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iugroup. 왼쪽부터 Luis(키보드), Gobo(보컬), Hsiu Chi(기타), Amie(베이스), Lee Wei(드럼)

전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그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민요가 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아리랑’, ‘풍년가’, ‘뱃노래’ 등이 그것인데 요새는 이러한 민요풍을 가미한 가요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스물두 살의 동갑내기 친구들로 결성된 대만 5인조 록밴드 Bisiugroup(美秀集團, 비슈그룹)은 대만 전통민요의 복고스러움, 내지는 ‘촌스러움’을 자신들의 음악에 손쉽게 비벼낸다. 이들의 음악에서 젊은 감성이나, 세련미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옛날 정서가 주는 특유의 친근감과 다정스러움은 분명히 살아 숨쉰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민요풍 선율과 한이 서린 창법을 그대로 가져와 자신들의 음악에 덮어쓰는 것은 아니다. 1980~90년대 대만 뉴웨이브 록 음악의 영향을 받은 보컬 고보(Gobo)와 나머지 네 멤버의 폭넓은 음악적 취향이 담겨 만들어진 비슈그룹의 음악은, ‘복고’라는 키워드를 놓지 않으면서도, 20대 초반의 젊은 에너지와 재기발랄함을 동시에 포용한다.

美秀集團(Bisiugroup) '細粒的目睭' MV

밴드의 탄생 과정이 흥미롭다. 2015년 보컬 고보가 대만 유명 음악경연대회 남면아가(南面而歌)에 출전한 자작곡이 덜컥 입상하면서, 시상식에서 공연을 펼치려면 반드시 밴드 세션이 필요했다. 고보는 급하게 고등학교 친구들을 떠올렸고, 기타와 드럼을 다룰 줄 아는 슈치(Hsiu Chi)와 리웨이(Lee Wei)를 영입해 초기의 밴드를 결성했다. 당시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곡이 바로 '細粒的目睭(가는 눈망울)'이다. 비슈그룹을 세상에 알린 곡으로, 어수룩함과 서투름, 거친 느낌들이 날 것 그대로 담긴 데뷔곡이다. 뮤직비디오는 1970년대에나 볼 법한 촌스러운 노래방 자막 컨셉을 바랜 듯한 색감과 거친 질감의 빈티지한 화면에 녹여내며 비슈그룹의 복고적 성향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본격적인 음악 활동에 앞서, 키보드와 베이스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들은 이내 새로운 멤버 두 명을 영입함으로써 5인조 밴드의 완전체를 이뤘다. 밴드 내 유일한 여성 멤버인 아미(Amie)는 당시 베이스를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아마추어였지만, 멤버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강제로’ 팀에 합류했다. 이내 허름한 작업실 하나를 빌려 합숙을 시작한 이들은 꾸준히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여러 공연장을 돌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쳐갔다.

美秀集團(Bisiugroup) '捲菸' MV

5명의 완전체로 완성한 곡 '捲菸(담배)' 뮤직비디오를 보다시피, 보컬 고보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과 독창적인 음악적 세계는 멤버들의 풍성한 악기와 하모니를 이루며 사운드의 빈 부분을 촘촘히 채워갔다. 스튜디오에서 풀 장비로 녹음한 곡은 아니지만, 거칠고 투박한 로우파이 질감의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워 매력을 더했다. 밴드 내 기타리스트 겸 ‘스피치맨’을 담당하는 슈치(Hsiu Chi)가 “죽기 전, 비슈그룹의 이름으로 한 곡만 남길 수 있다면, '捲菸(담배)'를 꼽고 싶다”고 했을 만큼, 다섯 멤버가 각자의 음악적 취향을 적절하게 조율하기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스민 곡이다.

보컬 고보가 미용실 싸인볼을 직접 개조해 만든 특수 악기, ‘슈퍼파워 로켓(SUPER POWER ROCKET)’의 연주법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

비슈그룹(美秀集團)이 팀 이름을 지을 때, 밴드를 뜻하는 악단(樂團) 대신 집단(集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멤버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악기 세션 외에도 밴드 내 부차적인 역할에 대해 설명하는데, 고보는 보컬 겸 발명가, 슈치는 기타리스트 겸 스피치맨, 리웨이는 드러머 겸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식이다. 그래서 이들은 음악 외에도, 자신들이 직접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공연 홍보영상을 만들며, 새로운 악기를 발명한다. 영상에 소개된 ‘슈퍼파워 로켓’이라는 악기 역시 보컬 고보가 어릴 적 엄마와 손잡고 다니던 미용실의 싸인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반짝이는 싸인볼 옆으로 건반을 붙이고, 피치와 튜닝, 페이저 버튼을 달아 흡사 기관총 모양의 충격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악기가 탄생했다. 그렇게 완성된 슈퍼파워 로켓은 비슈그룹의 촬영장이나, 공연장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마스코트로 톡톡히 활약 중이다.

록밴드페스티벌(Rock Band's)에서 슈퍼파워 로켓과 함께 공연을 펼치는 비슈그룹
美秀集團(Bisiugroup) '一隻雞(A Rooster)' MV

2017년 3월, 이 다섯 명의 괴짜들은 드디어 첫 EP를 발표했다. 그동안 정식 음원 없이, 공연장에서만 부르던 자작곡 5곡을 담은 앨범 <Sound Check>다. 앨범 발매와 함께 유튜브에 공개한 '一隻雞(A Rooster)' 뮤직비디오를 보자. 닭이 날개를 푸드덕거릴 때마다 솟구치는 먼지, 꾀죄죄한 차림의 시골 여성 같은 키치하고 아날로그적인 요소들과 꿈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들을 닭에 덧대어 표현한 노랫말이 리드미컬하게 어우러진다. 요즘 세대들은 잘 쓰지 않는 대만 방언인 민난어를 가사에 꾸역꾸역 담는 고집도 변함없다. 인간의 과도한 사육으로 인해 날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한 닭과, 외부의 환경에 손쓸 새 없이 휩쓸리는 청년들의 애잔한 처지를 하나로 바라보는 참담한 심정을 가사에 담았다.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날기를 원하는 닭은
무엇 때문에 번번이 추락하고 마는가
닭 한 마리는 깊은 골짜기에서 꼬꾸라져 죽음을 맞네
영혼이라도 실컷 날아라
영혼이라도 실컷 날아라

董事長樂團(동사장밴드) ‘倒退嚕’ MV

2016년 8월, 비슈그룹은 평소 누누이 팬이라고 밝혀왔던 1990년대 대만 록가수 동사장밴드(董事長樂團)의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하며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대만 민요풍 기반의 곡 ‘倒退嚕(도퇴로)’에 밴드의 주특기인 흐물거리는 가사를 화면에 띄우고, 다채로운 색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비로소 비슈그룹이 꿈에 그리던 과거와 현재의 성공적인 맞닿음을 이뤄냈다.

최근 비슈그룹은 정식 데뷔 1주년을 맞아, 타이베이의 크고 작은 공연장을 돌며 특별공연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다섯 명의 괴짜가 들려줄 신선한 충격들을 두고두고 즐겁게 지켜볼 일이다.

Bisiugroup 공식 홈페이지
Bisiugroup 페이스북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