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기타리스트 제프 벡(Jeff Beck)이 지난 1월 10일 영국의 한 병원에서 뇌수막염으로 78세의 생을 마쳤다. 록 팬들이 통칭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부르던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가 모두 1960년대 활동하던 영국 밴드 야드버즈(Yardbirds) 출신이며, 이들이 여기서 본격적으로 뮤지션 경력을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제프 벡은 야드버즈 탈퇴 후 보컬리스트 로드 스튜어트 등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하여 자신의 음악을 펼쳤고, 40여 년의 솔로 활동 중 20여 장의 앨범을 내고 그래미를 8회 수상했다. 블루스 음악의 에릭 클랩튼, 록 음악의 지미 페이지에 필적할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그는 록과 블루스를 넘어서 재즈 퓨전과 헤비메탈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악기의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가디언즈 추모 영상 <A Look Back at the Life of Legendary Guitarist Jeff Beck>

 

야드버즈 시절의 제프 벡

세계 3대 록 기타리스트로 불린 세 사람이 모두 야드버즈(Yardbirds, 1963~1968)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 밴드가 브리티시 록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말해준다. 야드버즈가 블루스 음악에서 벗어나 점차 상업성을 지향하자 에릭 클랩튼은 탈퇴하면서 후임으로 지미 페이지를 추천했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았고 선뜻 내키지 않았던 지미 페이지는 오랜 친구였던 제프 벡을 대신 추천했고, 결국 제프 벡이 합류하게 되었다. 그가 밴드에 머물던 20개월 동안 대부분 인기 곡이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이루었고 제프 벡의 명성도 높아졌다. 세션 베이시스트로 일시 조인했던 지미 페이지가 눌러 앉으면서, 야드버즈는 한때 두 사람의 리드 기타리스트가 공존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순회공연 중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화를 참지 못해 말썽을 빚은 제프 벡의 개인적인 문제가 불거지자, 야드버즈는 그를 중도에 그만두게 했다.

영화 <욕망>(Blow-up, 1966)의 록 클럽 신에 출연한 야드버즈. 기타를 부수는 멤버가 제프 벡이다.

 

제프 벡의 솔로 활동

야드버즈에서 나온 제프 벡은,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스티비 원더, 얀 해머, 브라이언 윌슨(비치 보이즈), 론 우드(롤링 스톤스) 등 다양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실험적인 솔로 활동을 계속했다. 자신의 단독 이름이나 제프 벡 그룹(Jeff Beck Group), 또는 슈퍼그룹 형식으로 20여 장의 음반을 냈으며, 그래미 록 연주부문에서 8회 수상하였다. 데뷔 앨범 <Truth>(1968), <Blow by Blow>(1974), <Wired>(1976)는 앨범 차트이 10위권에 올랐으나, 상업적인 흥행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블루스, 록, 재즈, 퓨전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를 통해 일렉트로닉 기타의 저변을 넓힌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다. 2016년에는 로커 출신의 인기배우 조니 뎁과 20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친해지면서 그와 함께 앨범 <18>(2022)을 냈는데, 결과적으로 그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앨범 제목은, 두 사람 모두 다시 18세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제프 벡의 18번째 정규 앨범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제프 벡과 조니 뎁 ‘This Is a Song for Miss Hedy Lamarr’

 

제프 벡의 78년 생애

런던 태생인 제프 벡은 10대 시절부터 기타를 배웠고 손수 기타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윔블던 예술학교에 진학해서는 밴드를 조직하여 클럽에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으며, 21세였던 1965년에 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야드버즈에 조인하여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솔로 활동 중 냈던 앨범 <Blow by Blow>(1975)는 연주 곡만으로 구성된 독특한 앨범으로, 그의 기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명반으로 약 100만 장을 판매하였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거침없는 성격으로 약속에 늦거나 쉽게 화를 냈고, 일에서는 완벽을 추구하여 주위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미국 순회공연 도중에 야드버즈에서 일방적으로 쫓겨났고, 제프 벡 그룹 시절에도 미국 공연 중 멤버들과의 불화가 불거져 팀이 해체되는 사단이 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그의 성격과 연주가 성숙해지고 동료들과 신뢰를 구축하면서, 꾸준히 앨범을 내며 그래미 8회 수상의 업적을 쌓았다. 지난해에는 스무 살가량 어린 조니 뎁과 절친이 되면서 듀엣 앨범을 내고 함께 무대에 올랐으나, 세균성 뇌수막염에 걸려 런던의 병원에서 78년의 생을 마감하였다.

앨범 <Blow by Blow>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스티비 원더 작곡으로, 최고의 기타 솔로 순위에 오른 명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