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패니즈 브랙퍼스트(Japanese Breakfast)로 알려진 뮤지션 미셸 자우어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외부인으로 성장한 이야기를 <H마트에서 울다>에 담았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이자 버락 오바마 추천 도서가 되었다. 이는 2021년 각종 시상식을 휩쓴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와도 닮아있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감독이 들려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는 미국 사회에서 큰 울림과 공감을 일으켰다. 그러는가 하면 재미교포 작가의 재일교포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특이한 현상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민진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인 <파친코>의 흥행이었다. 지금 이들의 이야기에 세계가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미셸 자우너 <H 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후, 한국뿐 아니라 독일, 브라질, 대만, 영국 등에서 번역되었다.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는 25살 무렵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한국인 정체성의 조각을 ‘H 마트’에서 찾아 헤맨다. 작가는 집밥부터 청소하는 방식, 외모를 가꾸는 노력, 교육에 대한 가치관까지 무엇 하나 미국답지 않은 한국인 엄마를 추억한다, 25년간 애증의 역사로 책 한 권을 꽉 채우는 방식으로. 딸이 음악을 업으로 선택하면서 극에 달한 모녀 갈등은 세대 차이와 문화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되지만, 병으로 고통받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마음에 담고 한시라도 더 길게 곁에 붙잡아 두고자 애쓰는 모습은 전 세계를 관통하는 가족애에 한없이 가깝다.

재패니스 브랙퍼스트 1집 수록곡 ‘Everybody Wants To Love You’ 뮤직비디오

작가의 글만이 아니라 본업인 음악에서도 그 애정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재패니즈 브랙퍼스트로서의 첫 앨범 <Psychopomp> 커버를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으로 장식하고 그 안에 한국의 정서와 미국 문화를 나란히 녹이고자 한 것이다. 2022년,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작가로서 영향력을 인정받아 타임지 올해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미셸 자우너는 그만의 독특한 성취를 이루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영감의 원천에는 어머니가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단정한 외모와 좋은 학력을 향한 열망과 음식으로 보여주는 애정까지, 한국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양육방식을 혼재된 정체성을 지닌 아티스트의 눈으로 재해석한 책은 당연하게 지나쳤던 부분을 새롭게 짚어낸다.

 

정이삭 <미나리>

영화의 메세지를 시각화한 다양한 <미나리> 포스터

2021년, 각종 세계 영화 시상식을 휩쓴 영화 미나리는 정작 한국에서 개봉하자 뜨뜻미지근한 관객들 반응과 마주했다. 미국에 정착한 한국계 가족의 이야기가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아 국내에서도 이슈가 되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생각보다 잔잔한 이민자의 일상이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후기가 속속 등장했다. 아메리칸 드림과 경제적 어려움, 언어적 장벽, 가족 내에 합의되지 못한 문화적 이해 등은 아직 단일민족에 가까운 한국에서 크게 공감받기 힘들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반면에 절대 다수의 이민자 가족이 사는 미국 사회에서는 <미나리> 속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가 유년의 기억을 건드리는 코드가 되었다. 또한 섬세하게 담은 1980년대의 한국 가족의 생활 형태는 오늘날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화려한 한국 콘텐츠와 색다르게 고유하고 진솔하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제작 비하인드 인터뷰

영어로 대본을 쓰는 것이 편안한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한국어로 영화를 찍는 것은 큰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예산으로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가족같이 합숙하는 제작 과정은 이민이라는 큰 변화를 함께 소화하며 가족이 유대를 쌓는 것과 닮았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그 특유의 향기를 뿜어내는 미나리처럼 끊임없이 도전을 통해 그만의 경험과 시선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다음이 궁금해진다.

 

이민진, <파친코>

왼쪽은 미국에서 출간된 <파친코> 원작, 오른쪽은 애플TV에서 영상화한 <파친코> 포스터

애플 티비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파친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800억이라는 제작비와 일본 시장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만한 주제를 포함한 근현대 극임에도 불구하고, 4세대에 걸쳐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는 대서사시는 경제 혹은 정치적 상황에 가려졌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한 선자의 굴곡진 인생은 ‘자이니치’(재일교포)를 바라보는 차가운 멸시로 한없이 고되다. 또한 선자의 두 아들은 일본 이름을 가지고 일본에서 살아가지만 날 때부터 다른 출발선을 가진 듯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느낀다. 이에 노아와 모자수는 각각 다른 대응으로 돌파하고자 한다.

재미교포인 작가가 재일교포 가족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이민진 작가의 대학 시절 자이니치를 접한 선교사를 통해 재일교포에 대해 전해 듣고 시작된 호기심의 결실이다. 일본계 미국인 남편의 직업으로 인해 실제로 일본에서 머물며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자이니치를 인터뷰한 것 역시 <파친코>를 완성하기 위한 고증이 되었다. 같은 이민자의 신분이지만 다른 환경에 놓인 그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본 작가의 어떤 결연한 마음이 <파친코>에 담겨있는 듯하다.

이민진의 한국인에 대한 통찰을 담은 연설

이들은 모두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명을 탓하기보다, 내면의 아픔이나 개인의 기억을 창작이라는 방식으로 돌파한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미국 콘텐츠에서 대체로 약자 혹은 괴짜로 묘사되었던 아시안 캐릭터로 뭉뚱그려졌던 한국인 정체성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는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하고 싶다. 아시안 혐오 범죄(Asian Hate) 문제에는 몰이해와 무조건적인 혐오가 깔려있다. 교육열로 이루어낸 이민 2세들의 사회적 지위 상승뿐만이 아니라, 선입견을 이겨내는 혹독한 노력으로 탄생한 창작물이 더해져 이런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더욱 입체적으로 “다름”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K-팝, K-드라마도 좋지만, 현지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진한 애증과 유착된 관계에서 오는 한국 가족 특유의 문화를 그들만의 문법으로 풀어 더 많은 공감을 끌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메인 이미지 © 미셸 자우어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