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작가, 걸리 포토.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너무 잘난 여자 사진가 셋을 말한다.

모니카 모기(Monika Mogi)

▲ <루키> 매거진을 위해 엘레노어 하드윅(Eleanor Hardwick)이 촬영한 모니카 모기

일명 모니모기. 철 지난 일본 아이돌그룹 이름 같은 애칭을 가진 모니카 모기는 이제 막 20대 중반이 된 사진가다. 사진가로서 경력은 이미 10대부터 시작했다. 인터넷에 능통하고 외로운 열다섯 살 모니카 모기는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2000)를 보고 주인공처럼 되길 원했다. 영화처럼 잡지사에 연락해 음악가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 사진을 본 동갑내기 캐나다 사진가 페트라 콜린스(Petra Collins)의 제안으로 여성주의 사진 그룹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첫 상업사진은 아메리칸 어패럴 광고였는데, 주위 친구들과 자신이 피사체가 되었다. 지금은 이런 비슷한 흐름으로 사진가의 수순을 밟는 이들이 늘었지만, 그가 10대의 나이로 발탁되었을 때는 큰 반향이 일었다. 히로믹스가 비슷한 나이에 주위를 천진하게 찍었다면 모니카 모기는 의젓하게 찍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거침없고 꾸밈없는 비 전문모델이자 친구들을 필름카메라로 적나라하게 담았다. 흐릿하게 마구잡이로 찍는 기교는 부리지 않았다. 피사체를 선명하고 강렬하게 담았다. 여전히 그의 사진 속 여자들은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도 어릴 때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을 아름답게 느꼈다고 한다. 아메리칸 어패럴 광고 속에서 접힌 배를 드러내고 가슴 크기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는 자유로운 몸을 보고 직접 찍고 난 후로는 매체에서 지정하지 않는 이상 주변에서 피사체를 찾는다. 그는 특별히 사진을 찍을 때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보는 이들은 모니카 모기의 사진에서 익숙하지 않은 여성의 모습을 발견하고 새긴다. 

▲ 아메리칸 어패럴 광고와 옥외 광고를 찍은 사진

▲ 파르코 백화점의 CM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는 그의 말처럼 어떤 사진은 쇼와 시대의 기운이 감돈다

▲ 무라카미 류의 소설 <LOVE & POP>을 모티프로 작업한 사진 시리즈

▲ 1992년생인 그는 태어나자마자 사라져버린 90년대 무드를 찍는 것에 신기할 정도로 능통하다. 모델은 미즈하라 키코

 

한나 문(Hanna Moon)

▲ 2호 표지에서 오노 요코 역할을 한 건 작가 자신이다

한나 문은 <A NICE MAGAZINE>의 사진가이자 발행인이다. 대학 졸업작품으로 구상한 것을 실제로 출판시장에 내놓았다. 이제 2호까지 나온 <A NICE MAGAZINE>은 동시대의 화려한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패션지지만 지금 당장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나 모델이 요란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한나 문과 그의 친구들, 몇 디자이너의 의상이 두서없이 섞여 있다. 패션과 사진, 일상과 비일상이 뒤섞인 모양새다. 확대한 얼굴 사진 위에 텍스트 박스를 마구잡이로 흩어놓은 것과 같이 말이다. 1호에서 한나 문의 화보는 서너 개쯤 된다. 비슷한 얼굴에 비슷한 머리 모양을 한 이화여자대학 졸업생의 사진을 채집한 페이지, 친한 친구들에게 사카이, 꼼 데 가르송 같은 브랜드를 입히고 찍은 패션 화보에 동시에 그의 이름이 올라있다. 비닐봉지를 손에 걸고 커다란 채소를 입에 문 조이스라는 이름의 여성은 누구의 친구인지 모델인지, 뭘 하는 건지 제대로 알 수 없다. 다만 크레딧에 협찬 의상 문구를 보고 그제야 옷을 보여주는 패션화보라고 인식하게 된다. 짧은 머리 여성을 잔뜩 모아놓은 화보도 있다. 손으로 쓸어주고 싶은 귀여운 잔머리, 긴 속눈썹과 대비되는 짧게 깎은 옆머리가 페이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일련의 작업물을 보면 한나 문이 여성, 사진 속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담백하다. 강하고 딱딱하지도 부드럽고 연약하지도 않다. 얼마 전에 나온 2호에는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의 전설적인 사진을 오마주해 표지로 실었다. 어쩜 아무런 긴장감이 안 느껴진다. 정지 화면의 캡처 같다. 이건 칭찬이다. 

▲ <A NICE MAGAZINE> 1호. 나오자마자 <i-D>, <DAZED & CONFUSED> 같은 패션 매거진에서 바쁘게 다뤘다

▲ 한나 문의 친구 조이스.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 포토그라피가 한 데 섞인, <A NICE MAGAZINE>의 슬로건과 들어맞는 사진 한 장

▲ 그 밖의 사진들

 

샌디 킴(Sandy Kim)

▲ 샌디 킴의 사진은 일상과 가깝기 때문에 블로그에 그날의 기록처럼 올라오곤 한다. 요 몇 년간은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블로그에서 가져온 셀프 사진

여성을 모델로 찍는 남자 사진가는 많다. 사진 속에서 은근히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잠자리를 하고 난 직후를 떠올리게 하거나 셔터를 몇 번 누르고 나면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사진들 말이다. 그런 부분에서 여성 사진가들은 억울하다. 사진가 샌디 킴은 10년 전부터 앞뒤 안 가리고 사진을 찍었다. 남자친구의 벗은 몸과 자신의 벗은 몸을 아무렇지 않게. 사랑을 나누고 나서의 결과물까지도 여과 없이 사진으로 담았다. 예쁘게 보이려 결점을 가리고, 심의에 걸릴 만한 것을 거르는 일 따위는 없다. 샌디 킴은 막 20대에 들어섰을 때 사진기를 들고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찍어댔다. 약과 음악, 섹스와 흥분, 쾌락. 빠르게 지나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기를 들었다고 한다. 샌디 킴이 담은 홀딱 벗고 마리화나를 태우는 친구의 모습, 술을 마시고 난 후의 잔재, 금괴처럼 쌓아 올린 빈 담뱃갑은 외면하고 싶은 장면임과 동시에 너무 순진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렇게 솔직한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아직까지 샌디 킴 이외에 보지 못했다. 

▲ 홈페이지에는 성적이고 노골적인 사진만 모은 트리플 엑스 섹션이 있다. 그런데 뭐가 이상한가. 보다 보면 다 너무 당연한 사진들이다. 연인이 샌디 킴에게 보낸 사랑의 문자

▲ 고단한 뉴욕의 삶

▲ 밴드 걸스의 사진을 꾸준히 찍었다. 샌디 킴 사진의 반은 너무나 아름다운 빛을 담고 있다

 

▲ 그 밖의 사진들

 

Writer

매거진 <DAZED & CONFUSED>, <NYLON> 피처 에디터를 거쳐 에어서울 항공 기내지 <YOUR SEOUL>을 만들고 있다. 이상한 만화, 영화, 음악을 좋아하고 가끔 사진을 찍는다. 윗옷을 벗은 여성들을 찍은 음반 겸 사진집 <75A>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박의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