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y Moore in Concert(2005)

그가 하드록 밴드의 기타리스트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낸 첫 앨범 <Back on Street>(1978)는 결과가 좋았다. 싱글 ‘Parisienne Walkways’가 영국 싱글 차트 10위권에 오르며 성공적인 새 출발을 알린 것. 그러나 이후에 낸 음반들은 판매 실적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는 잊혀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동료들과 상의한 끝에, 게리 무어는 어릴 적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블루스 음악으로 돌아오기로 하고, 이를 신작 <Still Got the Blues>(1990)에 담았다. 앨버트 킹, 앨버트 콜린스 같은 미국 블루스 음악의 대가들이 앨범 작업에 참여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타이틀 곡은 블루스록 장르를 대표하는 그의 시그니처 송이 되었다.

Gary Moore ‘Still Got the Blues’(1997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Belfast)에서 나고 자란 그는 10대부터 지역 언더신의 기타 신동으로 유명했다. 활동 무대를 더블린으로 옮기면서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창단 멤버 피터 그린(Peter Green)을 알게 되어 자신의 멘토로 삼았고, 스키드 로(Skid Row), 씬 리지(Thin Lizzy), 콜로세움 II 같은 유명 록밴드의 기타리스트로 10여 년 활동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앨버트 킹,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 같은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씬 리지에서는 하드록을, 콜로세움 II에서는 프로그레시브록 스타일의 연주를 했다.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출중한 기타 실력에 싱어송라이터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Gary Moore의 UK Top 10 히트곡 ‘Parisienne Walkways’

그는 <Still Got the Blues>의 성공 후 완전히 블루스 연주 스타일로 돌아왔다. 다음 앨범 <After Hours>(1992)에는 전설적인 블루스맨 B.B. King이 함께 하기도 했고, 전설의 블루스 밴드 크림(Cream)의 멤버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BBM(Bruce, Baker & Moore)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는 16세에 뮤지션 세계로 들어온 후 40여 년의 현역 시절 동안 잠시 쉴 틈도 없을 만큼 정열적인 활동을 벌였다. 록밴드의 기타리스트와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낸 음반도 22장이나 되었다. 그러던 그가 2011년 58세의 나이에 스페인 휴양지의 호텔에서 자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Ballads & Blues 1982~1994>에 수록한 록 발라드 ‘With Love’

그의 고향 벨파스트는 인구 30만이 안되는 작은 도시이나 타이타닉호가 건조된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 벨파스트에 사는 게리 무어의 친지와 팬들을 중심으로 그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Gary Moore Belfast Statue Project’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각종 콘서트를 열거나 기념품을 팔아 건립 자금을 모으고 있다. 동상 건립을 위한 필수 예산은 약 15만 파운드(약 2억 3천만원) 라고 한다. 머지않아 벨파스트에는 타이타닉호에 이어 기타를 든 그의 모습이 또 하나의 레전드로 남게 될 것이다.

 

게리 무어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