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입맛, 지식, 관심사, 콤플렉스, 가정사, 좋아하는 여행지, 싫어하는 사람의 유형, 버킷리스트, 주말에 일어나는 시간.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모두 똑같은 대답을 내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백이면 백 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을까? 인간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너무 복잡해서 우주의 이름을 따 소우주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우주라고 불릴 만큼 우리는 무한한가? 우리는 어떻게 다를까? 왜 그렇게 다를까? 인간이라는 작은 우주를 들여다보는 건 흥미로울까? 인간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탐구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의 주인공인 Y대 경제학과 ‘유교수’.

이미지 출처 – 학산문화사 홈페이지

“y 대학 경제학부 교수 유택. 길을 갈 때는 반드시 우측통행, 횡단보도가 아니면 건너지 않는다. 싸고 맛있는 전갱이 한 마리를 살 수 있다면, 다리가 퉁퉁 붓도록 걸어 다닌다. 이 책은 도로교통법을 준수하고 자유경제법칙에 충실한 어느 학자의 극명하고 유쾌한 기록이다.”

매권 첫 장에 나오는 설명이다. 유교수는 고지식하다. 매일 아침 5시 30분 기상, 오후 9시 취침을 고집하고, 언제나 양복만 입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도로교통법을 줄줄 외우고 사회의 규범, 자신만의 규칙을 준수한다. 아침 식사를 하며 본 tv에서 아나운서가 사용한 중의적 표현에 대해서도 오만가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 tv 뉴스를 보다 보니 아나운서가 이상한 말을 하더군. 개 산책을 하고 있던 사람이 살해당했다고 하던데 사람이 과연 개처럼 산책할 수 있는 건가? … 나는 지금 문법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걸세. tv 뉴스에서 그런 실수를 저질러도 되는건지. 아니면 그런 표현이 이미 관용어처럼 쓰이는 건지.”

그는 고지식하지만 상대를 부정하지 않으며, 똑똑하지만 누군가를 낮춰보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그에게 인간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개체이며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학자, 교수로서 본질을 꿰뚫고자 인간을 대하는 그는 열린 태도로 다른 사람을 알아가고 존중한다.

옴니버스로 구성돼 에피소드마다 등장인물이 조금씩 다르다. 유교수를 시기질투하는 동료 교수, 어렸을 적 동창, 값비싼 고서를 훔치기 위해 침입한 도둑, 조폭 생활을 청산한 전 조폭 두목이자 유교수와 장기를 두는 이웃, 젊었을 적 즐겨가던 서점 주인 등 유교수와 연이 닿았던 이들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중 세 가지 에피소드를 꼽아봤다.

 

제 100화 오로라 공주의 잠 (11권 42~45쪽)

멋있는 우리 할아버지를 최고로 생각하는 사랑스러운 손녀(‘하나코’)와의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그중 유치원생인 하나코가 죽음을 접하는 일화가 있다. 할아버지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은 하나코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나선다. 도착한 곳은 누군가의 장례식, 엄숙하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낯선 하나코는 도망을 치고 숨는다. 유족에게 인사를 하던 유교수는 도망치는 하나코에 대해 사죄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코는 아직 죽음이라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코는 사모님께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해서도 영원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일로 전 하나코의 꿈을 깨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은 죽기 때문에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생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하나코도 깨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130화 벚나무를 만날 때 (16권 66~69쪽)

그렇다고 유교수는 인생에 대한 모든 정답을 알고 있다거나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 안는 현자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도 난제를 만나 고민하고, 사람을 싫어하기도 한다. 유교수의 학생 시절 상극이었던 ‘쯔쯔미’ 교수가 있다. 이런 식이다. 열심히 배우고 신나게 놀면서 몸을 망친 다음 수렁에서 헤어나오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쓰라는 쯔쯔미 교수. 그건 관능적인 문장을 쓸 수 있는 필수 요소가 아니라고, 오히려 칸트와 같이 절제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이도 훌륭한 문장을 쓸 수 있다고 의견을 말하는 학생이었던 유교수, 유택. 그를 이해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찾아갔지만, 오히려 서로의 간극을 확인했고, 유택은 ‘전 도저히 교수님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강의시간에 나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하고 교수에게 등을 돌렸다. 훗날 유교수는 그를 떠올리며 아내에게 묻는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없었소?”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어요! 당연히 있었죠.”

그럼 싫다고 생각한 적은?”

물론 있어요.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다간 몸이 남아나질 않을 거예요.”

세상을 살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인간이란 원래 마음도 생각도 바뀌게 마련인 생물인데.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싫더라도, 다음에 만났을 때 좋았다면, 그런 건 쉽게 잊어버려요, 전.”

사실 쯔쯔미 교수는 유교수와의 일대일 대화를 통해 오히려 영감을 받아, 유택 같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책을 하나 썼다. 유택 같은 똑똑하고 빈틈없는 남자가 벚나무 아래 묻히는 이야기로, 책 제목은 벚나무. 아내와의 대화를 마친 유교수는 그 책을 읽으며 쯔쯔미 교수를 다시 만났고, 마침내 그를 이해하게 된다. 이 에피소드의 제목 ‘벚나무를 만날 때’는 이렇게 풀어진다.

 

제133화 북극성을 찾아서 (16권 164~165쪽)

유교수에게는 또다른 손자가 있다. 별자리 책을 보며 큰곰자리는 왜 안아주지도 않고 새끼 곰 근처를 맴돌고만 있는지 궁금해하는 엉뚱한 아이, ‘마모루’. 유교수의 딸이자 마모루의 엄마는 그런 아이가 엉뚱한 것만 관심 있어 하고, 시험엔 0점을 받아오는 것이 걱정이다. 그런 아이에게서 별자리 책을 빼앗자 아이는 사라졌고, 끝내 옥상에서 발견된다. 이부자리를 만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신나게 별자리 이름을 외우고 있는 아이. 아이를 찾아 함께 곁에서 별자리를 찾아주는 자신의 딸에게 유교수는 말한다.

“하늘을 바라보면 지구가 얼마나 작고, 또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한점 티끌에도 못 미치는 존재인가 알 수 있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크기일 뿐. 인간의 내면에도 무한대의 우주가 펼쳐져 있단다. 우린 과연 그 우주를 얼마나 크게 펼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인가에 흥미를 갖는 게 중요한 거야. 괜한 허세로 들릴지 모르지만 난 생각한단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것을 공부하는 것, 빨리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무언가에 깊은 관심을 갖고 또 그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모든 이미지는 출판사의 허가 하에 직접 촬영했습니다.

 

Writer

좋아하는 것들을 쓴다. 좋아하는 이유를 열렬히 말하며 함께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