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 늘 즐겁기만 한 건 아니라서, 또한 늘 좋은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건 아니라서, 지구 위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피로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나의 옳고 그름이 타인의 잣대와 많이 어긋나는 순간들. ‘배려’라는 단어의 정의와 한계선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들. 뉴스에 수시로 등장하는 부조리와 분노의 순간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들에 부대끼며 여전히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의심하게 되는 그 많은 순간순간.

그럴 때 저는 가끔 우주를 떠올립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린 그저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건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겸허함을 모르거든요. 그저 아주 멀어지고 싶은 마음인 거에요. 인간으로부터, 지구로부터.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 사이언스북스 | 2001

인류가 달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전부터 많은 사람이 우주를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저와는 사뭇 다른 이유에서였겠죠. 그들에게 우주란 가능성과 무한함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과 무한함을 깊은 애정을 담아 탐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죠. 바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입니다.

Earth as ‘Pale Blue Dots’ ©NASA/JPL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태양계 무인 우주탐사선 보이저 1, 2호가 우주로 쏘아올려 졌습니다. 그리고 1990년 2월 14일. 태양계의 끝자락, 명왕성 주변을 탐사하던 보이저 1호는 지구를 향해 카메라의 방향을 돌린 뒤 사진을 찍어 전송합니다. 60억km 떨어진 곳에서 보내온 사진에서 지구는 아주 작고, 희미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은 바로 그 사진에서의 지구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칼 세이건은 이 창백하고 푸른 점을 먼 곳에서 바라보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점을 포함하고 있는 우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이 책에 담아두었습니다.

Chuck Berry ‘Johnny B. Goode’ 1958년 Live 

칼 세이건은 그 애정을 보이저호에도 담아두었습니다. 우주의 생명체에게 지구가 어떤 곳인지, 인류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기 위해 금박을 씌운 LP 레코드판인 골든 레코드를 만들어 붙여 두었거든요. 골든 레코드에는 118장의 사진, 55개의 언어, 19개의 지구 위의 소리, 그리고 27곡의 음악이 담겨 있습니다. 27곡의 노래 중에는 클래식도 있고, 민속 음악, 블루스도 있죠. 그리고 로큰롤의 전설인 척 베리의 노래가 있습니다.

골든 레코드를 알게 된 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복합적인 심경이 되었습니다. 태양계를 벗어난 곳에서 로큰롤이 울려 퍼지는 상상을 해보세요.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을 그곳에 척 베리의 기타 반주가 시작됩니다. 절로 신이 나서 기운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쩐지 로맨틱해졌다가, 다시 쓸쓸해지기도 하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나고만 척 베리가 실은 태양계 밖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뿐이라는 위안도 받고요.

골든 레코드 수록 리스트

 

David Bowie 'Space Oddity'

지구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고 믿고 있는 또 한 명의 뮤지션이 있습니다. 네, 맞아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 우리의 Starman 데이빗 보위. 그리고 ‘Space Oddity’는 우주를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곡이죠. 노래 가사 속 톰 소령처럼 고요하게 유영하며, 세상과 멀리 떨어진 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유언을 남기는 상상을 하다 보면 수런거리는 마음도 가라앉곤 합니다.

내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녀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참, 이 노래는 실제 우주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도 불렸어요. 데이빗 보위의 굉장한 팬이라고 밝힌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가 지구로 귀환하기 전, 뮤직비디오를 촬영해 공개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구와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기타 등 CG가 아닌 우주의 모습은 압도적으로 아름답습니다.

Chris Hadfield ‘Space Oddity’ MV

 

<플라네테스>

유키무라 마코토 | 학산문화사 | 2017
(2000년도 초반에 <프라네테스>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절판한 뒤, 올해 재발매했다.)

2070년. 우주를 여행하는 것, 우주에서 일하는 것이 제법 일상적인 일이 된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만화입니다. 주인공들은 ‘데브리’라고 불리는 우주의 쓰레기를 제거하는 일을 하고 있죠. 아내의 유품을 찾기 위해, 자기만의 우주선을 가질 돈이 필요해서, 우주개발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데브리를 회수하는 그들에게는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우주에서도 그것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고민과 갈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주로 나간들, 그들 역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니까요.

그러니까, 우주라는 비일상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지만, 우주가 무엇인지 보다는 우주로 향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인 겁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함과 무력감은 결국 인간과 부딪히며 해소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지구에서 몇억 광년 떨어져 인간들과 마주치지 않는다고 해도 저라는 존재에게 극적인 변화가 찾아오진 않겠지요. 인간이라는 대전제를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내일의 나는, 또 내일의 지구는 오늘보다 나아질 거라고 희망하는 수밖에요. 가끔 상상의 범주를 뛰어넘는 광활함을 머릿속에 그리며,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호를 떠올리거나 하면서 말이에요.

 

Writer

심리학을 공부했으나 사람 마음 모르고, 영상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제작보다 소비량이 월등히 많다. 전공과 취미가 뒤섞여 특기가 된 인생을 살고 있다.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 영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