 곡 ‘Dujii(1971)’를 샘플링하고 재즈 역사와 스타들의 이야기로 꾸며진 서사체의 가사를 얹어 이 유명한 재즈 랩 곡을 만들었다.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Jazz (We’ve Got)’(1991)

<Low End Theory>에 수록한 ‘Jazz (We’ve Got) Buggin’ Out’

동네 친구인 래퍼 큐 팁(Q-Tip)과 파이프 독(Phife Dawg)이 이끄는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두 번째 앨범 <Low End Theory>(1991)를 두고 평론가들은 재즈 랩(Jazz Rap) 이란 용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힙합의 페퍼의 병장(The Sgt. Pepper’s of Hip Hop)”(*비틀스의 유명 앨범에 비유)이라는 호평 속에 플래티넘을 기록한 이 앨범은, 재즈 랩의 원조 앨범으로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큐 팁은 재즈와의 관련성을 부인하며 ‘Jazz (We’ve Got)’와 ‘Buggin’ Out’ 두 곡을 하나의 뮤직비디오에 담았다. 그들은 지금도 가장 지적이고 독창적인 힙합 그룹으로 평가된다.

 

디거블 플래닛츠 ‘Rebirth of Slick’(1992)

1987년 결성된 힙합 트리오 디거블 플래닛츠(Digable Planets)의 데뷔 앨범 <Reachin’ (A New Refutation of Time and Space)>의 첫 트랙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5위, 랩 차트 톱에 오른 크로스오버 히트곡이다. 이 곡은 50십만 카피를 판매하며 1993년 그래미 베스트 랩 상을 받았다. 하지만 멤버 간의 불화로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하며 데뷔 앨범 같은 역작을 여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스쓰리 ‘Cantaloop(Flip Fantasia)’(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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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프로듀서 게오프 윌킨슨(가운데)이 US3를 이끄는 리더다

런던의 레코드 프로듀서 게오프 윌킨슨(Geoff Wilkinson)의 프로젝트로, 그룹명은 하드밥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팔란의 <Us Three>(1960)에서 따와 당시 이 음반의 프로듀서였던 블루노트 레이블 창업자의 지원을 얻었다. 허비 행콕의 ‘Cantaloupe Island’(1964)을 힙합 스타일로 리메이크하여 미국 차트 9위에 올렸고, 이를 수록한 앨범은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했다. 맨 앞머리에 뉴욕의 버드랜드 재즈 클럽의 실제 사회자(Pee Wee Marquette)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 화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