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샨 롤랜드 커크(“Rahsaan” Roland Kirk, 1935~1977)는 여러가지 면에서 화제를 뿌린 기이한 재즈 뮤지션이었다. 두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어 맹인이 되었으나 재즈와 악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공연 중간에 스탠딩 코미디 같은 형식으로 입담을 과시하거나 사회적 활동도 활발했다. 색소폰이나 플루트 같은 악기를 몇 개씩 목에 두르고 동시에 연주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쇼맨십으로 치부하기도 했으나 연주력이나 즉흥성에 대한 평가는 여느 재즈 레전드에도 뒤지지 않았다.

롤랜드 커크의 일생에 관한 다큐멘터리 포스터(2014)

42년의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어떤 재즈 뮤지션보다 격정적인 삶을 산 그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알아보자.

 

시력장애와 드림시커(Dream Seeker)

롤랜드 커크의 앨범 화보는 그의 연주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두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재즈와 악기에 대한 열정만은 대단했다. 10대에는’Walking Blind Man’이라 불리며 클럽의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손님을 대상으로 솔로를 연주했다. 악기매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취향에 맞게 악기를 뜯어고치기도 했다. 찰스 밍거스 재즈 워크숍(Charles Mingus Jazz Workshop)에 참여하며 재즈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퀸스 존스의 히트곡 ‘Soul Bossa Nova’(1964)의 리드 플루트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위상을 높였다.

퀸스 존스의 대표곡 ‘Soul Bossa Nova’. 영화 <오스틴 파워 – 제로>(2000)의 테마송으로 리바이벌되며 유명해졌다

그는 항상 꿈을 꾼다. 꿈에서 예지한 대로 여러 개의 관악기를 동시에 연주하기 시작했고 이슬람이 아니지만 “Rahsaan”이란 이름을 앞에 붙였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꿈 속에서 이 단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창작곡 제목 ‘The Seeker’처럼 끊임없이 꿈을 좇은 인물이었다.

 

여러 개의 관악기를 동시에 연주하다

포스터나 티셔츠 문양으로 그려진 롤랜드 커크

그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대여섯 개의 관악기를 목에 두르고 두세 개의 관악기를 동시에 연주하는 기행 때문이었다. 테너 색소폰, 소프라노 색소폰, 플라리넷, 플루트뿐만 아니라 스트릿치(Stritch), 만젤로(Manzello)와 같은 개량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고 자신이 직접 악기를 개량하기도 했다. 그는 세 개의 관악기를 입에 동시에 물고 양손으로 연주하기도 했고, 틈틈이 타악기를 꺼내 연주하기도 했다. 때로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 관중 사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청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쇼맨십으로 치부하기도 했으나, 본인은 연주의 비주얼 측면이 왜 중요하지 않은 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오리지널 ‘The Inflated Tear’(프라하, 1967)

 

순환 호흡(Circular Breathing)

한때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 색소폰 연주자로 널리 사랑받았던 케니 지는 음을 끊지 않고 길게 연주하면서 객석을 수십 분 동안 돌아다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이는 오랜 옛날 몽골의 금은 세공 기술에서 유래한 호흡 방식으로, 코로 들이마신 공기를 그대로 악기에 불어넣어 수십 분간 소리를 끊지 않고도 긴 호흡연주가 가능하다. 롤랜드 커크도 이를 마스터하여 신기의 연주를 보여주었다. 1973년 출반한 <Prepare Thyself to Deal with a Miracle>에서는 21분 길이의 곡을 중간에 한 번도 끊지 않고 연주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기한 연주력을 보여준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실황(1972)

 

정면돌파하는 대담한 성격

그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가지려 하였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 공연 때는 걸쭉한 입담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하였고, 자신의 연주력에 비해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는 ‘The Jazz and People’s Movement’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재즈인의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방송사의 재즈 프로그램이 너무 적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V 스튜디오 녹화장에서 큰 소리를 내며 녹화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를 들은 방송사는 그의 불만을 들어주면서 그를 맨 처음 출연시키기도 했다. 자신의 자작곡 ‘Serenade to a Cookoo’를 리바이벌한 인기 록그룹 제쓰로 툴(Jethro Tull)이 자신보다 10배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The Case of the Three Sided Dream> 예고편

 

뇌졸중에 굴복하지 않다

마흔 살이 되던 1975년, 추수감사절을 맞아 뉴저지 집에 머물던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다. 처음에는 말도 할 수 없었고 거동도 힘들었지만 조금씩 회복하면서 다시 무대에 나설 채비를 했다. 오른손으로는 키를 짚기가 힘들어 왼손만을 이용하여 연주하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세 개의 관악기를 한꺼번에 연주할 수는 없었지만 두 개 까지는 가능했다. 하지만 2년 후 인디애나대학 캠퍼스에서 공연을 마친 직후 또 다시 뇌졸중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고 42년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다.

뇌졸중 이후 길 에반스(Gil Evans)와 함께 연주에 나선 롤랜드 커크. 왼손으로만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감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