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즈음부터 자기만의 이야기를 그려온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는 지금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다. 그가 직접 만들던 그림책과 그림들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으로, SNS로, 전시장으로, 나아가 다양한 공간의 양식으로 서서히, 그리고 깊숙이 퍼져 나갔다. 예술적인 미감을 넘어 단연 독보적인 스타일을 지닌 덕이다.

디지털드로잉, 2014 ©신모래
활동 초기에 재미공작소에서 했던 전시 포스터. 마흔여덟 명의 기억을 그렸다. ©신모래
디지털드로잉, 2016~2017 ©신모래

신모래의 그림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때론 일종의 만화 시리즈처럼 큰 서사를 이루기도 하는데, 그건 신모래만의 독특하고 일관된 개성에서 온다. 묘한 감정을 불어 넣는 ‘괄호눈’의 소녀와 소년 캐릭터, 네온사인,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 분홍에서 파랑으로 이어지는 색의 계조 같은 요소들이 신모래의 시그니처다. 그 특징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도 다채롭게 변주하는 것이 진정 신모래만의 특별한 개성이다. 예컨대 그는 개인 작업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와 죽 협업해왔는데, 그 안에서도 고유한 빛은 바래지 않는다.

SM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작업한 그림, 'Young and Beautiful' 시리즈 중 <f(x)>(위), <SHINee>(아래) ©신모래
2016년 구슬모아당구장 전시 당시 작업한 <ㅈ.gif> ©신모래

모름지기 작가는 글로써 그림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새기는 법이다. 그러나 온갖 이미지가 넘쳐나고 없는 게 없는 것 같은 요즘 세상에서 다른 것과 또렷하게 구분되는 정체성을 갖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는 지금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또렷한 정체성을 가졌다. 그건 그가 무던하게 노력해온 흔적의 결과이기도 할 터다. 그런 작가에게는 어떤 장면들이 인상을 남기는지 궁금하다.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는 아래 말마따나 24시간 내내 가없는 자신의 감정을 다양한 장면으로부터 포착한다. 그러한 작가의 감상이 우리에게 어떤 그림으로 돌아올지 기대까지 해볼 일이다.  

 

Morae say,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이다 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낸다. 24시간을 내내 혼자 지낸다는 말이기도 한데, 아주 제한적인 영역 안에서 영화를 보거나 꾸역꾸역 귀찮은 청소를 하고, 멍하니 있다 울기도, 흥겹게 춤을 추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루 안에 벌어지는 일인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얼마나 기복이 큰 사람인가. 그러나 이런 건 사건이 되지 못하고 무척 자연스러운 일상으로만 남는다. 그렇기에 덜 불행하기도, 덜 행복하기도 한 것 같지만.”

 

1. Sophia Loren, Tonis Maroudas ‘Ti 'ne afto pou to lene agapi’(1957)*

영화 <더 랍스터>(2015)의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음악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송곳니>(2009)로 먼저 알게 된 감독인데, 비현실적인 상황을 빌어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출 방식과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너무 좋았다. 감독을 향한 팬심과는 별개로 보더라도 <더 랍스터>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로맨스 영화다. 가슴을 에거나, 달고 어여쁘기만 한 로맨스 영화는 나에게 어딘가 현실과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내 연애관이 염세적인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을 줄여야 할 것 같은데, 엔딩 크레딧에 이 음악이 흐르는 순간, 아- 뭐지, 어떻게 이런 음악을 골랐지, 그랬었다.

*편집자 주- 영상은 영화 <해녀>(Boy On A Dolphin, 1957)에서 소피아 로렌과 토니스 마라우다스가 노래 부르는 장면이다.

 

2. J.S. Bach's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 recorded by Kimiko Ishizaka

아빠가 음악과 영화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라 늘 시청각 환경이 풍족했다. 아주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나이에 맞지 않는 영화라도 내가 원하면 접하게끔 해주었다. 어차피 보여줘도 넌 몰라 꼬맹이야, 이런 마음이었겠지만. CD장을 빼곡하게 채운 클래식 전집을 틈날 때마다 꺼내서 듣곤 했다. 그러면서 차차 취향에 맞는 음악가들이 생겨났는데 바흐가 그중 한 명이다. 골드베르크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듣는다. 보통 작업 중간에 소파에 누워 쉴 때나, 버스로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재생한다. 다 듣고 나면 잡념은 거의 비워지고 어떤 '정서'만이 남는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일게 한다.

 

3. Sea Largest Animal National Geographic Documentary

한 시간 남짓 되는 긴 영상이라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아주 나중까지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가장 최근의 나에게 묻는다면, 해양 생태를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지금의 내 생활에 있어 가장 활달한 관심사이자 채식의 계기가 되어준 것이 바다이다. 고래 영상을 보여주면 울 정도로 고래를 좋아한다. 얌전히 또르르 눈물을 떨구는 게 아니라 세상에- 하면서 엉엉 울고 있다. 아름답다고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커진다.
고래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양 생태에 위협이 되는 것들, 지구의 산호 구역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무차별적인 어획으로 먹이사슬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동시에 바다가 망가짐으로써 인간이 받게 되는 위협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사실 바다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은 영상은 너무 많지만, 입문용(?)으로 덜 자극적이고 평화로운 것을 골라봤다.

 

4. Le Couleur ‘Femme’

작업실 청소할 때 틀어놓는 영상이다. 청소기를 밀며 모니터 앞을 지나가거나, 설거지하다 힐끔거리며 명랑해지기에 좋다. 영상 내내 등장하는 복식이나, 춤추거나 웃는 여자들의 태도가 아주 멋들어진다. 나도 따라 소극적으로 들썩거리면서 ‘아무렴 어때 깨끗하게 치우고 쉬자’고 생각해버린다. 언제나 지겹고 귀찮은 청소를 흥겨운 마음으로 말끔히 끝낼 수 있다.

 

<Romance>, 2017 ©신모래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는?

디자인을 전공한 뒤 꾸준히 자기만의 그림을 그렸다. 홈페이지에 올렸던 작품을 계기로 뉴욕의 작은 갤러리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가했다. 이후 드로잉, 독립 출판 같은 개인 작업을 계속하면서 점차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 나갔다. 대표적으로 2015년 쎄프로젝트를 통해 〈SSE zine #60 NEON CAKE〉를 발행했으며, 2016년 2월 디뮤지엄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개인 전시 <신모래 : ㅈ.gif – No Sequence, Just Happening>을 개최했다. SM 엔터테인먼트, 도레도레 케이크, 의류브랜드 아더(Ader), 퓨마, 문구브랜드 페이퍼팩(Paperpack) 등의 브랜드와 협업했다. 뮤지션 수란의 곡 ‘1+1=0’ 뮤직비디오에 아트워크로 참여했고, 2015년부터 문래동 재미공작소에서 진행한 소규모 그림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 홈페이지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 인스타그램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 그라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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