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와 작가 부모 사이에 6남매 맏이로 태어난 랄프 파인즈는 왕립 연극학교와 로얄 세익스피어 극단에서 활동을 시작한 정통 배우다. TV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0세에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 역으로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다. 그 후로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헝가리 백작 ‘알마시’ 역, <쉰들러 리스트>의 잔인한 나치장교 ‘아몬 괴트’ 역,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 역 등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비교적 최근에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무슈 귀스타브’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모습과 상처주고 괴롭히는 잔인한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그는 눈빛 연기만으로도 많은 것을 얘기할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잉글리시 페이션트>(1996)

친구의 부인을 사랑하게 된 헝가리 백작이자 탐험가 역으로 나온 그는 진정한 사랑의 격정과 희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거의 정상이 아닌 것처럼 상대방에게 몰두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사막동굴 탐험에서 부상을 당한 연인의 구조를 위해 사막을 헤매다, 결국 싸늘한 시신이 된 연인의 모습을 보고 오열하던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연출도 훌륭하며 젊은 시절 줄리엣 비노슈의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쉰들러 리스트>(1993)

유대인 수용소의 나치 소장 ‘아몬 괴트’ 역으로 나온 랄프 파인즈는 역할을 위해 체중을 많이 늘렸다고 한다. 주인공 ‘쉰들러’가 선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그는 반대편에서 악을 상징하는 인물로 나온다. 수용소 내 유대인을 가차 없이 죽이는 잔인하고 악랄한 나치 장교 역을 마치 오랫동안 그 역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처럼 훌륭히 소화하여 그해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른다.

 

<해리 포터> 시리즈

이미지 출처 ‘CBS News

앞서 소설 <해리 포터>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랄프 파인즈는 처음에는 ‘볼드모트’ 역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자녀들이 있는 여동생 ‘마사’가 적극 권하며 역할을 맡게 됐다. 영화에서 볼드모트의 어린 시절 연기는 실제 그의 조카가 맡았다고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랄프 파인즈는 볼드모트 역으로 악인 역할이 너무 알려져 지금껏 해온 역할이 잊혀지는 게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랄프 파인즈의 조카인 히어로 파인즈-티핀이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모습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틸다 스윈튼, 윌렘 데포, 에드워드 노튼, 애드리안 브로디, 벤 킹슬리, 시얼샤 로넌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며 웨스 앤더슨 특유의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너무나 유명한 영화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작품 구상 초기부터 랄프 파인즈를 ‘무슈 구스타프’ 역으로 점 찍어 두었다고 한다. 영화 장면들이 이후 많은 포스터에 등장하여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위 분홍색 호텔의 모습은 실제로는 미니어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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