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다양한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씨네허브(CINEHUB)와 인디포스트가 손을 잡았다. 씨네허브X인디포스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신진 감독들의 단편영화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감독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전하려 한다. 단편영화가 생소한 관객들에게 친절하고 쉬운 창구가 되어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인연인지>는 일명 '구남친 보라고 만든 영화'다. 이홍래 감독이 밝힌 연출 의도에 의하면, 영화는 “새로운 인연은 어떻게든 만들어진다”는 걸 현실 그대로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똥파리>(2008)에서부터 <창피해>(2010), <명왕성>(2012) 같은 독립영화와 수많은 상업영화를 넘나들며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연기파 배우 김꽃비가 ‘썸남’과 ‘구남친’ 사이에서 보여주는 태연한 연기가 흥미롭다. 엔딩 타이틀곡은 국악밴드 고래야의 ‘넘어갔네’다. 벌써부터 엉뚱한 웃음이 새어 나오는 단편영화 <인연인지>와 그 제작기를 담은 인터뷰를 들여다보자. 

 

<인연인지>

Is It Movingㅣ2014ㅣ감독 이홍래ㅣ출연 김꽃비, 정요한, 권동호ㅣ20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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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이별은 발판이다

사랑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무방비 상태로 사랑을 맞닥뜨린 우리는 이것을 뜨겁게 불태운다. 아무 대책 없이 말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둘만의 시간과 공간, 추억을 만들고 공유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그러나 사랑은 가고,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단편영화 <인연인지>는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과거의 아름다운 사랑을 추억하는 영화는 아니다. 사랑이 떠나가고 찾아오는 과정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한 영화다.

사람은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기 전까지 이전 사랑을 추억하며 끊임없이 질책하고 후회하며, 그때 자신의 모습을 합리화하려 한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까마귀에게 간을 물어뜯기는 것만큼 영원할 것 같은 괴로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통 역시 자의적 선택은 없다. 기억하려 기억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찾아올 때처럼 막무가내로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 사람을, 그 사랑을 세상에서 제일 몹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발판삼아 스스로 약속한다. 다음에는 이 같은 사랑을 하지 않기를. 더 나은 사랑을 하기를.

리뷰 장영준(씨네허브 STAFF)

 

감독 인터뷰

Q <인연인지>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당시 졸업영화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하는 기간이었는데, 예전에 ‘이삿날’을 주제로 썼던 시나리오가 있었어요. 교수님은 청승맞다고 싫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안 청승맞은 걸 생각하다가 이 이야기를 써서 제출했는데 이번에도 교수님은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텀블벅에서 이미 온라인 펀딩을 받은 상태라서, 어쩔 수 없으니 찍으라고 하셨죠. 사실 허락 받지 못했어도 찍었을 거예요.

 

Q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배우 김꽃비인데,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요?

친구라서 같이 하게 됐습니다.

 

Q 주연배우로 나온 정요한, 권동호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요?

정요한 배우는 김꽃비 배우의 친구예요. 시나리오를 쓰는데 우연히 술자리에서 알게 됐던 요한이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현재도 여러 작품을 하고 있고요. 특히 작년에는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등 계속 연기 활동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권동호 배우는 제 대학 동기예요. 입학한 이래로 사는 동네도 비슷해서 친하게 지냈지만 같이 한 작품이 없더라고요. 졸업 작품으로 꼭 같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당시에 하던 연극 캐릭터가 바보 역할이었거든요. ‘잘 맞겠다’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 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뮤지컬이랑 연극을 넘나들고 있는 훌륭한 배우입니다.

Q 영화에서 맞은편 편의점 점장, 즉 ‘썸남’과 가까워진 일련의 시간이 생략되어 있어요.

사실 초고 단계에서는 그 이야기가 있었어요. 동호와 연지가 왜 헤어졌고, 또 요한이와 연지는 어떻게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됐는지를 어느 정도 전달해주죠. 촬영 일주일 전에 편의점 헌팅까지 준비를 마친 상태였는데, 생략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초반부를 다 없앴어요.

​<인연인지>는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연지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고 있어요. 그 설정이 아예 날아간 거죠. 당시 스태프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단편영화에 ‘공시생’이자 ‘알바생’으로 사는 인물의 정서를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되었거든요. 원래 하려던 ‘사랑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주인공의 다른의 정서는 잠시 생략했어요.

 

Q 단편영화 특성상 담지 못해 아쉬운 장면이 있나요?

앞서 언급했듯이, 연지가 공시생이자 알바생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20대로서 느끼는 정서들을 담지 못했던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Q 그렇다면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극 중 요한이가 몰았던 용달차가 사실 수동 방식이었어요. 현장에서 수동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촬영감독이랑 조명감독밖에 없었고, 용달차를 가져오기로 했던 프로듀서도 수동운전을 못 해서 결국 대리운전을 이용해서 운반했어요.

영화 초반에 요한이가 차를 몰고 도착하는 장면은 무척 긴장하면서 찍었는데,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프레임 밖에 있다가 160cm 정도만 이동한 거예요. 브레이크를 못 밟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독립 단편영화 연출자가 현장에서 가장 힘든 건 돈과 시간 문제죠. 이번 작품은 시간에 쫓기지는 않았지만 돈 문제가 힘들었어요. 텀블벅 펀딩을 받았는데 조금 부족했어요. 촬영장비는 어느 정도 학교에서 빌렸지만, 운반비나 촬영에 필요한 다른 부속 장비들은 돈을 주고 빌려야 했거든요. 거기에 앞서 말한 용달차 장면을 찍는 데에도 돈이 다 나갔죠.

마지막 회차 때는 신용카드 한도까지 다 된 거예요. 속된 말로 후달렸죠.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인건비도 못 줬는데…  그때 이후로는 제 돈을 들여가면서 영화 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물론 그 이후로 세 편을 더 찍긴 했지만…

Q 극 중 연지에게 사진을 돌려주는 장면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인데요. 특별한 설정이 있나요?

글쎄요.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가 사진을 보는 건데, 그걸 새로운 사람이 들고 있을 때 생겨나는 아이러니함을 주고자 했어요. 크게 특별한 설정은 없어요.

 

Q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장면을 뽑자면?

사실 저는 영화 작업을 할 때 콘티에 해당 장면의 듀레이션(기간)까지 계산해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최종 러닝타임이 콘티 작업 시에 계산했던 거랑 16초 정도 차이가 나요. 더 줄었죠. 다만, 시간 상관 안 하고 오로지 정서에만 집중했던 장면이 있는데 그게 엔딩 부분의 두 사람이 맥주 마시는 장면이에요. 사실 원샷 원테이크로 가고 싶었는데, 각 배우의 원샷도 팔로우를 하자고 촬영감독이 제안해서 그렇게 했죠. 배우들이 연기를 워낙 잘 해줘서 몇 테이크 안 가고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차기 영화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인연인지> 이후에 세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올해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아직 연출을 할 계획은 없고요. 내년에는 아마도 하나 연출하지 않을까 싶네요.

 

Q 마지막으로 영화인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 있다면?

독립 단편영화 제작환경은 독립영화계에서도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습니다. 다른 이의 열정을 받아서 내 영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고, 그런 과정을 알면서도 경제적으로도 힘들지만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죠. 저는 한국의 독립 단편영화 제작지원사업들이 이들의 ‘인건비’까지도 함께 지원을 해주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장편영화 산업도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주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으니, 독립 장편영화, 단편영화도 점점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연인지>는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노동의 대가를 주지 못 한 빚을 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더는 빚을 져가며 영화 찍지 않게 환경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씨네허브코리아 박준영 day-movie@naver.com

자료제공 씨네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