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일본 후지산 재즈 페스티벌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마이클 브레커(Michael Brecker, 1949~2007)는 갑자기 등 부위에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본 결과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이라는 난치병으로 진단되었고 골수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의 가족과 동료들은 전 세계의 공연장과 페스티벌에서 골수 기증을 호소하였고 수만 명의 기부자가 나섰으나 일치하는 골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듬해에는 팻 매스니, 잭 디조넷, 존 패티투치, 허비 행콕 등 동료들과 함께 극심한 통증을 무릅쓰고 앨범 <Pilgrimage>를 녹음하였으나, 이를 발매하기 전 58세의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팻 매스니는 그와의 마지막 앨범 작업에 대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놀랍고, 대단하며,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장문의 헌정사를 남겼다.

팻 매스니와 함께 공연 중인 마이클 브레커(2003)

재즈 뮤지션들 중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마이클 브레커는 록과 재즈 모두 사랑하였다. 젊은 시절 그의 테너 색소폰 연주기량이 최고라고 소문이 나며 수많은 뮤지션들이 자신의 레코딩에 그를 초빙하였다. 1970~80년대 그가 참여한 레코딩 세션은 무려 700여 건에 이른다. 제임스 테일러와 칼리 사이먼의 앨범 속 삽입된 색소폰 소리는 대부분 그의 연주였고, 그 외에도 스틸리 댄, 에어로스미스, 루 리드, 다이어 스트레이츠, 빌리 조엘, 조니 미첼, 프랭크 자파, 마이클 프랭크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재즈도 마찬가지다. 찰스 밍거스, 데이브 브루벡 같은 메인스트림 재즈부터 팻 매스니, 허비 행콕 같은 퓨전 영역까지 두루 걸쳐져 있다. 유튜브에서 그가 연주한 팝 음악 편집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이클 브레커의 팝 솔로 앤솔로지 Part 4

그는 친형인 트럼페터, 랜디 브래커와 함께 브래커 브라더스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뮤지션으로 데뷔했고, 한때 인기 그룹 스텝스 어헤드(Steps Ahead)의 공동 리더를 맡기도 했다. 일류 세션맨으로 남들의 레코딩에 불려 다니느라 정작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앨범 <Michael Brecker>(1984)을 발표했을 때는 35세로 남들보다 많이 늦어졌다. 어린 시절 의사가 되기를 꿈꿨던 그는, 존 콜트레인의 음악에 깊이 심취하면서 뮤지션으로 인생행로를 바꿨다. 젊은 시절부터 이미 완벽한 테너 색소폰 연주 기량을 보유하게 된 그는 40대에 접어들며 ‘Naima’, ‘Giant Step’ 등 콜트레인의 오리지널 트랙들을 레퍼토리로 즉흥 연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4세 때 콜트레인을 듣고 나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마이클 브레커스

1990년대 그는 이미 정상의 재즈 스타 반열에 올랐다. 1989년 첫 그래미를 수상한 이래 단골 수상자가 되었고, 그의 솔로나 콤보 공연은 대부분 매진 행렬을 이뤘다. 2001년에는 허비 행콕(피아노)과 로이 하그로브(트럼펫)와 함께 트리오를 결성하여 투어에 나서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정통 재즈 연주에 나선 그에게, 평론가들은 존 콜트레인 이후 최고의 테너 색소포니스트란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허비 행콕, 로이 하그로브와의 트리오 연주 ‘My Ship’(2003)는 그래미 수상 곡이다

하지만 전성기를 누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병마와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일치하는 줄기세포를 찾을 수 없어 마지막으로 부분적이나마 일치하는 세포를 이식하는 수술을 감행하였다. 병세는 잠시 호전되는 듯 했으나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7년 발표한 <Pilgrimage>는 참가자 모두가 마이클 브레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녹음에 참여한 유작 앨범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그는 눈을 감았고, 사후에 2개의 그래미상이 추가되어 총 15개의 그래미상을 보유한 최정상의 색소포니스트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영 남게 됐다.

유작 앨범 <Pilgrimage>의 메이킹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