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떠올려 보자. 모래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그 어떤 이도 쉽게 사막에 정착하지 못한다. 삶의 배경이 사막이라면, 삶의 많은 장면이 황량함으로만 가득할 것 같다. 사막을 직접 다녀오지 않은 이들에게 사막의 이미지는 수많은 매체에서 비롯된다. 특히 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장면으로 사막을 떠올릴 때가 많다. 

영화감독들은 사막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 때로는 사막이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된다. 사막 배경의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 목표를 가지고 사막을 걷고 있다. 그들의 목표가 닿을 수 없는 신기루가 될지, 갈증을 채워줄 오아시스가 될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사막에서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사막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매력적인 영화들을 살펴보자.

 

데이빗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는 사막

영국군 소속 장교 '로렌스'(피터 오툴)는 전쟁으로 인해 아랍 지역으로 파견된다. 로렌스는 '알리'(오마 샤리프), '오다 아부 타이'(안소니 퀸)와 손을 잡는 등, 다양한 전략을 통해 승리를 얻어내며 아랍인들의 신뢰를 얻는다. 그러나 아랍인들의 완전한 단결을 바라기는 쉽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로렌스는 스스로 피폐해지는 걸 느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는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고, 1,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서 그의 몇 배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리며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했다. 6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지금 봐도 경이로울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작품으로, 3시간 30분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지는 사막 위에서의 고뇌와 전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결국 사막임을 보여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트레일러 

로렌스는 푸른 눈의 이방인임에도 결국 아랍인들에게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의 소속은 영국군이므로 그들과 완전히 섞일 수는 없다. 영국군의 규율 안에 있을 때보다 아랍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전략을 뽐낼 때 기쁘지만, 결국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 로렌스가 사막을 넘는 고된 순간들은 경계에 속한 이방인이 겪는 아픔처럼 보인다. 경계에 선 이방인으로서 두 세계를 오가는 마음이란, 마치 사막을 횡단하는 것처럼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테시가하라 히로시의 <모래의 여자> 삶의 굴레를 닮은 사막

곤충학자이자 교사인 남자(오카다 에이지)는 곤충채집을 위해 사막에 간다. 하루 묵을 곳을 찾던 남자는 사막에서 만난 이들의 추천으로 사막의 큰 구멍 밑에 자리 잡은 집에서 묵는다. 남편과 자식을 잃고 혼자 지내는 여자(키시다 쿄코)가 사는 집에서 하루를 지낸 남자는 다음날 지상으로 올라갈 사다리가 없어진 걸 발견한다. 꼼짝없이 발이 묶인 남자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자와 함께 지내며 탈출을 꿈꾼다.

<모래의 여자>(1964)는 아베 코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아베 코보가 직접 각본에도 참여했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흑백영화로, 촬영과 음악 등을 통해 모래의 질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실존에 대한 문제를 사막을 통해 풀어내는 작품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사막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굴레를 연상시킨다.

<모래의 여자> 트레일러

남자는 여자에게 왜 탈출하지 않냐고 묻는다. 여자는 모래가 아니면 아무도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을 거라고 답한다. 넓은 세상에 있던 남자에게 사막 속 집은 답답하지만, 여자에게는 늘 있던 집이 최선으로 느껴진다. 사람의 적응력이 무서운 건 불행에도 금세 적응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곤충을 찾아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던 남자는, 사막 속 이름 없는 모래처럼 하루하루를 견딘다. 당장 벗어날 수 없는 불행이라면 희망을 버리는 게 최선일까. 남자가 사막에서 하는 고민은 불행을 마주한 적 있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이더스> 모험을 꿈꾸게 되는 사막

고고학자이자 모험가인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는 정보국 사람들의 의뢰로 사연 있는 성궤를 찾아 떠난다. 인디아나 존스는 네팔에서 옛 연인 '마리온'(카렌 알렌)과 합류한 뒤, 함께 이집트 카이로로 간다. 이미 카이로에서는 인디아나 존스의 라이벌 '벨로크'(폴 프리먼)가 나치와 함께 성궤를 찾느라 분주하다. 인디아나 존스에 대한 견제가 심해가는 가운데, 인디아나 존스는 단서를 찾아 나간다.

<레이더스>(1981)는 가장 성공적인 프렌차이즈 시리즈 중 하나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 시각효과상, 편집상 등 기술 부문에서 인정을 받았고, 시리즈도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2021년에 <인디아나 존스 5>가 개봉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연출과 주연은 <레이더스>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스필버그와 해리슨 포드가 맡을 예정이다.

<레이더스> 트레일러

인디아나 존스와 '벨로크', 두 고고학자는 사막에서 성궤 발굴 작업에 열중한다. 고고학자로서 세상이 밝혀내진 못한 미지의 세계를 발굴하고 싶은 건 당연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성궤를 찾는 과정을 보며, 일상 속에서 사라져가는 모험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막이나 정글이 아니어도, 모험은 그 어디를 배경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가 사랑받는 건 모험이 힘든 시대에 모험을 꿈꾸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무한을 향해 질주하는 사막

자원이 고갈된 미래, 독재자 '임모탄 조'(휴 키스-번)는 물과 기름을 독점한 채 폭정을 일삼는다. 사막을 떠돌던 '맥스'(톰 하디)는 임모탄의 부하들에게 납치되어 수혈 용도의 노예 신세가 된다. 임모탄 수하의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임모탄의 여인들을 데리고 탈출한다. '눅스'(니콜라스 홀트)를 비롯한 임모탄의 부하들은 퓨리오사를 추적하고, 맥스도 눅스에게 피를 수혈하며 함께 끌려간다.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시리즈는 멜 깁슨 주연으로, 80년대에 세 편이 제작된 성공적인 시리즈다. 조지 밀러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매드맥스 시리즈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영화개봉 당시에 70세였던 조지 밀러 감독은 관객들의 찬사와 함께 각종 비평가 협회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트레일러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황폐한 세상에서 영웅의 등장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려는 인물들의 성향이다. 세상이 바뀌길 기다리느니 자신이 먼저 움직이고, 체념보다는 전진을 택한다. 덕분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내내 달린다. 그 끝이 무한이라면 무한을 향해 가겠다는 듯.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