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 측의 방침상 허가 없이 사진과 동영상의 촬영, 녹음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참여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와 다른 장소의 라이브 영상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현장의 모습을 자유롭게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여러모로 상상하며 즐겨주시길.)

일본에는 유명한 음악 페스티벌이 여럿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후지 록 페스티벌과 섬머소닉, 음악 잡지 <ROCKIN'ON JAPAN>에서 기획하는 록 인 저팬 같이 굵직한 것들도 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페스티벌이 매년 여러 지역에서 열리고 있지요. 부산에서 가까운 규슈의 중심 도시 후쿠오카에도 선셋 라이브나 뮤직 시티 텐진 등 잘 알려진 페스티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크기의 아름다운 장소에서 섬세하게 골라낸 인디 음악의 정서를 펼쳐내는 비교적 젊은 페스티벌도 있는데요. 2012년 이후로 따져 여섯 번째 열린 서클(CIRCLE)'17입니다. 이 젊은 음악 축제에 골든두들이 다녀왔습니다.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전경

서클 페스티벌은 후쿠오카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海の中道海浜公園)에서 열립니다. 151만 평이 넘는 부지에 설계된 이 거대한 공원은 계속 확장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는 여의도의 면적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꽃, 잔디, 동물, 수영장, 바닷가, 리조트, 수족관 같은 다양한 테마 시설이 있죠. 공연이 열리는 야외극장은 잔디가 깔린 완만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크고 작은 두 개의 무대와 스탠딩 구역, 자리를 깔고 앉을 수 있는 레져 시트 구역, 텐트와 천막 구역, 그리고 여러 음식점과 상점이 들어오기에 이상적인 넓이와 지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클 페스티벌의 모습. 출처 서클 페스티벌 트위터(@CIRCLE_FUKUOKA)

되도록 많은 공연을 보기 위해 전날 밤 술자리도 마다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후쿠오카의 중심가 텐진에 있는 셔틀버스 승강장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날씨는 더웠고, 햇볕은 강하게 내려와서 5월 하순이라기에는 너무도 여름 같았고요. 셔틀버스의 배차는 약간 모자라는 편이어서 대략 30분 정도 기다려 버스에 올랐습니다. 물론 타고 나서는 편하게 앉아서 공연장으로 갈 수 있었어요. 보러 가는 사람들의 면면은 역시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꽤 눈에 띄었습니다.

D.A.N.의 공연이 끝날 때쯤 들어가서 cero, 스커트(スカート), 페트롤즈(ペトロールズ), Yogee New Waves의 공연을 보는 동안 박태성 씨의 뱃속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맥주, 하이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목하여 보았던 팀은 KIMONOS인데요, 전에 골든두들이 소개하였던 METAFIVE의 레오 이마이(LEO今井)와 ZAZEN BOYS의 무카이 슈토쿠(向井秀徳)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유닛으로, 2010년에 앨범 <Kimonos>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밴드 Deerhoof의 드러머 그렉 소니어(Greg Saunier)가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던 이 앨범은 빈티지 신디사이저의 음색과 포스트 펑크의 리프, 강렬한 비트와 포크적인 메시지의 가사로 도쿄의 광기 어린 긴장을 포착하였습니다.

Kimonos ‘Soundtrack To Murder’

홍대 앞 공연장 겸 펍인 공중캠프와도 인연이 닿아 몇 번 공연하였던 키세루(キセル)는 교토 출신의 형제 밴드입니다. 1998년에 결성하여 <明るい幻(밝은 환상)>(2014)까지 열 장의 앨범을 내는 동안 거의 2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개인적으로는 키세루의 공연을 낮에, 그것도 야외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들의 나른한 감성은 역시 밤의 실내에 잘 어울리지만, 선명한 햇빛 아래 비현실적으로 울리는 선율도 꽤 좋았어요. 그것은 아마도 소리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キセル(키세루) ‘サマタイム(서머타임)’ LIVE

만약 일본도 영국 왕실처럼 뮤지션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풍조가 있었다면,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도 그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본인이 받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평소의 소탈한 표정 그대로 무대에 올라 느긋하면서도 신나게, 점잖으면서도 장난스럽게 노래를 풀어내는 모습은, 정말 뭐랄까요. 이번 서클 페스티벌에 출연한 never young beach의 프론트맨 아베 유우마(安部勇磨)는 백스테이지에서 호소노를 만나 자신의 모자에 사인을 받으면서 이런 트윗을 남겼습니다. "일생의 보물. 나에게 있어서 음악의 신. 정말로 정말로 기쁘다. 넋이 나가버렸다."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의 사인. 출처 아베 유우마(安部勇磨) 트위터(@YU_MA_TENGO)

never young beach의 공연을 보고 나서, 명창(名唱) 나카노 요시에(中納良恵)의 목소리를 들으러 EGO-WRAPPIN'의 무대로 향했습니다. 1996년에 결성하여 작년에 20주년을 맞은 밴드는 베스트 트랙과 커버 곡을 모은 앨범 <ROUTE 20 HIT THE ROAD>(2016)를 발표하였습니다. 처음 '色彩のブルース(색채의 블루스)'로 이들의 음악을 접했을 때의 강렬한 인상은 대놓고 본격적으로 파고드는 복고의 감각과 그에 아주 잘 어울리는 보컬의 호소력이었다고 기억합니다만, 세월이 흘러도 그 두 가지 특징은 여전히 새파랗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곡의 구성과 연주, 파워풀한 무대 매너는 이제 명인(名人)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느낌이었어요.

EGO-WRAPPIN' 'かつて..。(예전에)' LIVE

CIRCLE '17의 헤드라이너는 덴키 그루브(電気グルーヴ)였습니다. 신나는 전자음악 위에서 화려한 영상과 조명이 뛰어노는 무대는 어두워진 하늘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우주선 같았어요. 이시노 탓큐(石野卓球)와 피에르 타키(ピエール瀧)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 테크노 장인들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 동안 독자적인 음악 세계와 못 말리는 퍼포먼스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찌릿찌릿 두근두근거리게 해주었습니다.

電気グルーヴ(덴키 그루브) '虹(무지개)' LIVE

더할 나위 없는 날씨를 내려준 하늘 아래 푸르른 잔디에 앉아 훌륭한 공연을 보며 먹고 마시는 동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소풍 가기 좋은 장소에서 열린 이 페스티벌에는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았고, 넓은 공간에서 노래를 들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어요.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던 2016년과는 달리 올해는 하루뿐이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모두 하나같이 좋은 무대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never young beach와 관객 사이에 오가는 열광적인 에너지였는데요, 소속사인 BAYON PRODUCTION의 대표가 트위터에 올린 짧은 영상을 보여드리며 서클의 관람기를 마칩니다.

never young beach 'あまり行かない喫茶店で(별로 가지 않는 찻집에서)' LIVE

 

Writer

골든 리트리버 + 스탠다드 푸들 = 골든두들. 우민은 '에레나'로 활동하며 2006년 'Say Hello To Every Summer'를 발표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2012년 IRMA JAPAN 레이블에서 'tender tender trigger' 앨범을 발표하였다. 태성은 '페일 슈', '플라스틱 피플', '전자양'에서 베이스 플레이어로, 연극 무대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최근에 여름과 바다와 알파카를 담은 노래와 소설, ‘해변의 알파카’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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