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의 뉴올리언스에서 스윙(Swing)의 형태로 재즈가 발생했다면, 1930년대 중부지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는 비밥(Bebop)이 잉태된 역사적 도시다. 뉴올리언스가 유럽과 미대륙을 연결하는 대서양의 관문이라면, 캔자스시티는 미국 동부와 서부를 잇는 내륙 교통의 요지였다. 많은 유랑밴드와 연주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캔자스시티로 모여들어 그곳에서 번성하던 클럽에서 연주하였다. 캔자스시티의 재즈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The Last of the Blue Devils>(1979)에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 빅 조 터너(Big Joe Turner)를 중심인물로 당시의 귀한 영상들을 볼 수 있어 재즈 팬에게는 가치가 큰 영화다. 이를 만든 브루스 릭커(Bruce Ricker)는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감독과 협력하여 재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감독으로 유명하다.

캔자스시티의 재즈 역사를 다룬 <The Last of the Blue Devils> 일부

뉴올리언스의 베이슨 스트리트,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 뉴욕의 52번가, 로스엔젤레스의 센트럴 애비뉴가 재즈의 중심가였다면, 캔자스시티에는 18번가와 바인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중심가가 있었다. 1930년대의 이곳에서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레스터 영과 빌리 홀리데이가 공연을 하였고, 찰리 파커의 연주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재즈 스타로 발돋움한 곳이다. 지금도 당시의 인기 재즈클럽 ‘Blue Room’과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Gem Theatre’가 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근래에 문을 연 미국 재즈 박물관을 중심으로 관광객의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캔자스시티 18번가의 클럽 ‘Blue Room’과 공연장 ‘Gem Theatre’

1930년대의 캔자스시티를 배경으로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재즈 영화가 있다. 캔자스시티 출신인 로버트 올트먼(Robert Altman)이 제작한 <Jazz ‘34: Kansas City Bank>(1996)인데, 현역 재즈 뮤지션들이 출연하여 당시의 재즈 레전드를 연기하며 영화의 현실감을 높였다. 당시 ‘Top 3 Swing Tenor’로 불렸던 레스터 영 역에는 조슈아 레드맨(Joshua Redman)이,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 역을 크렉 핸디(Craig Handy)가, 벤 웹스터(Ben Webster) 역을 제임스 카터(James Carter)가 맡았고,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역은 피아니스트 사이러스 체스트넛(Cyrus Chestnut)이 맡았다. 유명한 베이시스트 론 카터(Ron Carter)도 출연하였다.

1930년대 캔자스시티의 재즈클럽을 재현한 <Jazz ’34: Kansas City Bank>

캔자스시티는 스윙이 중심이었던 재즈의 방향성을 비밥으로 전환한 토양 역할을 했다. 여기에는 1930년대 도시를 장악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치적 보스 톰 팬더개스트(Tom Pendergast)의 영향이 있었다. 그가 도박과 밤 문화를 즐긴 ‘덕분’에 캔자스시티의 클럽들은 밤샘 영업이 일상적이었고, 재즈 연주자들은 스윙 악단의 공식 연주가 끝나면 자신들만의 잼 세션을 열면서 연주자 간의 커팅 컨테스트(Cutting Contest, 즉흥연주 방식의 배틀)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같은 곡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형해 연주하는 재즈 음악의 주요 특징인 즉흥연주를 꽃피운 것이다. 역시 캔자스시티 출신인 영화감독 로버트 올트먼이 제작한 <Jazz ’34: Kansas City Bank>(1996)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유행한 커팅 컨테스트를 재현한 장면

하지만 캔자스시티의 밤 문화의 꽃을 피우는데 일조한 보스 톰 팬더개스트가 건강 문제로 물러나 탈세 혐의로 기소되면서 도시의 밤 문화는 1940년대 들어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한다. 찰리 파커로 대표되는 신흥 스타들이 뉴욕으로 옮겨 가면서 캔자스시티가 아닌 뉴욕의 재즈 클럽들이 비밥 탄생의 중심지로 오늘까지 남게 된다. 캔자스시티 시정부는 1970년대 대대적인 재개발을 통해 재즈 발상지의 명성을 되찾으려 시도했으나, 엉뚱하게도 갱의 세력권 전쟁에 휘말려 재즈 클럽 세 곳이 폭파되는 사건을 겪으며 좌초되기도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론 카터의 베이스 연주

1930년대 당시 캔자스시티에서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재즈 바이올린 연주자 클라우드 윌리엄스(Claude Williams)는 이렇게 회상한다. “캔자스시티는 밤새도록 잼을 했다는 점이 다른 도시들과 다른 점이었어요. 당신이 거기 참가해서 뭔가 잘못된 음정을 연주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가 잘못이었는지 찾아 주었죠. (중략) 클럽들은 도시 어디에나 있었지만 가장 번성했던 곳이 18번가와 바인 스트리트 인근이었어요.”

1930년대의 캔자스시티를 대표하던 재즈 밴드가 카운트 베이시 악단(Count Basie Orchestra)이다. 로버트 올트만 감독은 그들의 연주 장면을 영화에서 정교하게 되살렸다. 피아노를 치는 리더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포크파이 모자를 쓴 채 색소폰을 비스듬하게 들고 느긋하게 연주하는 멋쟁이 레스터 영이 나오는데, 그를 연기한 배우는 하버드대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재즈 색소폰 스타 조슈아 레드만(Joshua Redman)이다.

10~13명으로 구성된 당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을 묘사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