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tvN에서 방송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시대상을 그대로 재현하여 케이블 채널 드라마로는 20%를 돌파하는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시의 사건, 사고나 복장, 소품, 배경음악에 세세히 신경을 써 시청자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고 레트로 붐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했다. 미국에서는 AMC 드라마 <매드맨(Mad Men)>이 1960년대의 시대상을 재현하여 대단한 화제를 불렀다. 2007년에 첫 방송을 시작하여 2015년에 7개 시즌, 92개 에피소드로 종영하면서, 16개의 에미상과 5개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또한 시즌 1부터 시즌 4까지 에미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상을 연속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매드맨> 예고편

‘매드맨’이라는 제목은 미친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매디슨 애비뉴(Madison Avenue)에 밀집해 있던 대형 광고회사에 다니던 광고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는 많은 회사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나, 지금도 매디슨 애비뉴는 금융산업의 월 스트리트처럼 광고산업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매드맨>의 주인공 ‘돈 드레이퍼’(존 햄)는 한 광고회사의 인기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나와 그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다. 뉴욕 근교의 자택에서 맨해튼의 회사까지 기차로 출퇴근하고, 바쁜 일과가 끝나면 술집으로 향하거나 외도를 일삼으며 더 나은 생활을 꿈꾼다.

주인공 돈 드레이퍼는 성공한 광고인의 전형으로 자주 인용된다

<매드맨>은 특히 1960년대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당시 뉴욕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그대로 재현했고, 무엇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잘 드러낸다. 당시의 광고업계 관행도 엿볼 수 있어 광고인이라면 유익하게 볼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드라마 속 미국의 시대상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술과 담배

<매드맨>의 광고회사 임원실과 회의실에는 항상 술과 재떨이가 놓여 있고 임직원들은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손님이 오거나 미팅을 할 때도 술과 담배는 빠지지 않는다. 부인들 또한 집과 식당에서 어울려 줄담배를 피운다. 당시에는 술과 담배를 해야 ‘마초스러운’ 멋쟁이라는 인식이 만연했고, 과음은 당시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도 했다. 극 중 돈 드레이퍼가 고민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드라마는 당시 이러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반영했다.

술에 취한 채 클라이언트에게 발표하는 돈 드레이퍼

 

외도와 성차별

<매드맨>은 당시 성에 대한 인식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남녀 할 것 없이 배우자 외의 상대방과 외도를 즐기며, 남자의 외도보다 여자의 외도가 더 비난의 대상이 되던 시대였다. 직장에서는 성차별이 만연하여 여성 직원은 대부분 비서와 타이피스트 같은 보조적인 업무에 그쳤다. 극 중 타이피스트로 입사한 ‘페기’(엘리자베스 모스)가 능력을 발휘하여 여성 최초의 카피라이터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축하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비서로 입사한 ‘페기 올슨’은 유명 카피라이터로 진급한다

 

반유대주의

첫 에피소드에서 돈 드레이퍼와 상사 간의 대화는 유대인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드러낸다. 유대인 회사와 미팅을 앞두고 그들이 편한 감정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회사 내 유대인 직원을 동반하려 한다. 하지만 이제껏 유대인을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냉소적인 발언이 뒤를 잇는다. “유대인은 유대인 회사에 다니고, 유대인 회사는 유대인에게 물건을 판다.” 물론 드라마가 반유대주의적이라는 것은 아니고, 그 시대의 만연한 사회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에 관한 대화 장면

 

인종차별

<매드맨>에서 광고회사의 직원은 대부분 백인이다. 소수인종은 웨이터, 심부름꾼, 하우스메이드 같은 당시 열등하게 여겨진 직업의 단역으로 나올 뿐이다. 1960년대부터 매디슨 애비뉴에 아프로-아메리칸 임원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도 드라마는 이를 왜곡했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1963년 발행된 한 기사에 의하면, 당시 매디슨 애비뉴의 직원 2만 명 중에 전문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아프로-아메리칸은 25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매드맨>은 비겁하게 인종 문제를 피한 게 아니라 그 반대다. 매디슨 에비뉴의 비겁함을 솔직하게 고발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평론가의 의견도 있다.

아프로-아메리칸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