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1963년생으로 세 살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영화광이던 모친을 따라다니면서 영화관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인근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하면서 저급한 B급 영화들을 수없이 보게 되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면서, B급 감성, 과거 영화에 대한 오마주, 탁월한 음악 선곡 능력은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대표하는 장점이 되었다. 그가 영화에 선곡한 1960년대 팝 음악들은 수십 년 만에 새로운 세대의 팬덤을 확보하면서 음악 차트에 다시 오르게 되었고, 광고나 행사 음악에도 다시 소환될 정도로 한 세대를 건너 인기를 누렸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 선곡되어 새로운 유행 음악으로 떠오른 1960년대 인기곡 넷을 알아보았다.
Stealers Wheel ‘Stuck in the Middle with You’(1973)
스틸러스 휠(Steelers Wheel)은 ‘Baker Street’를 빌보드 차트 No.2에 올린 싱어송라이터 제리 래퍼티(Gerry Rafferty)가 솔로 활동 전에 결성했던 스코틀랜드 5인조 포크 밴드다. 1972년 결성 후1975년에 해체되어 단명했던 밴드였는데, 이들이 남긴 유일한 히트곡이 바로 ‘Stuck in the Middle with You’다. 본인들조차 놀랄 정도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 곡은 미국 차트에서 6위, 영국에서는 8위에 올랐으며, 싱글은 100만 장 이상 팔려 나갔다. 이 곡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 영화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 1992)에서 경찰을 고문하는 폭력적인 장면에서 ‘미스터 블론드’(마이클 매드슨)가 춤추고 노래했던 음악으로 나왔다. 당시 28세였던 타란티노 감독은 배우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노래를 들려주면서 이보다 더 적합한 노래가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했지만, 그 누구도 이만한 노래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 곡은 2020년에 IBM의 TV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Dick Dale ‘Misirlou’(1962)
이 음악은 20세기 초반부터 지중해 동부의 터키, 그리스,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유행하였지만, 언제 누가 작곡했는지는 미상이다. 심지어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버전들이 존재하였고 벨리 댄스 반주곡으로도 활용되던 구전 음악이었는데, 이를 레바논 출신의 아버지에게서 들은 기타리스트 딕 데일이 빠른 템포의 서프 록 기타 연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후 비치 보이즈나 빈스 과랄디도 리메이크하여 미국 팝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Misirlou’는 터키어로 “이집트 여인”이라는 의미다. 타란티노 감독은 두 번째 영화 <펄프 픽션>(Pulp Fiction, 1994)의 오프닝 크레딧 등에 이 곡을 삽입하여, ‘펄프 픽션 음악’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 위원회가 이 곡을 그리스 태생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곡 중 하나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Nancy Sinatra ‘Bang Bang(You Shot Me Down)’
이 노래는 부부 듀오 소니 앤 셰어(Sonny & Cher)의 소니 보노(Sonny Bono)가 작곡하고 쉐어의 두 번째 앨범 <The Sonny Side of Cher>(1966)에 수록되어 빌보드 차트 2위, 영국 싱글 차트 3위에 오른 곡이다. 같은 해에 프랭크 시나트라의 맏딸 낸시 시나트라가 두 번째 앨범 <How Does That Grab You?>(1966)에 리메이크하였는데, 타란티노 감독이 네 번째 성공작 <킬빌>(2003)의 오프닝 크레딧에 채택하면서 리메이크곡이 원곡 대신 인기를 얻게 되었다. 원래 남녀 간의 에로틱한 의미의 은유적 가사를, 타란티노 감독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결혼식 장면에서 신부(우마 서먼)가 동료 암살자들에게 총격을 당하는 장면에 삽입하였다. 이 곡은 그 후 2014년에 레이디 가가, 2017년에는 두아 리파(Dua Lipa)가 레퍼토리로 선곡하면서 꾸준히 세간에 오르내리는 곡이 되었다.
Dave Dee, Dozy, Beaky, Mick & Tich ‘Hold Tight’(1966)
이들은 1964년 영국 솔스베리에서 결성된 5인조 밴드로, 각자의 예명을 나열한 긴 밴드 이름과 엉뚱한 복장, 그리고 튀는 행동으로 유명했다. 이들의 데뷔 음반(1966)에 실린 싱글 ‘Hold Tight’는 영국에서 4위까지 올랐고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인기를 끌었으나, 미국에서는 차트에 올라가는데 실패했다. 타란티노 감독의 대표적 B급 감성의 영화 <데쓰 프루프>(Grindhouse: Death Proof, 2007)>에서 라디오 DJ 정글 줄리아(시드니 타밀리아 포이티에)가 친구들과 드라이브 중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신청하는 곡으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차 안에서 흥겹게 춤추던 그들은 스턴트맨 마이크(커트 러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 곡은 특히 유럽의 축구 팬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영국이나 스페인, 이탈리아, 남미 등에서 리메이크되어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