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후반 찰리 파커, 폴 데스몬드, 아트 페퍼와 같은 걸출한 솔로이스트들이 등장하며, 재즈의 대표 악기로 등장한 알토 색소폰. 하지만 훨씬 이전의 스윙 시대에도 걸출한 솔로이스트들이 있었다. 이들은 스윙밴드의 인기 연주자로 자리를 잡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앞으로 나와 호쾌한 홈런을 터뜨리는 4번 타자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테너 색소폰에 ‘Big 3 Tenors’가 있었다면, 알토 색소폰에는 자니 호지스(Johnny Hodges, 1907~1970)와 베니 카터(Benny Carter, 1907~2003)라는 같은 해에 태어난 걸출한 연주자가 있었다.

 

듀크 엘링턴 밴드의 4번 타자, 자니 호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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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스는 20대 초반부터 듀크 엘링턴 빅밴드의 솔로 연주자로 활동하며 자신의 밴드를 이끌던 10여 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를 엘링턴과 함께했다. 엘링턴은 호지스의 감미로운 연주 스타일에 맞는 특화곡을 수없이 작곡할 정도로 호지스의 연주 실력을 높이 샀다. 맑은 곡조와 가늘게 떨리면서 길게 이어지는 비브라토를 들려주는 그의 연주는, 한 번 듣고 나면 한동안 귓가를 맴돌 정도로 매혹적이다.

듀크 엘링턴 빅밴드에서 ‘All of Me’를 솔로로 연주하는 호지스

무표정하고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토끼란 별명으로 자주 불린 호지스는, 동시대의 연주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와 같이 연주했던 베니 굿맨은 “지금까지 들어본 알토 연주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평가했고, 찰리 파커는 “알토 색소폰의 릴리 폰스(Lily Pons, 소프라노 가수)”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비밥의 유행으로 빅밴드가 해체된 후에도 1956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노년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던 호지스는, 치과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장례식에서 엘링턴은 “너무나 아름다운 음색으로 눈물이 나게 만드는 자니 호지스”라는 추모 연설을 하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호지스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엘링턴의 대표 발라드곡 ‘Passion Flower’

 

80년을 연주한 재즈의 역사, 베니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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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베니 카터(1944)

베니 카터가 생애 첫 음반 레코딩에 참여한 시기는 1928년이었고 마지막 레코딩은 2002년이었으니, 무려 80여 년을 현역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한 재즈계의 역사와도 같은 존재였다. 알토 색소폰 외에도 트럼펫, 클라리넷, 피아노와 같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였고, 일찌감치 작곡가, 밴드 리더, 어레인저 등 다방면으로 나섰으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 연주자로서의 명성은 호지스에 뒤졌으나, ‘왕(The King)’이라는 별명이 암시하듯 재즈업계에서 선구자적인 수완으로 존경받았다.

베니 카터의 ‘I Can’t Get Started’ 실황(1966, 런던)

그는 1943년 영화 <Stormy Weather>를 시작으로 10여 편의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며 아프로어메리칸으로는 최초로 기록되었으며,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롤 모델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프린스턴 대학을 시작으로 하버드, 럿거스 등에서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며 명예학위를 받았다. 95년의 생애에 수많은 상을 받으며 존경의 대상이 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 <Benny Carter– A Life in American Music>(1982)는 재즈를 연구하는 데 있어 기본 서적으로 인용된다.

1966년 절친 콜맨 호킨스(테너)와 함께 연주하는 베니 카터

자니 호지스와 베니 카터, 그리고 찰리 파커. 세 알토 색소포니스트가 유일하게 함께 라디오 스튜디오에 모여 녹음한 잼 세션(1952)이 있는데 이를 ‘슈퍼 세션(Super Session)’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 곡당 5분 미만인 이 시기의 다른 레코딩과는 달리,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Norman Granz)의 제안으로 곡당 13분 이상의 방대한 길이의 네 곡으로 구성되어 지금껏 화제가 되는 음반이다.

이 중 가장 긴 ‘Ballad Medley’를 들어 보자. ‘All the Things You are’, ‘Dearly Beloved’, ‘The Nearness of You’, ‘I’ll Get By’의 발라드 네 곡을 원테이크로 연주하는데, 세 알토 거장의 색소폰을 비교해 듣는 재미가 쏠쏠한 곡이다. 맨 먼저 2분 경에 찰리 파커가 솔로로 나서며 5분 40초 즈음에 자니 호지스가 소름 돋는 연주를 보여준다. 베니 카터는 거의 마지막 부분인 15분 10초 즈음에 솔로로 등장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Jam Session>의 'Ballad Medley'. 사진으로 누구의 연주인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