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웨이브 밴드 ‘카자구구’(Kajagoogoo) 시절의 리말(가운데)

1980년대에 등장한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카자구구’(Kajagoogoo)나 리드 싱어 ‘리말’(Limahl)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그가 노래한 히트곡 ‘Too Shy’(1983)나 ‘The Never-Ending Story’(1984)를 기억하는 팝송 팬들은 제법 많다. 두 곡은 당시 전성기였던 신스팝(Synth Pop)이나 테크노 팝(Techno Pop) 대표곡으로 자주 거론되었지만, 세월이 흘러 자연스레 잊힌 그의 노래가 최근 인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 Things)나 <American Horror Story>에 다시 소환되었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들을 찾는 조회 수는 몇 배나 뛰어올라 월 200만에 이르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동안 1980년대 향수에 젖은 올드 팬 대상의 공연이나 이벤트에 주로 초청되던 리말은 이에 고무되어 얼마 전 8년 만에 싱글 ‘Still in Love’(2020)을 내기도 했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시즌 3(2019)에서 수지와 더스틴이 합창한 ‘The Never-Ending Story’
리말의 오리지널 ‘The Never-Ending Story’ 뮤직비디오(1983)

리말이란 예명은 그의 실제 성 ‘해밀’(Hamill)의 알파벳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영국 북서부 지방에서 본명 크리스 해밀(Chris Hamill)로 자라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귀엽게 생긴 용모를 바탕으로 아역 배우로 단역을 맡으며 연예계로 진출했다. 그러다 잘 생긴 용모의 밴드 프론트맨을 찾던 뉴웨이브 밴드 카자구구의 네 번째 멤버로 합류하면서 음악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이들은 듀란듀란(Duran Duran)의 키보디스트 닉 로즈(Nick Rhodes)가 프로듀스한 데뷔곡 ‘Too Shy’가 영국에서 차트 1위, 미국에서 빌보드 5위에 오르며 단숨에 스타 밴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인기 밴드로 도약한 지 얼마 안 된 1983년 중반, 남은 네 명의 멤버들이 리말을 밴드에서 해고하면서 밴드는 내분에 휩싸인 채 급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들은 2003년에 재결합하기도 했지만 한번 식어버린 인기와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카자구구(Kajagoogoo)의 인기곡 ‘Too Shy’ 뮤직비디오

리말이 밴드에서 쫓겨난 직후, 화제의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1984) 타이틀곡을 부르며 잠시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기대했다. 영화음악의 거장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가 작곡한 이 곡은 영국 차트 4위, 미국 빌보드 17위에 오르며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리바이벌한 신스팝 명곡이 되었다. 노르웨이, 스웨덴에서는 차트 수위에,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에서는 2위에 오르며, 유럽 전역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그후 리말의 솔로 음반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한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으나, ‘Too Shy’와 ‘The Never-Ending Story’ 두 곡이 컬트 수준의 인기곡 반열에 오르며 그를 게스트로 초청하는 레트로 쇼나 공연 기회, 그리고 저작권 수입은 꾸준히 들어왔다.

영국의 인기 오디션 TV 프로그램 <X Factor>에 초청된 리말(2020)

그는 ‘Too Shy’와 ‘The Never-Ending Story’ 두 곡이 평생 지급되는 연금과도 같다며 안도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언론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에 공식적인 감사를 표한 적도 있다. ‘Too Shy’가 넷플릭스의 <Black Mirror: Bandersnatch>(2018)에 삽입된 데 이어, ‘Never-Ending Story’가 <기묘한 이야기> 시즌 3(2019)에 등장하면서 스트리밍 조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고무된 그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미뤄왔던 신곡 ‘Still in Love’ 출반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는 공적으로 알려진 게이이며, 영국에 주택 두 채를 소유하며 동반자와 함께 살고 있다. 말하자면 투 히트 원더(Two Hit Wonder)라 할 수 있다.

리말의 최신 싱글 ‘Still in Love’(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