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 브랜드 아더 에러(ADER error)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화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비비드 컬러와 오버사이즈로 대표되는 아더 에러의 캐주얼 웨어와 노부부의 귀엽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위화감 없이 섞어낸 이미지들이다. 아더 에러와의 두 번째 협업으로, 언뜻 장난스럽지만 묘하게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사진들은 터키의 사진가 칸 다가르슬라니(Can Dagarslani)가 찍었다. 깨끗한 구성, 화사한 색상 및 자연 채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그의 사진들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칸 다가르슬라니는 2003년부터 사진을 찍었다. 전공은 건축학이었지만, 사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다양한 건물의 사진을 찍는 과정에 건축물 자체보다, 그 형태를 둘러싼 이야기나 실루엣에 비중을 두고 촬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사진에서 유난히 공간과 구조에 대한 세밀한 고려가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더 에러의 패션 사진을 찍으면서 색감이 비비드해지고 채도가 높아졌으며, 주제도 퍽 밝고 가벼워졌다. 몸과 몸을 서로 겹치게 두거나, 대칭적인 구도를 사용하여 피사체를 하나의 건축물처럼 구조적으로 묘사하는 사진기술도 자유롭게 구사했다.

2015년 공개한 아더 에러와의 첫 콜라보 작업. 얼굴과 얼굴을 포개듯 배치하거나, 신체의 부분을 겹치고 삭제한 부분에서 언뜻 렌항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렌항의 이미지가 보다 무심하고 자유로운 쪽에 가깝다면, 칸 다가르슬라니의 사진은 조금 더 구조적이고 치밀한 계산이 동원된다. 사진 속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인물들의 텅 빈 얼굴과 기계적인 움직임은 조용하게 불화하고 그래서 붕 뜬 듯한 느낌을 준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모호하게 뒤섞인 채 사진 속에 정박되었다. 정해진 시선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기발하게 설정된 인물의 포즈는 연약한 피사체의 순간적인 감정이나 움직임의 찰나를 전달한다.

칸 다가르슬라니는 가장 좋아하는 작업으로 ‘Inside out’과 ‘Identities’ 시리즈를 꼽았다.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분리될 수 없는 두 명의 모델이 각자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사진들이다. 한 편의 무용극을 보는 듯 유려하고 부드러운 모델들의 포즈는 부서지기 쉬운 인간관계, 정체성, 대상과 대상을 둘러싼 연구주제를 뒷받침하며 그 자체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한다.

더 많은 사진들은 칸 다가르슬라니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가면 마음껏 볼 수 있다. 얼마 전 홍대에 새롭게 리뉴얼한 아더에러 쇼룸에서도 그의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Can Dagarslani 홈페이지
Can Dagarslani 인스타그램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