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다양한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씨네허브(CINEHUB)와 인디포스트가 손을 잡았다. 씨네허브X인디포스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신진 감독들의 단편영화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감독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전하려 한다. 단편영화가 생소한 관객들에게 친절하고 쉬운 창구가 되어줄 것이다.

그 첫 작품은 홍익대학교 영상영화전공 출신 오지원 감독의 단편영화 <고열>이다. 내밀한 주제를 상징하는 기괴한 장면과 그것을 뒤엎는 환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요즘 주목받는 배우들의 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러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눈도장을 찍고, 8월에 개봉할 장편영화 <여자들>(2017)로 스크린에 찾아올 배우 유이든. 그리고 최근 종영한 Mnet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끼와 매력을 발산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배우 박성우다. 잘 몰랐던 배우들의 색다른 모습과 신예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이 버무려진 단편영화 <고열>과 그 제작기를 담은 인터뷰를 지금 확인해보자.

 

<고열>

Feverㅣ2013ㅣ감독 오지원ㅣ출연 유이든, 박성우ㅣ15min

 

영화 리뷰

<고열>은 소녀 ‘유진’(유이든)이 남동생 친구인 ‘혁’(박성우)을 남자로 인지하면서 보게 되는 격렬한 두려움을 판타지로 표현한다. 덕분에 소녀 감성의 색상과 아기자기한 소품, 아름다운 영상미를 즐길 수 있다. 영어 제목 ‘피버(Fever)’는 일시적인 고열을 뜻할 수도 있고, 야릇한 분위기에 휩싸인 열기를 뜻할 수도 있지만, ‘고열’이라는 한글 제목으로 인해 외부의 침입에 대한 반응과 적응을 겪게 되는 성장통의 의미로 보이기도 한다. 남자에 대한 불쾌함은 여전하지만, 초반처럼 공포스럽기 보다 성장의 뉘앙스를 풍기는 엔딩을 보면 더욱 그런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소녀 유진에게 남자란 누그러지긴 하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이질적인 존재인 것이다.

리뷰 김원근(리컨) mmd2mind@daum.net

 

감독 인터뷰

Q 감독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영상 프로덕션 스튜디오 '언더무드 필름(UNDERMOOD FILM)'에서 연출을 맡고 있는 오지원입니다. 단편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영상과 사진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Q '유진'의 사적 공간인 방에 있는 사물들의 컬러가 다양하고 화려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열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현실의 공간보다 좀 더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하여 과감한 색과 소품들을 사용하였고, 제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들어간 미술이기도 합니다. 당시 저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세트 제작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들을 겪느라 모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영화에 참여해주신 모든 스태프에게 두고두고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Q '유진'이 잠을 자다 친구들의 배가 불러오고, 멍이든 장면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유진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던 임신에 대한 공포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Q 배우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주인공 유진 역을 맡은 배우 유이든 씨는 현재 독립영화와 뮤직비디오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개성 강한 멋진 배우입니다. 곧 개봉할 이상덕 감독의 장편영화 <여자들>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하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열>에 함께한 배우 박성우, 오현아, 박수진 씨도 인격적으로나 배우로서 정말 좋은 분들이기 때문에 많은 분이 러브콜을 해주신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열> 스틸컷. 배우 유이든
<고열> 스틸컷. 배우 박성우

Q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거나, 재미있던 뒷이야기가 있을까요?

<고열>은 학교에서 지원해준 35mm 필름으로 촬영한 작품입니다. 서울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현상한 영화로 알고 있고요. 필름 촬영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해본 순간이었습니다. 문제는 소량의 필름만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NG 없이 가야 했습니다. 제일 많이 찍은 장면이 세 테이크 정도였고 나머지는 거의 한 테이크로 진행했습니다. 그야말로 NG 컷이 OK 컷이었습니다.(웃음) 디지털로 촬영할 때보다 서너 배 많은 시간이 들어갔고, 필름도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많은 컷을 현장에서 삭제해야 했습니다. 현장에서 아예 머릿속으로 전체적인 편집을 생각하며 숏을 다시 구성하느라 제일 애를 먹었습니다.

 

Q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신경 쓴 장면은 무엇인가요?

거의 한 테이크 밖에 갈 수 없어 모든 장면에 신경을 썼지만, 가장 NG가 많이 나 리허설을 제일 많이 했던 장면은 친구들이 풍선을 부는 장면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비슷한 크기로 풍선을 불어야 해서 NG가 많이 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는데도 제한적인 필름으로 인해 슛을 많이 갈 수 없는 상황이었죠. 모든 스태프가 긴장하고 지친 상황이었는데, 두 배우의 노련한 기술(?)로 OK 컷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여러 가지 이유로 담고 싶었지만 담지 못한 장면도 있을까요?

말씀드렸듯이 삭제한 컷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만 고를 수가 없네요.(웃음)

<고열> 촬영현장 스틸컷

Q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인가요?

모든 소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가 그랬기 때문에 그런 저와 비슷한 어린 여성들이 느낄 수 있는 남성에 대한 공포, 임신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유진의 마음에는 좀 더 복잡한 심리가 얽혀 있어요. 단순한 혐오만은 아니죠. 여기까지 말씀드릴게요. 그냥 보시는 대로 생각해주세요!

 

Q 현재 제작 중이거나 기획 중인 작품이 있을까요?

웹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서 저희 언더무드 팀과 진지하게 상의하는 중이에요. 한국에서 여성 연출자로서 극장 개봉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는 건 매우 아득한 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플랫폼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익구조만 명확해진다면 웹 쪽에서 작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Q 영화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씨네허브에 올라온 단편영화들을 보면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업영화에서는 여성 감독의 작품들을 거의 볼 수가 없죠. 이 많은 단편영화들을 연출한 여성 감독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저는 이 현상이 굉장히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으신가요? 저는 씨네허브 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TV에서도 많은 여성 감독의 작품들을 보고 싶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끝까지 영화를 포기하지 않도록, 이 불평등한 한국영화계 내 성비구조의 문제점을 관객들이 함께 고민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씨네허브코리아 박준영 day-movie@naver.com

 

씨네허브 홈페이지 www.cinehub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