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죽음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의 간접경험을 통해, 우리는 그 공포와 슬픔에 대비하거나 맞서기도 한다. 일본영화에는 이와 같은 시한부 서사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시한부와 주변 인물들의 특별한 일상을 그린 일본영화 5편을 둘러보며 늘 멀고도 가까이 닿아 있는 우리네 두려움을 마주해본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Let Me Eat Your Pancreas | 2017 | 감독 츠키카와 쇼 | 출연 하마베 미나미, 키타무라 타쿠미, 키타가와 케이코, 오구리 슌, 오오토모 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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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일본에 발간되어 베스트셀러 소설로 사랑을 받은 뒤 이제 영화로까지 개봉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대표적인 영화다. 제목의 괴상하고 잔인한 인상과 달리, 영화는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소녀가 주인공 소년과 남은 삶의 비밀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해간다는 슬프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소녀와 그를 지켜보는 소년의 풋풋하고도 안타까운 비밀 이야기를 그린다는 설정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를 떠올리게도 한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아직 너무 잔인하기만 한 어린 주인공들의 동화 같은 사연을 통해 우리는 이별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우회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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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까지 7일>

Our Family | 2014 | 감독 이시이 유야 | 출연 츠마부시 사토시, 하라다 미에코, 이케마츠 소스케, 나가츠카 쿄조, 쿠로카와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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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지독히도 현실적인 스토리도 있다.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고 2015년 초 개봉했던 <이별까지 7일>은 갑작스럽게 겪게 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각자의 문제들로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하나로 뭉치게 되는 내용이다.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눈앞에 둔 청천벽력의 선고보다도 입원비 문제, 그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아버지의 사업 실패 문제, 형제간의 불신과 불화 등 그 시간을 헤쳐 나가는 가족 구성원들의 고군분투기가 핵심인 이야기로 원제인 ‘Our Family’가 훨씬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해체 위기에 몰린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어떻게 단단히 회복되어 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별까지 7일>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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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목욕탕>

Her Love Boils Bathwater | 2016 | 감독 나카노 료타 | 출연 미야자와 리에, 스기사키 하나, 오다기리 죠, 이토 아오이, 시노하라 유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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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통해 가족의 봉합을 다른 관점에서 그려내기도 한다. <행복 목욕탕>은 주변 사람이 아닌 시한부 당사자인 어머니가 직접 나서서 가족들을 결합한다. 아직은 보살핌이 한껏 필요한 사춘기 딸과 철없는 바람둥이 남편, 뜻밖에 품게 된 대안 가족 구성원들까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밝고 꿋꿋하게 헤쳐 나가며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을 ‘행복 목욕탕’이라는 공동체 아래 봉합하고 구원하는 대인배 엄마 ‘후타바’의 헌신은 사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어머니들의 희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행복 목욕탕>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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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

Will You Marry My Wife? | 2016 | 감독 미야케 요시시게 | 출연 오다 유지, 요시다 요, 하라다 타이조, 다카시마 레이코, 모리 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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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가 된 아버지의 모습은 어떨까? 20년째 방송작가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슈지’는 어느 날 갑자기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남겨진 시간은 6개월에서 1년 사이. 아내와 어린 아들이 눈에 밟혀 괴로워하던 그는, 평생 괴로운 일을 즐거운 일로 바꾸는 삶을 살았던 작가 인생 모토를 살려 시한부 삶을 즐겁게 바꿔낼 엉뚱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죽은 이후 가족을 책임져줄 아내의 새 남편을 직접 찾는 것. 아내의 의사나 선택과 상관없이 자기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모습을 지울 수 없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행복마저 당신 책임이라고 여기고 담담하고 유쾌하게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된다.

<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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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If Cats Disappeared From the World | 2016 | 감독 나가이 아키라 | 출연 사토 타케루, 미야자키 아오이, 하마다 가쿠, 오쿠다 에이지, 하라다 미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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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죽음이 아닌 순수하게 나의 죽음과 살아온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이야기도 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당장 내일 죽게 된 서른 살 주인공 앞에 나와 똑같이 생긴 악마가 나타나 세상에서 한 가지씩 사라지게 할 때마다 내 삶을 하루씩 연장해주겠다고 제안하는 내용의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죽음의 목전에서 악마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지만 결국 사라지게 될 것들 하나하나에 사슬처럼 엮인 지난 생의 의미와 가치의 무게를 되새기며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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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우리가 아직 겪지 않은, 겪을 법한 일을 간접 체험하게 해 이를 견디고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다. 죽음이든 그것이 다른 무엇이든, 언제든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두려움 앞에서 슬픔에 침잠하지 않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교훈을 되돌아보는 것. 시한부 이야기라는 비극을 대하는 일본영화가 관객에게 기대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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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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