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은 소설과 산문을 쓰는 작가다. 우연한 계기로 읽은 시집 한 권으로 인해, 운동선수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SNS에 하루도 빠짐없이 올린 글들을 엮은 첫 에세이 <계절에서 기다릴게>(2015)는 별다른 홍보 없이도 초판을 소진했다. 몇 권의 에세이를 더 펴냈고, <시선>(2016), <쓸모없는 하소연>(2017) 등의 소설을 발간했다. 작가의 말마따나, 글을 쓰는 일은 내면에 있는 것을 자꾸만 낱낱이 드러내는 일이다. 하여 지나치게 불필요한 감정마저 들춰내야 하는 고통의 굴레에 빠져들 때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으레 알 수 없는 기척에 이끌려 종이 위로 뜻 모를 무언가를 써내려 갔던’ 것은 오히려, 다행스럽게도 온전히 ‘살아있기’ 위해서였다.

올해 발간한 두 권의 책.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쓸모없는 하소연>

그의 책 가운데, 작가 스스로도 가장 공들인 작품이라 고백한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를 읽었다. 내면에 자리한 깊은 고독과 불안, 쓸쓸함을 어루만지며 주변을 맴도는 지나간 사랑이나 오랜 꿈을 수면 위로 떠올려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리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 스치고 가는데도, 군데군데 목구멍이 턱 하고 차오르는 느낌이 있다.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글이란 이런 것일지 모른다. 이런 여운과 울림은 작가의 진정성과도 직결되는 것인데, ‘글 쓰는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더없이 올곧다.

나는 지금도 모른다. 작가가 되는 방법 같은 건, 어디에도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신춘문예를 통해서, 혹은 독립출판물을 통해서도 책은 만들 수 있다. 그것으로 돈을 벌 수도 있고 유명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작가가 되는 방법은 그런 단순한 일이 아니지 않을까. 쓰는 일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의미일 때, 그로 인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삶의 작은 희망을 느낄 수 있을 때, 자신이 쓰는 것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동일시 될 때. 아마도 그때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두고두고 꺼내 읽고픈 아련한 책 한 권이 되고 싶었다.

- 김민준,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2017) 가운데

그가 작품에 임하기 전, ‘마음가짐의 정돈’을 하기 위해 찾아보는 영상들을 보내왔다. 그의 책처럼, 아래 영상들도 시청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나아갈 힘’을 제시하는 데 소소하지만 분명한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Kim Minjun Says,

“작품에 임하기 전, 언제나 가장 먼저 행하는 것은 ‘마음가짐의 정돈’입니다. 예컨대 소설을 쓸 경우에도, 혹은 짧은 단문을 써내려 갈 때에도 작가는 ‘쓰고자 하는 것’과 비례하는 ‘마음의 결’을 만들기 위한 준비 단계를 꼭 거쳐야만 하지요. 아래의 영상들은 그런 행위를 도와주는 일종의 도구적 매개체들입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음악, 대사,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외부의 잡음으로부터 해방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1. 영화 <본 투 비 블루>(2016) 엔딩 장면

쳇 베이커의 삶을 그린 영화 <본 투 비 블루>의 마지막 장면이다.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라는 수식어를 늘 안고 살아갔던 쳇 베이커의 삶이 집약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재즈를 연주하는 동안 보여지는 등장인물들의 미소 안에서 기쁨과 슬픔, 기대와 실망 등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다소 복잡하게 혼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예술과 사랑, 끝내는 그 모든 삶의 연장선에서 파리하게 떨려오는 애환들이 고스란히 스며들곤 한다.

 

2. 2016년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

2016년 하버드 대학의 졸업 축사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읊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자유롭게 랩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상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리 누구도 세상에 ‘보통(Common)’이 되기 위한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혜성(Comet)’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연설자의 문장이 귓가를 스칠 때면, 스스로 걸어 잠근 자물쇠를 열어 가능성을 해방하고픈 기분이 든다.

 

3. 영화 <버드 맨>(2015) 엑스텐디드 신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버드맨> 속 한 장면이다. 예컨대 모든 예술을 하는 사람의 숙명은 비평과 맞닥뜨리는 것이 아닐까. 한 편의 연극에 자신의 전부를 건 배우와 그것에 대한 평가를 내어놓아야만 하는 비평가의 역할이 강하게 부딪히며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넌 낙인을 찍지 않고서는 본질을 보지 못하거든(…) 이건 그냥 뭐 같은 비교들로 채워진 네 머릿속의 잡음들일 뿐이야.” 주인공이 내뱉은 짧은 대사 한 줄이 대중과 창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은 듯하다.

 

4. 영화 <초속 5센티미터>(2007) 엔딩 장면

영화 ‘초속 5센티미터’의 엔딩 장면으로, 내용을 떠나 나긋나긋 들려오는 일본어 특유의 전달력과 이미지 연상이 좋아 자주 보는 장면이다. 실제로 지난 4월에 출간한 소설 <쓸모없는 하소연>에서 떨어지는 벚꽃을 ‘높은 채도의 눈송이들’이라고 묘사한 데에 이 엔딩 장면의 영향을 크게 받은 바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 대사, 배경음악은 물론 눈과 벚꽃이라는 다소 상반된 이미지의 결합에 이르기까지 여기에서 등장하는 모든 미장센이 가슴에 깊이 사무치곤 한다.

 

작가 김민준은?

우연한 계기로 읽은 시집 한 권으로 인해, 운동선수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직까지 그 선택에 후회는 없는 것으로 보아 그럭저럭 즐거운 인생을 살아내는 중이다. 산문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2017), 소설 <시선>(2016), <쓸모없는 하소연>(2017) 등의 작품을 썼다.

김민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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