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국립아트센터의 바깥쪽 벽에는 피아노와 건장한 체구의 피아니스트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곳을 찾는 관광객이나 현지인들은 연신 기념사진을 찍는다. 동상의 주인공은 사후 10년이 된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1925~2007)으로 캐나다의 ‘보물’이자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되는 인물이다. 그는 완벽한 연주 실력 뿐만 아니라 건실한 생활 태도로 많은 재즈 아티스트에게 귀감이 되었다. 60여 년이 넘는 현역 생활 중 200여 장이 넘는 앨범을 출반하여 8개의 그래미를 수상하였고, 쉴 틈 없이 연주 투어를 돌며 수천 회의 공연을 소화한 열정적인 음악인이었다.

레이 브라운(b), 에드 틱펜(d)과 함께한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C Jam Blues’(1964)

한때 체중이 120kg까지 불어나 거동이 힘들었고 68세가 되던 해 뇌졸중으로 신체 왼쪽이 마비되어 2년간 재활에 전념해야 했다. 왼손의 마비가 다소 회복되면서 다시 대중 앞에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나 이전의 완벽한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불편한 왼손의 비중을 줄이고 오른손의 비중을 높이는 스타일로 바꿈으로써 다시금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의 절친이자 캐나다 하원의원인 봅 래(Bob Rae)는 “한쪽 손으로 연주하는 오스카 피터슨이 양 손을 모두 사용하는 다른 연주자보다 낫다”라며 칭송하기도 했다.

미시소거(Mississauga)의 교회에 있는 그의 묘소

여느 재즈 스타와는 달리, 그는 캐나다의 국민적 영웅이자 공적인 명사로 인정받는다. 미국의 재즈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Norman Granz)의 눈에 띄어 국제적인 스타로 발돋움하지만, 캐나다의 지역사회 활동과 재즈 교육에 남다른 정성을 쏟았다. 캐나다의 곳곳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고, 사람들은 그를 기억한다. 성공한 재즈 스타를 뛰어 넘어 캐나다인의 사랑과 존경이 대상이 된 그의 발자취를 잠시 따라가 보자.

 

좋든 싫든 평생 그를 따라다닌 공적인 의무

오타와의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

1993년부터 10년간 캐나다 수상으로 재임했던 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은 오스카 피터슨에게 캐나다 총독(Governor General of Canada)직을 맡을 것을 권했다. 크레티앵 전 수상이 그를 점 찍었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나다인이잖아요.” 하지만 당시 뇌졸중으로 왼손이 마비된 후 재활에 전념하던 그는, 명목상의 직위라 하더라도 수많은 공식 행사를 치르기는 무리라고 여겨 제안을 간곡히 거절했다. 그는 70년대부터 영연방의 ‘Officer of the Order of Canada’나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Officer of the 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같은 명예 훈장에 서훈되면서, 명예시민과 같은 자격의 공적인 역할을 꾸준히 맡아 왔다.

그의 조카이자 방송인, 실비아 스위니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In the Key of Oscar>(1992)

 

대학의 재즈 교육에 기울였던 열정

대학에서 학생을 지도 중인 오스카 피터슨

그는 미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캐나다의 재즈 교육에 평생 심혈을 기울였다. 1960년대에는 동료들과 함께 토론토에 현대음악고등교육원을 설립하여 한동안 운영하였고, 1990년대에는 요크 대학교의 학장을 맡아 재즈 학과목을 개설하여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그가 북미 지역의 대학교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는 줄잡아 15개에 이르며 미국의 저명한 노스웨스턴 대학도 그중 하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콩코르디아 대학교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연장이 있고, 토론토의 미시소거 대학교에도 역시 그의 이름을 딴 대학원 건물이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금도 여럿 생겼다.

그는 젊은 시절 ‘The Brown Bomber of the Boogie-Oogie’라 불릴 정도로 부기우기를 자주 연주했다

 

캐나다 구석 구석에 산재한 그의 자취

그는 캐나다인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인물로, 사후에 그의 이름을 딴 많은 건물과 거리, 공원들이 생겨났다. 그중 몇 군데를 돌아보자.

2004년 토론토시는 토론토-도미니언 센터를 ‘오스카 피터슨 스퀘어’로 개명하였다
토론토 외곽 지역에 신설된 오스카 피터슨 공립학교 전경
몬트리올의 빌딩 벽면에 그려진 오스카 피터슨 벽화

그는 아트 테이텀(Art Tatum)의 연주력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간 재즈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지만, 혁신적인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하루 4~6시간, 나이가 들어서는 1~3시간의 연습으로 언제나 절정의 기량을 유지한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연신 땀을 닦아가며 진지한 태도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왜 대중의 열렬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지 알 수 있다. 역시 캐나다 출신의 재즈 뮤지션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은 그의 명반 <Night Train>(1963)을 들으며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다고 고백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