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파라솔. 왼쪽부터 정원진(드럼), 지윤해(보컬, 베이스), 김나은(기타)

멜로디가 산만한 구석이나 억지스러운 치장 없이 직관적이면서도 말끔하다. 가사는 때로 독설에 가까울 정도로 무심하고 건조하기까지 하다. 쓸데없이 에둘러 표현하는 겉치레도 없다. 영롱하고 맑은 멜로디가 심어주는 ‘치유’의 감상도, 관조적인 창법과 무심한 가사가 던져주는 ‘권태’의 기분도 모두 오롯이 파라솔의 것이다.

2014년, 이미 다양한 밴드에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던 멤버들이 뭉쳐 밴드 파라솔을 결성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지윤해, 트램폴린, 줄리아하트의 김나은, 앞서 얄개들, 푸르내로 활동했던 정원진, 3명의 생경한 조합으로 빚어낸 멜로디는 이내 담담하고 또렷한 메아리가 되어 퍼져갔다. 첫 정규와 몇 장의 EP를 발표하고, 공연을 돌며 인디 음악 신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존재한 지 3년. 여전히 이토록 무심하고 사랑스러운 밴드는 여느 때보다도 반가운 정규 2집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들은 여전히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나른한 기운에 묘하게 빠져드는 멜랑콜리함이나 이전 앨범과 일관된 톤으로 밀고 나가는 고집스러움과 뻔뻔함은 곧 파라솔만의 대체불가의 명랑함이 됐다. 햇볕이 뜨겁게 쬐던 오후, 수수하고 편안한 차림의 파라솔을 만나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꼭 2년 만에 두 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어요.

나은  사실 밴드들이 2집을 내기가 힘들잖아요. 1집만 내고 사라지는 팀들도 많고. 그래서 엄청 감개무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덤덤해요. 빨리 3집 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윤해  1집 냈을 때는 반응도 찾아보고 그랬는데, 요즘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네요.

 

Q 첫 정규앨범에 이어, 이번에도 니나안 작가가 앨범 프로필 촬영을 맡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파라솔 특유의 수수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더 잘 사는 것 같아요. 실제 촬영 분위기는 어땠나요?

윤해  1집 재킷 촬영 때 니나안 작가님이 만삭이셨는데, 그 아기가 어느새 커서 저희랑 같이 촬영을 하게 됐네요. 워낙 작가님이랑 성격이 잘 맞아서 즐겁게 촬영했어요.

나은  아기가 전혀 안 울고, 활발해요. 저희보다 사진도 훨씬 잘 찍어서 작가님이 자꾸만 비교하고 그랬어요.(웃음)

원진  난지천공원에 있는 놀이터에서 찍었거든요. 포토그래퍼님이 셀로판지나 슬링키 같은 소품들을 많이 준비해 오셔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했어요.

파라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앨범 커버

Q 1집 앨범과 비교해보면, 나은 씨가 보컬을 맡은 ‘등산 동아리’를 비롯해 군데군데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이 엿보이는 트랙도 있지만, 그래도 통째로 놓고 봤을 땐 파라솔만의 멜랑콜리하면서도 관조적인 분위기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일관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윤해  이 두 사람(나은, 원진)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다가 금세 또 다른 데로 옮겨 가기도 하는데 두 사람은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악기 같은 것도 바꾸라고 해도 절대 안 바꿔요. 심지어 사다 줘도 쓰던 것만 계속 쓰고.

나은  아니지. 네가 사다 준 건 다 썼어. 그리고 몇 개 사다 주지도 않았잖아.

멤버들  (좌중 웃음)

원진  저희 음악이 일관성 있게 같은 결을 간다는 건, 사실 성격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요. 어떤 명확한 컨셉을 가진 밴드들이 오히려 음악적 색깔이 바뀌기도 쉬운데 저희는 그런 게 없어서 편하게 음악을 해왔던 것 같아요.

나은  어릴 때 즐겨 듣고, 좋아했던 음악들을 쭉 갖고 가는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음악의 코어가 있는데 사실 록은 아니고, 클래식이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그런 음악을 많이 듣기도 했고, 그 영향이 쭉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Q 모든 곡을 멤버들이 직접 만들고 편곡하고 믹싱한다고 들었어요. 처음 멜로디를 만들었을 때와 편곡을 거친 후의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편인가요?

윤해  네. 거의 작곡 수준으로 많이 바뀌는 편이에요.

 

Q 이번 앨범에서 편곡을 거쳐 가장 많이 바뀐 곡이 있다면 어떤 곡일까요?

윤해  ‘설교’요. 엄청 많이 바뀌었어요.

나은  맞아요. 여러 버전으로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해봤던 곡이 ‘설교’랑 ‘아무것도 아닌 사람’, 두 곡이에요. ‘경마장 다녀오는 길’ 같은 경우는 윤해가 베이스 리프를 막 하다가 멜로디랑 편곡이 동시에 이뤄지기도 했고, 곡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Q 파라솔의 음악이라면 억지로 포장하거나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편안함, 또는 무심함 같은 감상을 던져주는 게 매력이잖아요. 사람들이 파라솔의 음악을 들으면 치유받는 느낌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 같고요. 본인들 생각은 어때요?

윤해  사실 옛날부터 해오던 얘기인데, 사람들이 저희 음악을 듣고 웃기다, 또는 재미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사와 멜로디의 괴리를 말씀하셨는데, 그 자체도 하나의 재미있는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은  치유하려고 의도한 건 절대 아니고요.(웃음) 좋게 얘기를 해주시는 거죠. 무작정 ‘음악이 좋아요’라고 하기보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쓰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Q 최근 실리카겔과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했어요. 사실 두 밴드의 에너지가 너무 달라서 합쳐지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잘 안 갔는데, 막상 들어보니 결과물이 너무 조화롭고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네요. 서로 다른 음악적 색깔을 한 곡에 담아내는 데 어떤 기준이나 접점을 두고 조율한 부분이 있었나요?

윤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르지만, 서로 다른 에너지가 충돌했을 때 불편하지 않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비슷한 음악을 하는 밴드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시너지를 내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서로 마음이 통하냐 아니냐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Q 타이틀곡인 ‘경마장 다녀오는 길’은 국내 소설가 하일지의 <경마장을 위하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들었어요. 소설의 어떤 점에 매료되어 작사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나요?

윤해  읽은 지 하도 오래돼서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고요. 가사 거리가 뭐 있을까 하다가 그 소설이 불쑥 떠오른 거예요. 경마장에 가서 망하는 이야기를 써볼까 하다가 작사하게 됐어요. 사실 가사를 엄청 고민하고 쓰는 건 아니라서 어떤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면 앞뒤로 살을 붙이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편이에요.

 

Q 곡 자체도 그렇고, 가사도 보면 내면의 감정에 빠져있기보다는 약간 떨어져 있는, 시니컬하고 관조적인 태도를 많이 취하는데, 실제 멤버들의 성격도 음악과 닮았나요?

나은  닮은 것 같습니다.

윤해  그렇게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약간 좀 질척대지 않나?(웃음)

 

Q ‘설교’랑 ‘경마장 다녀오는 길’ 뮤직비디오 연출을 이주호 감독이 맡으셨더라고요. 실제로 붕가붕가레코드 소속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찍으셨던데, 윤해 씨와의 인연으로 섭외된 건가요?

윤해  네. 친구 사이고, 1집 뮤직비디오도 주호가 다 찍었어요. 저희가 앨범 디자인도 그렇고, 재킷 촬영도 그렇고 1집 때부터 함께 한 사람들과 쭉 연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계속 같이 가는 게 좋더라고요. 편하기도 하고. ‘설교’ 같은 경우에는 제가 주사기를 사다가 하루 만에 촬영을 마쳤고, ‘경마장 다녀오는 길’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스케줄차 영국에 갔을 때, 겸사겸사 찍은 거예요.

파라솔 ‘경마장 다녀오는 길’ MV

Q 열 곡 모두 예상한 대로 멜로디가 흘러가는 법이 없어요. 첫 번째 트랙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보면, 한 곡을 듣고 있는 데도 여러 곡을 듣는 것같이 다채로운 변주가 인상적인데, 이 부분에서는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윤해  아까 코어가 클래식이라고 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1960, 70년대 록음악인 것 같아요. 그때의 음악을 들어보면 다채로운 곡 구성이 매력이거든요. 아마 그 영향을 받지 않나 싶습니다.

 

Q 마지막 트랙 ‘설교’를 보면 가사가 굉장히 희망적인 것 같으면서도, 가끔씩 ‘패배자 감성’이 들 만큼 소극적이고 권태롭기도 해요. 긍정과 부정이 혼재된 가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요?

윤해  궁극적인 메시지는 부정에 가까워요. 사실 첫 번째와 세 번째 문단은 큰 의미가 없거든요.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두 번째랑 마지막 문단에 담겨 있는 거죠. 사실 가사를 쓸 때 전혀 숨기거나 비틀려는 의도가 없는데 제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많이들 헷갈려 하시는 것 같아서 좀 의아스럽기도 해요.

나은  저는 사실 기타를 칠 때 무조건 긍정의 에너지를 넣으려고 하거든요. 멜로디가 예쁘게 들리도록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그게 어떻게 보면 가사랑 반대의 느낌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윤해  그래서 사람들이 헷갈리나?

나은  너무 밝거나 우울하지 않고, 중화되면서 관조적으로 가는 것 같아요. 음악이랑 가사의 괴리를 두는 것도 재미있고.

윤해  네. 저도 음악적으로는 예쁜 게 좋아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래,
앞으로 무슨 일이 있건 행복해
누구도 널 의심하지 않아,
무엇을 하던 하지 못하던 말이야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네가 누군지, 뭘 하는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또 돌아올 아침이야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래,
스스로 불행하단 생각이 들 때
오른손을 가슴 위에 얹고,
왼손을 포개 얹어 놓고 기도해

사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네가 바라는 그 어떤 것도
조금이나 나아진다면
전부 꿈이니 곧 깰 거야

- 파라솔 ‘설교’ 가사 중

Q 이전 앨범들도 그렇고, 곡마다 마지막 1~2분을 남겨두고 가사 없이 멜로디만 길게 흘러요. 못다 한 이야기를 연주에 실어 보내는 느낌이어서 훨씬 완성도 있고 풍성하게 들리고요.

나은  저는 꼭 아웃트로에 기타 라인을 넣을 때 곡에 대한 애정의 마음을 담는 데 의도를 두거든요. ‘앞의 보컬과 드럼이 너무 좋다’는 저의 감상을 기타 연주로 표현하는 거죠. 그러니까 제 나름대로 이 곡을 평론하고 정리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할 얘기가 많아서 아웃트로가 길어지는 걸 수도 있고요.

 

Q '무관심의 음악', '권태의 음악'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데 정작 본인들은 다양한 밴드에서 음악을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어떻게 보면 파라솔이라는 밴드가 본인들에게는 ‘힐링’과도 같은 존재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네요. 음악에서 흐르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느낌도 여기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윤해  사실 요즘에는 이걸(파라솔) 제일 치열하게 하고 있어서요. 소속사도 없다 보니 손이 가는 부분도 많고. 오히려 요즘에는 다른 곳에서 힐링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은  돈도 다른 곳에서 벌고.

윤해  곡 작업도 그렇고, 할 게 정말 많아요. 그래서 요새는 거의 힐링이 되지 않습니다.(웃음)

 

Q ‘우물가의 남자’나, ‘마피아’의 가사는 특정한 사회현상을 겨냥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혼내준다던 사람들이 맞고 있네’라든가, ‘선량한 시민이 죽었습니다’라든가. 이런 가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윤해  ‘우물가의 남자’는 사실 일정 부분 부동산 과열을 얘기하고 있는 건 맞아요. 공동으로 쓰던 우물을 어떤 남자가 돈을 열심히 벌어서 산 거잖아요. 그런데 누구나 자기만의 상황을 갖고 있고, 그래서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마피아’는 사실 게임을 할 때 주고받는 문장이 재밌어서 썼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상황과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Q ‘등산 동아리’의 가사는 ‘등산’이나, ‘동아리’를 연상케 하는 뉘앙스가 전혀 풍기지 않는데 왜 이 제목을 붙였나요?

나은  어떻게 보면 ‘동아리’가 밴드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가사를 살펴보면 연인관계에 해당하는 얘기가 될 수도 있고요. 궁극적으로는 인간관계, 즉 사람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죠.

Q 이번 앨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요?

윤해  ‘사이’ 같은 곡은 제가 키보드를 쳤어요. 원래는 ‘세 명이서만 낼 수 있는 사운드를 뽑자’라는 주의였는데 이번 앨범엔 건반이 꽤 많이 들어갔거든요. ‘마피아’도 만들 때는 몰랐는데, 주위에서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나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요. 편곡을 가장 많이 거친 곡이라,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원진  ‘초면’이요. 가사도 재밌고 아웃트로도 좋아요.

 

Q 파라솔 멤버들의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해요.

윤해  ‘야마시타 타츠로(Yamasita Tatsuro)’요. 아침에도 계속 듣다 왔어요.

원진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의 90년대 앨범을 즐겨 듣고 있어요.

나은  저는 요즘 ‘크리스 코헨(Chris Cohen)’이라는 아티스트의 솔로 앨범을 많이 듣고 있는데요. 미국 독립음악계에 잔뼈가 굵은 뮤지션인데, 정작 솔로를 낸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오는 8월 19일에 저희와 함께 공중캠프에서 공연도 할 예정입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관해 물을게요.

윤해  일단은 9월까지 공연 스케줄을 다 짜놨는데요. 11월까지는 라이브 공연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파라솔 8~9월 공연일정

파라솔은 오는 9월 16일 KT&G 상상마당에서 2집 발매 단독 공연을 가진다. 티켓 오픈일은 8월 2일. 파라솔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지할 예정이다.

파라솔 페이스북
파라솔 인스타그램

 

인터뷰 최은제
사진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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