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로 사회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젠 더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기준과 함께 살아가는 '뉴노멀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상황 속에 특히 주목받으며 역주행한 영화가 있는데, 바로 <컨테이젼>(2011)이다. <컨테이젼>의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쉬지 않고 영화와 함께 해왔다. 연출뿐만 아니라 촬영과 편집, 각본을 직접 맡기도 하는 멀티맨이자, 자신의 영화를 연출하지 않을 때도 다른 감독의 작품에 기획과 제작으로 참여하며 쉼 없이 달려온 영화인이다. <컨테이젼>의 역주행과 상관없이 스티븐 소더버그는 여전히 영화 속에서 달리고 있다. 삶 전체가 영화인 것처럼 꾸준하게 달려온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을 살펴보자.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이미지 출처 – ‘imdb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앤’(앤디 맥도웰)은 변호사인 남편 ‘존’(피터 갤러거)은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으로 생활 중인 부부이다. 그러나 앤은 삶에서 느끼는 회의감을 정신과 의사에게 토로하고, 존은 앤의 동생 ‘신시아’(로라 산 지아코모)와 불륜 중이다. 존은 과거에 자신과 친했던 ‘그레이엄’(제임스 스페이더)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앤은 그레이엄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앤은 그레이엄이 새로 구한 집에 갔다가, 그레이엄이 모아둔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당시 26세였던 스티븐 소더버그의 최연소 황금종려상 수상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스티븐 소더버그뿐만 아니라 영화에 출연한 제임스 스페이더, 앤디 맥도웰, 피터 갤러거, 로라 산 지아코모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배우들의 감정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트레일러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라는 제목에 담긴 세 단어는 영화 속 인물들을 설명하는 단어다. 존과 신시아의 섹스에는 사랑이 있을지, 거짓말에 중독된 이가 진심을 말하는 게 가능한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비디오테이프에 진실을 담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 세 단어 중 무엇이 자신을 잘 설명하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까?

 

<에린 브로코비치>

‘에린 브로코비치’(줄리아 로버츠)는 세 아이를 홀로 키우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두 번의 이혼과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단절된 경력 때문에 에린을 받아주는 회사는 없다. 에린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때 자신만 믿으라고 했으나 패배한 변호사 ‘에드 마스리’(알버트 피니)의 사무실에서, 절박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며 겨우 자리를 얻는다. 사무실의 모든 이들이 에린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가운데, 에린은 우연히 정리하던 서류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직접 이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2001년에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잊지 못할 순간이다. 자신이 연출한 <에린 브로코비치>(2000)와 <트래픽>(2000) 두 편이 모두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결국 <트래픽>으로 감독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리아 로버츠도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스티븐 소더버그와 기쁨을 나눴다.

<에린 브로코비치> 트레일러 

<에린 브로코비치>가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받은 건, 누가 봐도 질 것 같은 싸움에 나선 에린 브로코비치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실화이기 때문일 거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변호사도 아니고 말도 거칠게 하지만, 주민들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에린 브로코비치는 지금도 싸우는 중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숫자로만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지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측정 불가한 지표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바꿔놓은 에린 브로코비치처럼.

 

<오션스 일레븐>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은 교도소에서 출감하자마자 카지노를 털 생각부터 한다. ‘러스티’(브래드 피트)를 필두로 ‘라이너스’(맷 데이먼), ‘배셔’(돈 치들), ‘루벤’(엘리어트 굴드) 등 11명이 모이고, 이들은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가 운영하는 카지노를 털기로 한다. 러스티는 작전을 준비하면서 테리의 애인이 ‘테스’(줄리아 로버츠)라는 걸 알고 놀라는데, 테스는 대니 오션의 전처이기 때문이다. 대니와 테스의 관계에서부터 카지노의 삼엄한 보안까지, 이들의 계획은 실행에 앞서 많은 장애물을 앞에 두고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2001)은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1960)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에 프랭크 시내트라, 딘 마틴 등 스타들이 출연한 것처럼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에도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 등 많은 스타가 출연한다. <오션스 일레븐>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며 스티븐 소더버그와 출연진이 함께 <오션스 트웰브>(2004), <오션스 13>(2007)까지 후속작을 만들며 성공적인 시리즈가 되었다.

<오션스 일레븐> 트레일러 

<오션스 일레븐>이 사랑받는 시리즈가 된 이유에는 화려한 캐스팅도 있겠지만, 연출과 촬영을 함께 맡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공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면면이 화려한 배우들로 내내 화려함만 보여줬다면 오히려 사랑받는 시리즈가 되지 못했을 텐데, 스티븐 소더버그는 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이 원하는 지점 중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균형을 맞춘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다작을 하면서도 좋은 작품을 꾸준하게 만들 수 있던 이유는 탁월한 균형감각 때문일 거다.

 

<컨테이젼>

‘엠호프’(맷 데이먼)는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아내 ‘베스’(기네스 펠트로)를 잃고, 얼마 뒤 아들까지 잃는다.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세상을 떠난 둘처럼, 전 세계에 같은 증상으로 죽는 이들이 늘어난다. 질병통제센터의 ‘치버’(로렌스 피시번)는 ‘에린 미어스’(케이트 윈슬렛)를 감염 현장으로 파견하고, 세계보건기구의 ‘오랑테스’(마리옹 꼬띠아르)는 원인을 찾아 홍콩으로 간다. 사망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프리랜서 기자 ‘앨런 크럼위드’(주드 로)는 전염병과 관련된 음모론을 블로그에 올린다.

<컨테이젼>(2011)은 <오션스 일레븐>(2001) 못지않은 스타캐스팅을 자랑하지만 캐릭터 대신 ‘전염병’이라는 현상에 집중한다. 전염병으로 인해 단절된 세상을 반영하듯 인물들은 좀처럼 닿지 못한다.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기보다, 감염자가 버스 손잡이를 잡는 등 균이 옮길 수 있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컨테이젼> 트레일러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꾼 후로 <컨테이젼>이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역주행한 이유는 전염병 이후의 세상을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일 거다. 뉴노멀 시대의 관객들에게 <컨테이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미래가 아니라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부디 머지않은 시간 뒤에 <컨테이젼> 속 혼란한 광경이 현실이 아닌 영화 속 이야기이자, 코로나19라는 현실이 과거의 사건이 되기를 바라게 된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