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관대하지 않았던 재즈계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떳떳하게 밝히는 아티스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랑밴드의 연주 생활, 클럽에서 취객과의 충돌,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잼 세션, 음주와 마약이 만연한 재즈 신은 거친 남성들이 주도하던 세상이었다.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는 “진정한 재즈 뮤지션 중에 동성애자를 본 적이 없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많은 게이 뮤지션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며 남몰래 전전긍긍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컨템포러리 재즈 연주자 데이브 코즈(우)

재즈 신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유명 스타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작곡 파트너였던 빌리 스트레이혼(Billy Strayhorn)이다. ‘Take the ‘A’ Train’, ‘Chelsea Bridge’와 같은 재즈 명곡을 작곡하며 엘링턴과 30여 년을 같이 한 그는, 엘링턴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악단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그늘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 엘링턴은 “스트레이혼의 작품에 내가 절받는다”라는 조크를 던지곤 했다. 엘링턴의 아들이 소개시켜준 재즈 아티스트 아론 브리지스(Aaron Bridges)와 동성 연인관계임을 밝혔다.

‘Take the ‘A’ Train’을 연주하는 빌리 스트레이혼

우수에 찬 미남 트럼페터 쳇 베이커(Chet Baker)는 세간에 많은 소문이 돌았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명확히 밝힌 적은 없다. 자신의 창법에 빌리 홀리데이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점, 친구라고 할 만한 동료가 별로 없었고 항상 혼자였다는 점, 그리고 감성적인 음악 스타일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이 많았음에도 양성애자라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도 그에 대한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Chet Baker 'Time After Time'(벨기에, 1964)

문화계의 개방성과 자유화 분위기가 확산되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재즈계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밝히는 뮤지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유명한 재즈 뮤지션 네 명을 꼽아 보았다.

 

프레드 허쉬(Fred Hersch, 1955~)

보스턴의 뉴 잉글랜드 음악학교(New England Conservatory) 교수이자 70여 장의 재즈 앨범을 낸 저명한 피아니스트이다. 잦은 은둔 생활을 하며 뉴욕의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에서 주중 내내 솔로 피아노를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1993년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과 지난 10여 년 간 에이즈에 걸려 치료를 받았음을 밝혔다. 인터뷰에서 동성애자인 재즈 아티스트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 바 있다.

“나는 게이와 재즈 뮤지션으로서 이중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알 수 없었다. 재즈는 동료와의 협연 시 감정을 강렬하게 공유하여야 하기 때문에 연주자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음악이다. 만약에 내가 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았다면, 나의 감정을 성적인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음악에 방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2010년 바르셀로나에서 ‘Valentine’을 연주하는 프레드 허쉬

 

게리 버튼(Gary Burton, 1943~)

재즈 비브라폰의 명인으로 7번의 그래미 수상자이며, 버클리 음대의 학장으로 30여 년을 재직하였다.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통하여 두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이혼 후 1994년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게이였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괴로웠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 어떤 힌트라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때로는 나 자신을 속일 때도 있었다. 이제는 속이 후련하며 긴장에서 자유로워졌다”라며 그간의 고충을 토로하였다. 2013년에 오랜 연인이였던 남성과 결혼하였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게리 버튼

 

앤디 베이(Andy Bey, 1939~)

네 옥타브를 넘나드는 넓은 음역대의 바리톤으로 유명한 재즈 가수다. 1960년대 그의 여동생들과 함께 ‘Andy and the Bey Sisters’라는 트리오를 결성하면서 재즈 신에 등장했으며, 소울이 넘치는 발라드로 비밥의 융성으로 끊어진 남성 재즈가수의 명맥을 이었다. 그는 1960년대 이후 재즈 신이 여성 보컬리스트와 마초적인 남성 연주자로 분리되어 규정되는 대해 분노심을 표출했다. “나는 동료 뮤지션들과 잘 어울리질 못했어요. 아마도 과거에는 스스로 고립되었는지도 모르죠.” 앤디 베이는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피아노를 치며 ‘Like a Lover’를 부르는 앤디 베이

 

데이브 코즈(Dave Koz, 1963~)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와 깔끔한한 용모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데이브 코즈는 2004년 <The Advocate> 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게이임을 밝혔다. 그 해 <피플> 지의 “매력남 50인(50 Hottest Bachelors)”에 뽑히기도 했던 그는, 데이트 사진이나 결혼 이력이 없어 언론이나 팬들의 의심을 받던 차에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혔다.

2012년 자바 재즈페스티벌에서 연주 중인 데이브 코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