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있다. 홍대 거리 한복판에서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 ‘인디’라는 단어를 당당히 앞에 붙인 만큼, 신선하고도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영화제다.

극영화가 '현실 재현'의 방식을 CG나 화려한 4D 등을 통해 이루고자 했을 때, 다큐멘터리는 그 방식을 스크린의 확장이 아닌 삶의 확장으로 늘려왔다. 시국(時局)의 가장 가까이에서, 가려진 이들의 목소리에 마이크를 쥐여주고자 했던 ‘인디’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영화는 재현된 허구에 실망을 느끼던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곤 했다. 특히 최근 다큐멘터리계에서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3월 21일부터 3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인디다큐페스티발2019에도 의미 있는 여성 감독들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인권의 최전방,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바라본 그들의 시선에는 어떤 의미와 목소리가 담겨있을까. 제19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특히 기대되는 영화와 포럼들을 소개한다.

 

이길보라 <기억의 전쟁>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 이길보라 감독의 신작. 베트남 전쟁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기억의 전쟁>이라는 의미 있는 필름으로 남게 되었다. 우연히 할아버지로부터 ‘월남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그는, 한국군에 의한 학살 생존자인 베트남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사람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더듬으며 찾기 시작한다.

이길보라 감독은 베트남 중부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학살을 경험한 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마주한다. 사람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기억의 전쟁>으로 마주할 질문은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참전군인의 손녀인 이길보라 감독은 누군가의 기억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그곳에서, 피해자들의 기억을 똑바로 마주하며 자신과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기억은 머지않은 곳에 있다. <기억의 전쟁>은 3월 22일 금요일 17:30, 3월 25일 월요일 20:00에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관람할 수 있다.

 

명소희 <방문>

인디다큐페스티발의 개막작으로 소개되는 영화 <방문>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계속해서 악몽을 꾸던 ‘나’는 어느 날 춘천과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엄마를 마주한다. 최지혜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를 “엄마와 딸, 과거와 현재, 사건 등을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씩 대면하는 영화”라고 소개한다.

이 영화는 춘천의 ‘물’ 이미지가 여성 3대의 이야기와 겹쳐 흐르며, 견고히 쌓아왔던 내부의 시간들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명소희 감독은 이 영화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하는데, 영화는 감독에게 가장 아픈 존재였던 엄마와 외할머니, 그리고 그 고통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고 한다. <방문>은 3월 21일 목요일 19:00, 3월 23일 토요일 13:30, 3월 25일 월요일 11시에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숙경 <길모퉁이가게>

이 영화는 대학에 가지 않은 청소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 ‘소풍가는 고양이’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모여 매출 천만 원이 안 되던 작은 가게에서 ‘작은 성공’을 이루어냈다. 카메라는 이 성공 속에 녹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으며,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던 갈등과 희망을 한데 담아낸다.

“매출이 오를수록 가게 구성원들도 행복해졌을까?”라고 되묻는 감독은, 돈벌이와 인간다움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마주친 질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질문을 세상과 공유하기 위한 작업으로 만들어진 영화 <길모퉁이가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길모퉁이가게>는 3월 23일 토요일 20:30, 27일 수요일 11:00에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장윤미 <공사의 희로애락>

<콘크리트의 불안>(2017) 장윤미 감독이 이번에는 건물과 노동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평생 건물 만드는 일을 해온 노동자가 있다. 그는 일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믿었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그의 한 세월의 노동, 그리고 한 시절의 마음.” 이렇게 짧은 문장 속에 영화의 줄거리가 들어 있다.

<콘크리트의 불안>에서도 엿볼 수 있었던 장윤미 감독의 시선은 균등하지 않은 것, 갈라진 것, 무너지려 하는 것에 머문다. 척박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거리와 건축물 사이에 흘린 인간의 땀, 그리고 노동. <공사의 희로애락>에 담긴 것들이 궁금하다.

 

놓치면 아쉬울 포럼들

이 외에도 ‘국내신작전’, ‘올해의 초점’, ‘해외초청전’ 등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는 놓치면 1년 동안 두고두고 아쉬울 포럼이 개최된다. ‘경험하지 않은, 당사자성 너머의 역사에 관한 영화적 재현’이라는 제목의 포럼에서는 역사적 과거, 과거의 역사, 역사적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와 그 방식 등 다큐멘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제기해온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4편의 영화를 통해 ‘과거사’나 ‘당사자성’이라고 통칭되어온 것을 넘어서는 현재의 영화적 시도와 가능한 형식을 살펴본다.(내용 출처)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동남아시아 다큐멘터리’ 포럼은, 동남아시아를 재조명하는 의미로 진행된다. 한국 다큐멘터리와 매우 닮아있기도 하면서, 동남아시아의 문화‧사회‧정치가 치열하게 반영된 2편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다. 더 자세한 내용과 일시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자. 

지금 현재 나와 우리, 그 너머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그 인식을 확장하고 싶다면 2019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세계의 귀퉁이를 살펴보자. 어떤 모습이 보일지, 어떤 목소리가 들릴지 기대하며.

 

메인 이미지 남순아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2015) 스틸컷 

인디다큐페스티발 홈페이지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